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동 풍물시장손님 청계천 있을때 100이면 동대문 운동장 60, 현재는 20에도 못미쳐 썰렁특색없는 상품 대부분…이전·현대화가 되레 시장침체 원인 지적도



24일 오후 4시께 서울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은 초입부터 썰렁한 모습이다. 7시가 폐장시간이라는 점과 각 학교가 방학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광경이다.

시장 초입의 만물상에서 만난 상인, 최 모(56) 씨는 "청계천에 있을 때 찾는 손님 수를 100, 동대문운동장에 있을 때를 60으로 치면, 현재는 20에도 못 미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시장 내부로 들어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층에 있는 토산품, 민속품, 골동품 코너를 오가는 손님은 드물었다. 손님 없는 점포의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의류상 박 모(48) 씨는 1만 5000원에 청바지를 팔고 있었다. '그래도 장사가 되는 편 아니냐'고 묻자 박 씨는"원래 파는 값의 절반도 안받았다"며 "매일 찍는 일수를 채우려고 손해를 보고서라도 파는 형편"이라고 답한다.

풍물시장 외국인 관광객 안내소 관계자는 "하루 평균 10명 내외의 외국인이 안내소에 들른다"며 "외국의 프리마켓에 비해 우리만의 독특한 풍물 제품이 없어 아쉬워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실망감 역시 컸다. 6시께 옷을 사러 풍물시장에 들른 시민 배경집(28)씨는 "지하철에 표지판이 없어 한참을 헤맸다"며 "벼룩시장의 정경이 그리워서 왔는데 너무 외진 곳에 있는데다 일반시장에서도 파는 상품이 대부분이어서 실망"이라고 말했다.

폐장시간을 1시간 앞둔 6시께 점포를 정리하는 상점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풍물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이 도시 재개발을 이유로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난개발 되는 과정에서 고유의 맛을 잃어가고 있다. 문화관광상품으로서 시장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현대화'가 오히려 시장을 침체시켜 불황기 서민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결과, 이전 과정의 폭력문제까지 겹쳐있다.

풍물시장에 풍물이 없다(?)

도시재개발에서 시장의 이전과 개발이 재래시장 고유의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같은 난개발은 재래시장을 문화관광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시장인지 지역근린시장인지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풍물시장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서울시에 의해 강제 철거된 노점상 894개 가운데 851개가 지난해 4월 26일 서울 신설동 109번지 옛 숭인여중 자리 5056㎡부지에 개관한 2층 빌딩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현재 21개 점포는 비어있는 상태.

풍물시장에서 풍물을 없애는 이전과 개발이 문제다. 서울풍물시장에서 골동품, 공예품, 도자기를 비롯한 전통 풍물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은 1층 전체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2층을 비롯한 시장 전체공간의 3/4에 이르는 점포에서는 의류, 잡화, 전자공구, 음식 등을 판매하고 있다.

서울풍물시장을 방문한 이 모(38) 씨는 "풍물시장이라고 해서 외국의 엔틱마켓을 연상하고 왔다"며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에서 다 볼 수 있는 의류, 잡화가 대부분이어서 살게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이태희 경희대 관광학부 교수는 "풍물시장은 뻔한 물건을 파는 중고상과는 다른 개념으로 다루는 물건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외국의 유명 벼룩시장은 시설을 깨끗이 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손때 묻은 악기나 책, 오르간을 팔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상인들을 위주로 하기보다 오픈 마켓을 열어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품을 파는 벼룩시장을 여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시장이나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들이 시장을 개발하다보니 재래시장의 매력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풍물시장에서 친절교육을(?)

중소기업청(2008년 12월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550개(점포 20만여 개, 상인수 26만여 명)의 재래시장이 있다. 중소기업청은 인천 송현시장, 충남 부여시장, 강원 주문진시장, 제주 동문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을 올해 성공모델로 개발할 예정이며 국비 50억원을 들여 2011년까지 전국 25곳의 재래시장을 현대화할 계획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 역시 재래시장 골목에 지붕을 얹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올해부터 100여 곳의 재래시장을 현대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각 지자체는 시장의 외형을 바꾸는 데 집중할 뿐 아니라 친절교육 등을 벌이며 풍물시장에까지 '백화점식' 경영을 도입하고 있다.

한 풍물시장 상인은 "관리비부터 워크샵, 교육비까지 시장 현대화는 상인들에게는 모두 부담"이라며 "공무원들이야 예산을 집행하면 되지만 보여지는 것에 비해 실제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경영론'을 쓴 변명식 장안대 프랜차이즈 경영과 교수는 "풍물시장의 백화점식 경영이나 귀족화는 부적절하다"며 "외국인을 비롯해 풍물에 호기심이 있어 찾아오는 풍물시장 고객들은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시스템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코벤트 가든, 일본의 야메유코 우에노, 대만의 타이페이 스림시장 등 성공한 풍물시장은 지붕을 얹는 등의 시설 현대화 때문이 아니라 수백년 된 전통 그대로의 시설과 경영방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맞춤식 재개발로 성공한 재래시장

리모델링으로 성공한 재래시장은 시장 특성에 맞춘 재개발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 근린 시장으로서 특징을 띠었던 서울 방학동 재래시장은 원래 심야에 잠깐 여는 '도깨비 시장'의 형태였다. 인근의 대형마트 등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자 상인들은 2003년 도봉구에 환경개선사업을 요구했다. 시장 골목에 대형 아케이드와 도로를 설치했다. 매달 하루를 '도깨비의 날'로 지정해 세일행사를 벌였고 공동구매로 원가를 낮췄다. 그 결과 2006년 매출이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외국에는 문화의 가치를 더해 지역 근린성격의 재래시장을 성공시킨 사례도 있다. 일본 북부 지역에 위치한 인구 30만 규모의 관광도시인 아오모리는 중심시가지 재개발사업을 하면서 재래시장을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의 '아우가 쇼핑몰'로 개발해 성공했다.

비결은 8층 건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시민도서관과 문화시설이다. 공동화 돼 있던 재래시장은 문화시설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시장 시설의 현대화 외에 주변의 문화적 환경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못하는 우리 지자체가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풍물시장의 경우 전통 그대로를 살릴수록 문화관광상품으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베이징 한가운데 있는 왕푸징(王府井) 샤오츠지에(小吃街) 거리는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인기를 얻고 있다. 약 2000평방미터(약 1980㎡) 크기의 이 시장에서는 명ㆍ청 시대의 건축양식을 유지하고 먹거리, 수공예품 등의 특색있는 상품을 팔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인기를 끄는 것은 매미, 번데기, 전갈, 해마 꼬치 등이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유리창 (琉璃廠) 역시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전통적인 고서적, 골동품, 탁본한 글자와 그림, 문방사옥 등을 중개 판매하는 특색 있는 상점거리로 상인·관리·학자·서생 등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중국 고유의 문화유물을 보러온 외국인들에게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재래시장 재개발, 서민 삶의 질과 직결

재래시장의 개발방향은 서민들의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재래시장은 2005년 1702개에서 2008년 1550개로 줄었으나 상인수는 30만여 명에서 36만여 명으로 6만명 이상 증가했다.

재래시장 이전, 재개발 과정에서 폭력적 철거로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문제도 있다. 지난해 4월 16일 오전 4시 30분께 용역을 포함한 500여 명의 철거반원에 의한 동대문 풍물시장 기습철거에서는 조기준(59) 씨가 철거반원이 휘두른 벽돌에 맞아 오른쪽 눈이 함몰되는 등 상인 10여 명이 크게 다쳤다.

변명식 교수는 "지역근린시장인지 문화관광시장인지에 따라 특성에 맞춘 재래시장 개발이 필요하다"며 "풍물시장에서 백화점식 개발로 간 서울풍물시장 이전 및 재개발은 지자체의 과욕이 빚어낸 잘못된 사례"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이어 "재래시장의 시설현대화는 필수적인 것"이라면서도 "시장 특성에 맞는 지원과 개발이 아니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