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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 100년] 만화가 현대 미술 속으로 들어왔다
1909-2009, 한국만화 새로운 100년을 위해
국내외 작가 만화적 요소 차용 대중에 가까이 더 가까이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성태진의 '난 꿈이 있었지'(사진 : 한국미술 경영연구소)
영웅도 세월을 비껴갈 순 없었나 보다. 서로를 위로하듯, 어깨동무를 한 한국과 미국의 영웅들. '거위의 꿈'이란 노래의 가사가 그들 뒤로 흐른다.

주름진 마른 얼굴의 슈퍼맨과 새마을 운동 츄리닝을 입은 태권V가 우리를 돌아본다. 태권V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미묘하게 미소짓는 슈퍼맨의 표정을 보니,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희도 멀지 않았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성태진 작가의 '난 꿈이 있었지'란 작품이다. 유년시절의 영웅인 만화영화 캐릭터 태권V는 성 작가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작품 속 주요 소재다.

이들을 통해 퇴색되어 버린 현대인의 꿈을 이야기 한다. 나무 판화 위에 스르륵 녹아내린 만화적 유머와 친근한 캐릭터에선 난해한 현대미술이란 보이지 않는다.

만화가 현대미술 속으로 들어왔다. '행복한 눈물'로 친숙해진 로이 리히텐슈타인,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헤링 등 팝 아트 작가에게서 본격화된 움직임은 현대미술에서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아톰과 미키마우스의 혼혈, '아토마우스'의 이동기 작가는 기존의 만화를 합성하거나 컷을 확대해 사용하며 만화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끌어들였다.

이제 '아토마우스'는 권기수 작가의 '동구리 시리즈'와 더불어 대중문화의 대표 아이콘이다. 40대에 접어든 이들 이후,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20~30대 작가들 작품 속에서 만화는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형체를 띤다.

동양화 기법으로 슈퍼맨, 배트맨, 혹은 골룸을 그려내는 손동현, 만화적 드로잉 기법을 채택한 임태규, 태권V를 소재로 사용하는 성태진, 강렬한 원색으로 캐릭터를 완성하는 윤기원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현대미술 속에서 만화적 요소는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급행열차 티켓 같은 존재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만화는 미술의 한 지류로 파생되어 태어났다.

발전된 인쇄기술이 미술사에서 만화를 독립시킨 셈인데, 만화의 기본을 정립한 인물은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1731년)였다. 스토리를 가진 연작 그림과 칸 나누기 기법을 처음 사용했던 것.

만화가 가지고 있는 칸 나누기, 말풍선, 동작선(만화를 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만화 기호), 그리고 캐릭터 등이 미술에서 보이는 만화적 요소다.

박창석 만화이론가는 "만화와 미술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상호간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받아왔다"면서 "팝 아트와 같은 현대 미술이 만화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1-카와시마 히데아키의 'Splash'2008 (사진:국제 갤러리)
2-리지카이의 'Sunny day (사진 : 아라리오 갤러리)
3-아메바피쉬의 '핑크냐옹단'
4-윤기원의 '권정은'(사진 : 한국미술 경영연구소)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베르 콩바스, 장 미셸 바스키아, 아이다 아펠브르그 등의 현대 미술가들은 만화적 표현을 통해서 현대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고 말했다.

소재 고갈의 해소와 대중과 한없이 벌어지는 거리 좁히기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같은 트렌드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2007년 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프랑스 작가 로베르 콩바스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만화임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의 대표적 전위 예술가 제프쿤스 역시 포르노그라피적 성향을 벗어던지고 최근 강아지, 코끼리, 토끼 등 만화적 캐릭터의 설치작업을 해오고 있다.

만화의 나라 일본은 어떨까? 최근 내한했던 나라 요시토모와 무라카미 다카하시를 위시한 '네오팝 아트(팝 아트를 새롭게 해석, 표현한 현대미술의 한 장르)'는 거대한 사단을 형성하고 있다.

망가(만화)에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패러디, 차용하는 이 장르는 서양 미술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미술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에서도 1970년대 이후 출생작가들을 중심으로 '카툰 세대'가 자리한다. 천커, 리지카이, 웨이자, 무샤오페이, 왕지엔밍, 가오위가 대표적이다.

직접적인 만화 캐릭터보다는 만화 스타일의 작품을 완성하는 그들은 그 안에 소황제 1세대인 자신들의 내면을 드러내 보인다.

한국미술경영연구소의 김윤섭 소장은 "미술이 생활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생긴 미술에 대한 현대인들의 감성 변화로 볼 수 있다"고 이 같은 흐름을 짚어낸다.

또한 그는 "만화가 현대회화의 보조적인 입장이 아니라, 주체로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미술 속에서의 만화의 달라진 가치를 설명했다.

최근 전시에서도 이런 변화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04년에 시작해 최근 5회를 맞은 '아트툰, 툰아트 展'(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은 예술과 만화의 접목의 장이다.

이동기, 권기수, 낸시랭, 손동현 등의 팝 아트 작가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초반에 미술의 비중이 만화보다 크게 차지했다면 현재는 시각예술로서의 만화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크로스 컬처, 만화와 미술전'이란 테마로 만화의 유머와 풍자코드를 작품 속으로 끌어온 미술에 대한 전시가 열렸다.

지난해 말,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미술관에서의 '일러스트 다시보기 - 笑笑SoSo웃어도 돼요!? 展' 역시 장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대미술 속 만화적 상상력을 펼쳐놓았다.

수묵화로 애니메이션을 하는 수경, 귀여운 캐릭터와 말풍선에 재치있는 문장을 담아내는 아메바피쉬, 자신의 상상과 경험을 귀여운 캐릭터로 구성한 장동철 등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만화와 미술 사이에 허물어진 경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정지원 큐레이터는 "일러스트, 회화, 만화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면서 "관람객들은 장르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예술의 매체를 실험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 볼 수 있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또한 사간동 미술관 거리의 국제갤러리에서는 '네오팝 아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카와시마 히데아키의 개인전을 올해 첫 전시로 열고 있기도 하다.

현대미술의 만화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계는 그다지 동등해보이진 않는다. 과거 조선일보에서 '멍텅구리'라는 시사만화를 그렸던 노수현 작가는 한국 근대 산수화 분야의 6대가로 꼽혔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만화가에겐 기능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미술작가에게는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을 쥐어주고 있어 그들 사이엔 껄끄러운 기운이 없지 않다. 상호간의 소통에 이은, 상호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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