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당신은 딜레탕트입니까] 2007년 9월 정점 미술시장 곤두 박질…미술 강좌 등 식지 않는 인기30~50대 전문직 공유 한다는 즐거움으로 사진 사랑 눈 떠

그림에 감동을 느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감동을 지속하기 위해 미술 작가들의 소품을 구입하는 사람까지를 미술 애호가라 부를 수 있다. 반면에 작품을 느끼기보다 유명 작가의 작품에 대한 소유가 앞선다면 그 사람은 컬렉터로 분류된다.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의 경계를 무 자르듯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경매가 활발해지면서 재테크와 컬렉션을 목적으로 미술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이 미술계를 점령한 탓이다.

2007년 9월은 국내 미술계에서 사건으로 기억될 만한 달이다. 꾸준히 성장하던 미술시장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치며 수축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빨래'가 45억 2000만원이라는 경매사상 최고가에 낙찰되고 옥션의 실적은 예년보다 2배를 넘기며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던 미술계다.

급격한 추락의 시점이 바로 9월이다. 그 이전 미술은 재테크 수단으로 혹은 30-40대 젊은 부호들의 과시의 수단으로 아트 펀드와 미술 경매가 짧지만 뜨겁게 주목을 받았었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대개의 컬렉터와 달리 일부는 애호가로 남았고 기존의 애호가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존의 애호가 중 한 부류인 30대 후반에서 50대 사이의 주부들에게 백화점 문화센터의 미술 강좌는 여전히 인기다. 다만 컬렉션 붐의 영향으로 컬렉션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된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말 애호가 이충렬 씨의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의 출판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현재의 분위기에서 미술에 한 발 디디려는 이들에게, 혹은 이미 딛고 있는 이들에게 미술 사랑의 방법을 제시해준다. 발행 두 달 만에 2쇄를 찍어냈을 만큼 그림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호응이 좋다.

미술동네를 서성이던 이들에게 지금껏 주어진 길잡이는 전문가들이 집필한 미술사와 미술이론서, 그리고 애호가들의 무한한 애정이 담긴 그림 에세이 정도였다. 특히나 그림 에세이는 미술에 대한 문턱은 낮추는데 성공했지만 독자들에게 그 이후의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보통사람이 미술 애호가가 되기 위해 쏟아온 진중한 고민과 실천의 과정은 구체적이다. 그 과정에서 요긴하게 살림에 보태기도 했고 사라진 전설의 화가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그 맛에 그림을 모은다'며 만세를 부른다. 이 씨의 그림 사랑은 '타향살이의 공허함'에서 시작됐다. 미국 이민자로 30년 이상을 살았지만 늘 고향이 그리웠던 그는 한국의 그림을 한 점 한 점 모았다. 그와 동시에 전문적인 식견과 조예를 갖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조예와 컬렉션, 무엇이 먼저랄게 없음을 보여준다.

모든 작품이 고가일거라는 판단으로 마냥 화랑 밖에서 서성이는 건, 그림을 사볼까 하고 생각했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 그는 인터넷으로 높은 화랑의 문턱을 넘으라고 말한다. 홈페이지에 전시된 그림을 보고 큐레이터에게 가격대를 제시한 후 추천을 받는 방식이다. 혹여, 첫 작품 구입에 실패했더라도 많은 이들이 '수업료'로 생각할 수 있다고 다독인다.

경매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현장보다는 온라인을 통하는 것이, 턱없는 가격에 오기로 입찰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미술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미술잡지 구독과 미술계 정보의 노출은 필수다.

그가 추천한 사이트는 김달진미술연구소(www.daljin.com)와 네오룩닷컴(www.neolook.net). 단골화랑을 만드는 것도 좋은 작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어쩐지 그를 따라가면 길을 잃을 것 같지도, 손해를 볼 것 같지도 않다.

몇 년 사이 급증하고 있는 사진 애호가들의 모습은 어떨까?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가 오픈하면서 디지털 카메라를 든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최근엔 고급 기종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SLR클럽(http://www.slrclub.com/)에 많은 이들이 드나들고 있다.

카메라 기종별로 동호인을 구성하기도 한다. 재무설계사로 일하는 김재욱 씨(31)도 캐논의 최상위 기종인 1d급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이 모인 '원디클럽(http://www.1dclub.com)'에서 활동하고 있다. 30대~50대 사이의 전문직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에 입문한 김재욱 씨는 인터넷 상에서 '공유한다'는 즐거움으로 사진의 매력에 눈을 떴다. 카메라가 순간의 기록에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가슴에 닿은 것이다. 그는 사진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감각적인 사진을 찍는 광고계 실력자들을 찾아가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10여년이상 사진 세계를 경험해온 그는 '기술적인 부분은 학습하고 그 다음은 자신의 스타일을 찾으라'고 말한다. 패션사진에 관심이 많아 시간이 날 때마다 명동 뒷골목의 수입서적 코너에서 해외 패션잡지를 저렴하게 구입해 보고 미술관을 드나들었다. 장르가 달라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었던 것.

사진에 입문하기 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카메라 구입이다. 그 때문에 잠시 맛보기를 하기에도 유독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이기도 하다.

김 씨는 구두쇠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수중의 돈을 모두 저축했다. 그렇게 한 식구가 된 카메라 바디, 렌즈, 스트로보, 가방, 삼각대까지 5천 만 원, 아니 훌쩍 넘는다. 카메라 구입 이후엔 한 몸처럼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많이 찍는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지금도 꾸준히 비용이 발생하지만 '기록을 남긴다'는 데서 오는 충만함은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다. "사람은 죽으면 사라지지만 내 사진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테니까요." 사람과 사물과 풍경을 더 명확하게 잡아내고 싶은 마음은 프로 못지않다.

그러나 사진 애호가가 되려거든 한 가지만은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일명 장비 병이라고 하죠. 실력이 늘지 않는 게 장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장비에만 투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정말 잘 찍는 사람은 어떤 카메라로도 잘 찍어요. 제가 좋아하는 광고 사진가 테리 리처드슨도 똑딱이 카메라(보급형 디지털 카메라)만 쓰거든요."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