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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미술의 만남, 진화는 계속된다
[과학기술의 옷을 걸친 미술]
과학자와 예술가간 박람회·워크숍·학술교류등 다양한 시도 이어져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



1-노진아 작가는 인간의 기술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유기체적 존재에 대한 상상을 '미생물(x1000000000000000000)'이라는 작품으로 구현했다.
2-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다. 그는 미술과 과학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미술계의 미래지향적 가능성을 시사 했다. 백남준의 작품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
3-남지 작가는 환경오염과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돌연변이 현상을 '눈'의 이 미지로 형상화한 작품 'Visibility (unawares)'를 선보였다.
4-장동수 작가는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뇌과학과 미 술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 '생각의 지배'
5-이희명 작가는 하이브리드적 상상력으로 동식물의 혼합을 통해 수직적 경계를 허물고 종의 수평을 시도했다. 이희명 '유충'


최첨단 과학의 시대는 미술계의 흐름마저 바꿔놓고 있다. 유전적으로 변형된 생명체나 배아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고, 시공간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실시간 화면으로 전송돼 작품으로 소개될 수도 있다.

미술과 과학의 유쾌한 만남은 이처럼 머리 속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일들을 직접 눈 앞에 실현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꼭 붓과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공연장에서나 어울릴 법한 현란한 레이저 빛이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됨은 물론 컴퓨터 모니터, 홀로그램(3차원 입체영상), 비디오 등과 같은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미술 작품 속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실 미술과 과학의 크로스오버는 이미 20세기 이전부터 진행돼 온 현상이다. 단지 두 분야의 상호작용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과학과 미술은 끊임없이 교차하며 같은 길을 걸어왔다. 최근 들어 서로간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두 문화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상상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재현과 시각화의 원천으로써 예술을 필요로 한다. 또한 예술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탐구 방법론과 소재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일반인들도 디지털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만인 예술가 시대'에 '디지털 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의 미술과 과학의 통합은 필수 불가결한 창작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다시 한번 삶과 유리된 미술은 감동을 수반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며 "지금같이 일상 생활 전반적으로 하이테크놀로지의 영향을 받는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과학 기술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감동을 기대하고 있다"고 과학과 미술의 동맹을 문화적 트렌드로 해석했다.

공통분모가 없어보이는 두 장르의 융합이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내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관광부는 2005년부터 공동으로 예술가의 창의적 시각으로 과학을 바라본 미술 작품들을 소개하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 박람회를 개최해 왔다.

과학자의 호기심과 예술가의 감성이 만나 새로운 창작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이 행사는 미술과 과학의 높은 상관관계를 대중에게 알리는 포문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편 2006년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 선생이 타계하자 과학기술과 예술의 접목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 해 인사아트센터에서는 <로봇-백남준에서 휴보까지>전시를 열어 인간과 로봇의 결합과 공생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고, 사비나 미술관에서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예술과 과학의 판타지 Artist project>전시를 개최해 현대미술 작가들과 엔지니어들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구체화시켰다.

이후 지속적으로 미술과 과학의 크로스오버 전시를 기획해 온 사비나 미술관은 올해엔 현재 진행하고 있는 <2050 Future Scope:예술가와 과학자의 미래실험실>라는 특별전을 통해 과학과 미술의 통섭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크고 작은 전시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과학과 예술의 통합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학술교류 시스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포스텍과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지난해 말부터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목표로 교류를 시작했다. 이에 통섭이론·아트테크놀로지 미디어교육과 기업가 정신·예술경영 등의 교과목을 개설해 예술과학분야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양 측의 관계자들은 과학과 예술은 창조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서로의 지향점이 동일하기 때문에 학술교류 시스템을 통해 두 장르의 전문적인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카이스트(KAIST) 역시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선도하기 위해 2005년부터 문화기술대학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촉망 받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이준 작가는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마쳤고, <로봇-백남준에서 휴보까지>의 전시기획을 담당했던 이수진 작가 또한 문화기술대학원 출신으로 최근에는 '우주개발'과 관련한 전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비로소 과학과 미술 사이에 두껍게 자리하던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미술가와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세계관의 유사점을 바탕으로 두 장르 간 사유의 공유 가능성을 탐색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고찰하며, 이를 예술에 투영시킨다면 예술과 과학의 환상적 동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장동수 작가(왼쪽) / 김정화 교수(오른쪽)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Medical Illustrator) 장동수 작가
뇌과학에 미술의 감성을 투영

"의과대학에 기증된 시신들의 뇌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해부학 교실에서 활용되는 표본을 제작한다고 보시면 돼요. 하지만 저의 작업은 단순히 시신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담고 있죠."

장동수 작가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Medical Illustrator)'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지만 의학과 접목해 '의학조각(Medical Sculpture)'이라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의 의학조각 작업은 현대미술조각과 의학적 해부학의 구체적인 접목을 시도한 작업이다.

기존의 작가들이 행했던 이미지 메이킹 방식과는 달리 실제 실습용 시체를 해부하면서 접한 이미지에 소묘나 디지털 작업 등을 적용시켜 예술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언뜻 보면 미술작품이 아니라 의료기 회사에서 제작한 적나라한 인체 모형이나 도록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장 작가는 의학 조각가에서 보다 심도 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메디컬 일러스트에 대해 그는 인체의 일부분을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으로 옮겨주는 필수적인 의학 분야라고 설명한다.

"2002년부터 연세대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에서 의학 삽화가로 참여 중이에요. 의학도가 아니라면 쉽게 체험할 수 없는 다양한 인체해부를 경험하고 있죠.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직접 인체해부를 하면서 세밀하게 인체내부를 묘사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의 활동이 의사들의 논문이나 일반인들에게 의학상식을 제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해부학, 그 중에서도 특히 뇌과학에 대해 탐구하면서부터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을 해보게 됐다는 장 작가는 "개인의 정체성과 삶, 사회와 개인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감성적 가치를 작품에 투영시키고 싶다"고 전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김정화 교수
과학과 예술의 크로스오버에 앞장

카이스트(KAIST)는 국내 과학기술을 선두에서 이끄는 과학 산업의 요람이다. 정확하고 이성적인 논리가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문화예술의 감성이 피어나고 있다.

2005년 문화(culture)와 기술(technology)을 접목한 문화기술(CT)대학원이 문을 열면서 과학과 예술의 크로스오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과 12월에는 카이스트 교정에서 <과학정신과 한국현대미술>이라는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시 기획을 총괄했던 문화기술대학원 김정화 교수는 "현대미술이 시작된 이래 과학적 사고가 미술 작품과 그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볼 수 있는 독특한 시도였다"고 전시 후기를 전했다.

그는 또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하면서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융합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문화산업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은 과학기술을 토대로 문화예술과의 적극적인 접목을 통해 미래지향적 예술을 창조하고 있다"고 문화기술대학원의 역할을 설명했다.

"사실 미술이 생겨났을 때부터 과학과의 교류가 진행됐다고 할 수 있어요. 다빈치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원근법에 대해 고민을 했고, 육체파 화가들은 작품 속 공간에 대한 의미를 확장 시켰죠.

또 나무에 그리던 유화가 어떻게 캔버스로 옮겨갔는지, 판화 기법의 발전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사진 기술 발전에 따른 회화의 변화까지 모두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변화들이에요."

김 교수는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과학과 미술의 장르 혼합에 대해 미술사적으로는 이미 예전부터 있어온 현상이라며, 과학과 예술의 근본이 모두 '상상'인 만큼 미술 속 과학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미술과 과학을 별개로 생각하는 흐름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주목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 늘어나기 시작한 예술과 과학을 주제로 한 전시들은 대체로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선생 이후 비롯된 테크놀로지 아트에 주목했죠.

빛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인상파 형식으로 화폭에 담는 오지호 작가와 쇳가루로 창조된 영상에 동양화 풍경을 첨가하는 김종구 작가, 기계미학을 회화로 표현한 이상남 작가, 그리고 로봇과의 언어소통을 상징하는 노진아 작가의 인터랙션 작품 등 테크놀로지 아트의 범위나 소재도 무한해지고 있어요."

그밖에 초파리의 수면장애연구를 통해 생태계 연결고리에 대한 철학적 변증을 작품화한 안미혜 작가와 청각과 시각의 교류에 대한 연구를 작품에 담은 오준호 작가 등도 김 교수가 꼽은 과학과 예술의 교감을 이끌어낸 작가들이다.

"미술과 과학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신뢰하고 끊임없이 작품에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표현의 확장 역시 과학자와 미술가들의 협업을 거쳐야 이루어질 수 있어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이 과학과 미술의 교류를 촉진해 국내 작가들을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테크놀로지 아티스트로 길러내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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