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당신은 딜레탕트입니까]

'애호' 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애호가' 로 살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들은 왜, 스스로, 어떤 계기로 미술이나 음악, 공연, 영화, 독서, 식도락을 즐기는 딜레탕트가 되었고, 어떻게 그걸 즐기며 살고 있을까?

한 문화적 장르에 입문해 애호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미 한 경지에 오른 그들의 경험과 내공, 조언을 들어본다. _ 편집자 주

[클래식] 성악 레슨 없이 셀프 트레이닝
유관호 갤러리 더 스페이스 관장


타고난 성량 덕에 자연스럽게 성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레슨 없이 음반을 통해 '셀프 트레이닝'했다. 그 덕에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저음, 중음, 고음으로 음역을 넘나들 때조차 톤이 일정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가 여전히 성악가들의 표본인 이유이다.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매년 가을에 열리던 서울대 음악제에 미대 대표로 나가곤 했다. 음악을 할지, 미술을 할지 고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지만 한 가지 길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국 난 클래식 애호가로 남기로 했다. 음악은 여전히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에 전시되었던 나의 설치 작품은 음악에 반응하는 빛을 표현했다. 음악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운 작품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공연 공간을 마련해 클래식 아티스트의 공연을 열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음반을 냈다. 성악은 곧 몸이 악기이기 때문에 건강 유지를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림] 미술 서적 번역하며 미술사 훤해져
조정옥 철학박사


20년 전 독일 유학 중 박사 논문을 마치고 난 그림을 만났다. 그림의 자유로움과 찬란한 색채가 무척 매혹적이었다. 마치 플라톤의 어두운 동굴에서 탈출한 기분이랄까? 이후 철학 논문보다는 미술서적을 번역해오면서 미술사를 훤히 이해하게 되자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최근엔 메트로 미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했다. 전시회도 했다. 대학에서 예술철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제 나는 스스로를 화가라고 생각한다.

그림, 조각, 혹은 건축의 색과 형태는 영혼에 어떤 작용을 가하는 듯하다. 영혼의 치유이자 매우 즐거운 충격이다. 내게 미술은 어떤 것보다도 단순하면서 직접적이고, 정열적이며 전적으로 자유롭다. 자유는 삶의 신선한 공기와 같다.

누구라도 그림이 그리고 싶다면, 문구점에서 펜 한 세트를 사서 백지에 끄적거려 보길. 검은색이 아닌, 초록색, 주홍색, 보라색 펜으로 글씨를 써 보길. 색깔이 주는 기쁨에 눈을 뜨게 될 거다.

[독서] 독서 통한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 진행
김동환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내가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에서 의무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도 글을 굉장히 세련되게 쓰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글발'의 원동력은 바로 책이었다.

월급을 털어 그 친구들이 추천해주는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들처럼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시작했던 독서가 점점 그 자체로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사 모은 책이 전역할 때는 130여 권이 됐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지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안에서 얻는 것이 지식의 작은 꾸러미라면, 책 바깥에서 우리는 단순히 책 이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부터 책을 제법 가지고 있는 친구와 함께 독서를 통한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책을 빌리고 또 빌려보면서, 책에 대한 관심을 사람에게도 옮겨갈 수 있었으면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듣고 감동의 물결
강봉국 CU미디어 편성기획국 편성PD


어렸을 적 나가던 교회에서 처음 접한 오르간이 내 귀를 사로잡았고, 그 후로 클래식 음악에 푹 빠졌다. 이후 음악도 듣고 LP와 테이프를 구하려고 시내 음반점을 들락거리다 뮤지컬 작곡가로 유명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 음반을 우연히 발견했다. '충격적인' 감동을 준 이 음반으로 나의 뮤지컬 사랑은 탄생했다.

어릴 적 영화로만 알던 '사운드 오브 뮤직', '오클라호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도 원래 뮤지컬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뒤 무대에서의 실연을 보면서 뮤지컬 장르에 대한 매력을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됐다. 내게 있어 뮤지컬이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스트레스를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무대를 보면서 해소하는 시간이다. 무대 위에서 음악과 춤, 연극과 영화 등이 함께 공존하기에 더욱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발레] 춤추는 예술혼 얼마나 아름답던지
송승훈 금융감독원 조사역


어릴 때 학교와 집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주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의 세계를 접하게 됐다. 당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같은 곡들도 있었는데 그때는 발레 곡이라는 것을 모르고 들었다. 그러다 교회에서 우연히 발레공연을 접하며 큰 감동을 받았고, 또 어릴 때 들었던 곡들을 발레에서 다시 접하며 발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후 국립발레단의 공연, 특히 '해설이 있는 발레'를 통해서 발레를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발레는 인간이 얼마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지, 춤추는 예술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나면 깊은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현실의 삶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갖고 열심히 살수 있는 활력을 얻는다. 영화보다 감동이 10배 이상인 발레 공연과 함께 인생의 깊은 아름다움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사진] 카메라보다 사진 찍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
김성중/ 직장인


대부분의 사진 애호가들이 꽃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 세계에 입문하곤 한다. 나 역시 식물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아버지와 동생까지도 애호가가 되어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곤 한다. 출사를 가면, 혼자 가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여행 삼아 가는 경우가 많다.

여행 떠날 때의 설렘이라던가, 다녀와서 좋은 사진을 볼 때의 만족감이 무척 크다. 사진 세계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카메라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덩치를 비교하며 주눅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들고 다니기 힘들어 못 찍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좋은 카메라를 사서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도 많이 봤다. 나도 평소에는 핸드폰 카메라를 애용하곤 한다. 카메라보다는 사진 찍고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영화] 영화 통해 마음의 위로 얻어요
엄상호 씨네 21 블로그(blog.cine21.com/eshangel) 5년째 운영


작년에 '영화전문사'가 됐다. 고전영화 DVD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2003년부터 시작해 850여 장 정도 갖췄다. 매달 극장에서 보는 영화 편수는 5~6편, DVD로 보는 영화 편수는 15편 정도 된다. 영화를 통해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인성을 가꾸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 낙천적인 성격은 영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블로그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것도 좋다. 영화 마니아는 동년배 중에는 만나기 어렵다.

내 삶 자체가 영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영화는 공부하고, 참여하면서 할 수 있는 취미다. 너무 번잡한 사이트보다는 영화 애호가들이 주로 모이는 사이트에서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해 기록을 하는 습관을 들일 것. 나도 영화 목록을 만들고 기록하면서 관심이 더 커졌다. 티켓, 포스터 같이 영화 관련 물건을 수집하는 것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화] 영화 이야기로 대화가 풍성해져요
서희동 영화연극창작집단 공방아카데미 3년째 활동


나는 한때 주눅 든 아이였다. 중학교 2학년 3월에 영화잡지 '로드쇼'를 봤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영화 얘기가 나왔다. 난 졸지에 영화 박사가 됐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동네 비디오 가게를 섭렵했다. 또 하나의 동기는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들었다.

영화에 대한 학구욕이 생겼다. 영화를 매주 10편 이상 봤다. 요즘은 일주일에 1~2편 정도를 극장에서 보고 일주일에 한 번 영화스터디를 한다. 모임 자체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독지망생을 위한 영화 작법 책보다는 철학책을 읽는 것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서양영화사'보다는 '미학 오디세이'를 읽는 것이 영화를 미학, 예술 사조 전체와 아울러 볼 수 있게 해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 프랑스 예술 문화원 등 '다른'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을 다니며 소양을 키우고 그 이후에 전문화된 스터디나 교육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 그때는 참여자끼리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만 해도 대화가 풍성해진다.

[와인] 맛본 와인 리스트 만들어 보세요
네이버 파워 블로거 '카카투'


와인에 눈을 뜬 것은 1992년 호주로 유학을 떠났을 때다. 그때만 해도 프랑스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와인이 생산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곳에는 초대 문화가 일상적인데 주말에 요리를 해서 친구들을 초대하면 그들이 와인을 한 병씩 사 들고 오곤 했다. 그게 와인과 나의 첫 만남이다. 와인의 진짜 매력은 맛도 맛이지만 여유와 관계를 부르는 술이라는 점이다.

양주나 소주처럼 도수가 높은 술이 남기는 것은 실수와 후회뿐이지만, 와인은 음식에 곁들여 마시다 보면 딱 기분 좋을 만큼 감정이 고조되고 진솔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자연히 음주 시간도 짧아지니 좀더 가정에 충실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와인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가격이 저렴한 와인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번 맛본 와인은 반드시 리스트를 만들어서 기억해두라.

[식도락] 내게 식사시간은 레저시간
네이버 파워 블로거 '코스모스'


나의 미식 취미는 언제부터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입맛이 까다로웠고 어머니는 거기에 철저하게 맞춰주셨다. 성장하면서 형편에 따라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주말에만 10군데 이상 맛 집을 찾아 다닌다. 내게 식사 시간은 레저 시간이나 다름 없다.

골프나 술 등 구태여 다른 곳에서 삶의 재미를 찾을 필요 없이 매일 먹는 밥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맛 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내 인생의 활력소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 미식 습관은 평소에 길러야 한다. 김치나 밥 하나를 먹더라도 맛을 평가하고 맛있는 것으로 먹고자 하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맛 집으로 소문난 곳에 찾아가 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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