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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CEO] (4) 박강자 금호미술관장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이사장
"문화의 힘 빛낼 인재는 미래의 보고"
1977년 금호문화재단 창립 음악ㆍ미술ㆍ장학 사업 3대축 메세나 선도기업 표상
금호미술관 개관 20주년 지역·신진 작가 발굴 주력… "한국대표 미술관 만들고 싶어"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사진 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1941년 전남 광주 출생. 미국 버지니아 래드포드 대학 졸업(1962~1966),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 의류학 석사(1969~1971). 귀국(1982). 금호미술관장(1989년 ~ 현재)
20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가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변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시대다.

산업화시대의 근간을 이뤘던 경제 위주의 삶은 이제 문화가 중심이 되는 생활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인간다운 삶, 삶의 질을 중시하는 21세기 웰빙시대를 추동하는 요체는 문화이다.

오늘날 문화는 단순히 삶의 질을 높이는 선택의 문제를 넘어 그 자체로 우리 생활과 사회 변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주간한국은 국민의 '문화적 삶'을 고양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모범적인 선례를 보이는 각 분야 지도자를 발굴, 선양하기 위한 '문화 CEO' 코너를 신설한다. 여기에 소개되는 '문화 CEO'는 21세기 웰빙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들로 한국 사회의 상징적 좌표라 할 만하다

지난해 2월 세계의 눈길을 끈 평양공연을 마친 뉴욕 필하모닉은 공연 직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평화의 화음을 전했다. 당시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뉴욕필과 완벽한 협연을 해 격찬을 받았다.

주인공은 22세의 손열음. 10대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음악영재로 뽑힌 뒤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그런 손열음의 뒤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고 박성용(1932~2005) 명예회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었다.

뉴욕필과의 공연 뒤 손열음은 "회장님(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친할아버지나 다름 없었어요. 제가 외국 연주회에 갔다 오면 공항까지 마중나오실 정도로 챙겨주셨어요"라며 박성용 명예회장과의 인연을 되뇌었다.

오늘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한국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의 선도 기업으로 표상되고 있다. 또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가장 적극적인 문화예술계 지원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일궈온 일가(一家)의 반세기에 걸친 '문화사랑' 의 내력에 근거한다. 박강자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이사장 겸 금호미술관장은 그러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문화 전통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관여하면서 금호미술관을 특색있게 운영, 한국 미술의 발전에 숨은 공로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18일 금호미술관에서 만난 박강자 관장은 인터뷰에 앞서 현재 열리고 있는 정종미 작가의 '역사 속의 종이부인'전을 친절하게 소개하며 깊은 '예향(藝香)'을 전해주었다.

박 관장은 그 예향의 뿌리가 선친인 금호(錦湖) 박인천(1901~1974) 선생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고 박성용 명예회장에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선친깨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학교를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펼치셨어요. 이후에 금호문화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의 길을 여셨는데 문호(雯湖, 고 박성용 명예회장 아호) 회장님이 선친의 유지를 크게 발전시키셨죠."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박인천 선생은 광주에서 택시 2대로 사업을 시작, 호남의 대표 기업으로 발전하면서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과 문화사업에 나섰다. 1959년에 죽호학원(광주 금파공고ㆍ금호고ㆍ중앙중여고)을 설립하고 1977년에 금호문화재단을 창립하였다.

"금호문화재단은 자산 2억원을 출자해 후진 양성을 위한 장학재단으로 출범했는데 1982년 선친께서 '예향(藝鄕)'이라 불리는 광주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금호문화재단으로 확대했습니다. 지금의 학술연구, 교육진흥, 문화예술 지원사업 등이 이때 틀을 잡은 것이죠."

박강자 관장에 따르면 박인천 선생은 특히 판소리와 시조를 좋아하고 꽤 수준급이었는데 당대의 소리꾼인 김소희, 박귀희 선생들을 자주 집에 초대하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박인천 선생이 금호문화재단을 창립한 배경에는 우리 가락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박 관장은 말한다.

이에반해 박성용 명예회장은 클래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릴적 기억으로 문호 회장님은 중학교 때부터 클래식에 심취했던 것 같아요. 용돈을 아껴두었다가 클래식 판을 사서 듣고 또 듣고 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실제 박성용 회장은 대학(서울대 사회학과)에 들어가서는 학교 앞 돌체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닥치는 대로 들었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음악회를 갈 정도로 클래식 광이었다. "미국 유학은 문호 회장님이 클래식에 더 열중하도록 했는데 90년에 금호 현악사중주단을 창단하기에 이르렀죠." 박강자 관장의 설명이다.

박성용 회장은 절정기였던 96년 회장직을 동생(고 박정구 회장)에게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난 뒤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본격적인 음악 지원 활동을 펼쳤다.

음악계 유망주들에게 비행기편을 무료로 지원하고 명품 악기를 빌려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98년에 14세 미만의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금호 영재 콘서트 시리즈'를 시작했고, 99년엔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를 설립해 14세 이상의 음악도들이 데뷔하는 무대를 제공했다. 이 두 콘서트를 통해 배출된 음악 영재는 현재까지 1천 여 명으로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 유명 콩쿠르에 입상해 '음악 한국'을 빛냈다.

"문호 회장님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문화예술에 전력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문화예술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하셨던 것 같아요."

박강자 관장은 박성용 회장이 척박한 문화대지에 뿌린 씨앗이 오늘날 큰 희망의 열매로 피어나는 것을 보며 박 회장의 '혜안'을 느끼곤 한단다. 경제를 뛰어넘는 '문화의 힘' 을.

현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박삼구 이사장(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박강자 재단 부이사장이 미술 분야를, 김용연 전무가 음악 분야를 담당해 운영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운영방식과 활동에 있어 전임 박용성 회장 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호 회장님 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어요. 현 회장께선 문호 회장께서 하신 만큼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문호 회장님의 취지와 사업규모를 잘 이어서 활동하겠다는 의지이죠."

박삼구 재단 이사장은 박성용 회장 때의 금호 현악사중주단을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로 확대 개편하고 경제불황기에도 정기공연과 뉴욕필을 비롯한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초빙하는 등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박강자 관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문화예술 지원에 전반적으로 관여하면서도 '미술'에 주력하고 있다.

박 관장은 국내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미??유학에서는 의류학을 전공한 뒤 1989년에 설립된 금호갤러리을 맡으면서 미술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음악과 미술을 두루 섭렵하고 다양한 예술 분야를 천착해 일찍 예술 융합의 시대에 부응한 셈이다.

박 관장의 이러한 이력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3대 중점 분야인 음악ㆍ미술ㆍ장학 사업을 추진하는데 이해의 폭을 넓히고 금호미술관의 전시를 풍요롭게 한다.

"예술 장르간 경계를 넘어서는 융합, 통섭이 최근의 흐름인데 이러한 전시는 미술계의 인프라를 더 확대하고 일반인들에게도 미술관이 문턱을 낮추고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박 관장은 최근의 미술관 전시목록을 펴보이며 기획전시인 <미술 속의 음악, 음악 속의 미술>, <취화선, 그림으로 만나다> 등 음악, 영화가 미술과 만나는 전시를 비롯해 지난해 <유토피아, 이상에서 현실로>와 같이 현대생활문화 전반의 원류를 찾는 디자인 전시 등이 큰 호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박 관장은 그러면서 금호미술관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근본 취지를 우선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목표는 재단의 설립취지인 "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 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실내악 전용 클래식 홀로 유명한 금호아트홀과 문호아트홀, 그리고 국내 사립미술관의 대표주자인 금호미술관의 운영 목표 역시 여기에 맞춰져 있죠. 무엇보다도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 아닌가 해요. 젊은 작가들의 데뷔 전시를 마련해 준 영아티스트 프로그램 등이 있는데 이러한 젊은 아티스트들에 대한 집중은 우리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과 희망을 베이스로 할 때 가능한 것이죠."

금호미술관은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는다. 이에 박강자 관장은 금호미술관의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한국 화단은 중앙과 기성 작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금호미술관은 지역 작가들을 발굴, 소개하는데 노력을 기울여 문화의 중앙집중 현상을 해소해왔습니다. 다른 미술관과 갤러리보다 한발 앞서 이루어진 젊은 작가들에 대한 과감한 지원은 오늘날 이들이 중견작가로 성장해 화단의 주류를 이루는 디딤돌이 되었죠."

박 관장은 그러한 금호미술관의 활동이 기업이 지원하는 미술관과 대안공간 등이 거의 부재했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 미술계가 옥션의 과도한 영향으로 창작 미술의 의지와 가치가 훼손되는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 관장은 특히 금호미술관이 20년 넘게 지속해온 교육프로그램에 의미를 부여했다. 금호미술아카데미(미술, 음악, 영화, 디자인의 복합문화프로그램)가 전시와 함께 미술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설명이다.

박 관장은 금호미술관의 운영과 관련해 신선한 구상도 제시했다. 이른바 '한국의 대표 미술관'이다.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의 작가들만 전시하는 특징이 있는데 감명적이었죠. 금호미술관도 한국의 대표 작가를 소개하는 그런 '한국의 대표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박강자 관장은 금호아시아문화재단이 국내 메세나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더 많은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기업들이 마케팅을 위한 문화가 아닌, 문화를 위한 마케팅에 나서달라는 얘기다.

아울러 여건이 조성되면 현재의 문화지원 영역을 넓혀 선친이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국악 등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지원 방안도 고려 중에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는' 일은 비단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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