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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트] 문화인은 하루 아침에 태어나지 않는다
[커버·당신은 딜레탕트입니까]
개인 품격·사회적 신분의 바로 미터, 비용·노력·시간 쏟아 부은 학습의 결과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김기석(42) 씨. 그는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매우 '문화적' 인 사람으로 통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문화 애호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문화적 취향과 소양은 영화에서 시작됐다.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노트를 갖고 있다. 20년 이상 기록해 온 '영화 수첩' 이다. 개봉관 영화에서부터 TV에서 본 영화,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본 영화까지 1000여 편 가까운 감상문이 빛 바랜 노트 수 십 권에 담겨 있다. 그의 영화적 내공은 이제 웬만한 평론가 수준 이상이다. 인터넷 영화동호회 카페에서 그는 지존으로 통한다.

영화를 통한 그의 문화적 안목은 다방면으로 진화했고 확장됐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섭렵하면서 자연스레 음악과 미술, 환경, 과학, 역사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커져 갔다.

꾸준히 그 방면의 책을 사 공부하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가고, 동호회에 참여하며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 교분을 나누고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종합문화예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방문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나누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누구나 문화애호가가 되고 싶어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문화애호가가 인정 받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저 사람은 문화적이야" 라는 평가는 그 사람의 품격과 교양, 신분, 경쟁력을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문화는 삶의 질과 사적인 즐거움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떠나 이제 그 자체가 비즈니스이며 개인과 사회, 기업, 한 국가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국내 CEO들이 가장 부족하다는 경영기술인 '협상' 분야에서(세계경영연구원 2월 설문조사 결과) 문화는 대화를 풀어가는 키워드로 작용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식사 자리에서 한시(漢詩) 한 편 읊지 못하면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은 리더의 '문화적 소양'이 곧 '비즈니스 경쟁력'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외국 대사관 부인들과 오페라를 보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민간 외교'나 예술영화를 관람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특별히 관심을 끈다. 시인 김선우는 첫 소설 '나는 춤이다'에서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 것도 구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는 '있는 자' 만이 더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의 수많은 문화동호회는 중요한 인맥, 사교,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기도 하다.

누리꾼들은 주말이면 삼삼오오 모여 전시회를 관람하고, 휴가철이면 함께 문학투어를 떠난다. 학연과 지연을 떠나 취향으로 '인맥'을 형성한다. 최대 회원수를 거느린 뮤지컬 동호회의 회장은 각종 공연 시사회에 1순위로 초대되는 '문화권력'이 됐다.

문화애호가는 프로 작가도 아니고, 전업도 아니다. 아마추어다. 다른 직업이나 일을 가진 아마추어로서 나만의 즐거움, 나만의 차별적 만족, 나의 삶의 질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애호가끼리의 교류, 동질감, 연대의 기쁨을 얻고자 한다.

아마추어 문화예술 애호가를 '딜레탕트(dilettante)라고 부른다. 그 단어의 속성은 즐거움이다. 이탈리아어 'dilettare(즐기다)' 가 어원이다. 그것이 현대인의 지적 허영심이든, 과시이든 간에.

누구나 '문화적'이고 '딜레탕트'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로마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은 것처럼 저절로 문화적이 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는 한 인간의 정서와 취향과 감성, 그리고 DNA(집안의 내력)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학습'과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간단한 게 아니다.

입문하고 싶어도 배우고 싶어도 수많은 강좌와 실습, 그리고 감상에 적지 않은 돈이 든다. 한 가족이 브로드웨이 수입뮤지컬 한 편을 좋은 자리에서 보려면 50만원까지 든다.

장르에 따라 문화애호가가 되기 위해선 고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딜레탕트가 되기 위해선 문화적 취향과 학습, 그리고 돈,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친문화적 제도 및 정책적 분위기도 중요하다.

그래도 누구나 딜레탕트를 꿈꾼다. 딜레탕트는 무슨 즐거움을 주는가? 나는 진정한 딜레탕트가 될 수 있을까?



딜레탕트(dilettante)란?

예술이나 학문 중에 하나 또는 모두에 대한 열렬한 애호자를 의미하는 용어다. 이탈리아어 'dilettare(즐기다)'를 어원으로 삼는다.

이 용어는 독립된 직업인으로서 예술가가 등장하고 예술이 시민계층으로 보급된 18세기 후반에 나타났다. 미학이나 예술론에서 딜레탕트는 때로 지적 허영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비판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애호의 대상인 예술이나 학문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자기 자신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문화를 즐기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딜레탕트에게 문화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이해되지 않거나 왜곡되기도 쉽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스탕달은 한때 동경하는 이탈리아로 가서 미술을 감상하고 가극을 보는 등 딜레탕트 생활을 했다. 미술품을 감상하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수 차례 경험했고 이 경험을 책 '나폴리와 피렌체:밀라노에서 레기오까지의 여행'에서 묘사한 바 있다. 뛰어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의식혼란, 심하면 환각을 경험하는 현상을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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