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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트] 고전음악 감상은 '신세계의 발견'
[커버·당신은 딜레탕트입니까]
'풍월당',' 무지크바움' 등 초보자서 고수까지 공부방이자 사교의 장으로 각광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풍월당
무지크바움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초입엔 클래식 전문 레코드점 풍월당이 자리하고 있다. 지독한 클래식 애호가에서 오페라 칼럼니스트라는 직함까지 얻게 된 정신과 의사 박종호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이미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그 자신도 취미로 시작한 클래식 사랑 때문인지, 6년째 접어든 이곳은 레코드점이라기보다 클래식 딜레탕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에 가깝다. 클래식이란 큰 산 앞에서 망연히 바라만 보는 초심자들의 손을 지그시 잡고 함께 발맞춰주는 친절함이 그곳엔 있다.

아기자기한 손 글씨로 쓰여진 앨범 소개 카드, 기존의 명작 LP음반을 리마스터링한 CD 앞엔 '클래식에 제대로 입문하기 위해 시작하기 좋은 음반들'이라는 표지판도 붙어 있다. 수천 장의 CD와 DVD 로 대변되는 클래식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풍월채라는 약 50석의 음악감상실이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아티스트의 무료 쇼케이스나 1만 원이면 들을 수 있는 클래식 강좌가 열리는 곳이다. 2007년 문을 연 이곳에선 한 달 평균 7번의 강의와 한 두 번의 음악회가 열리는데, 강좌 소식을 홈페이지에 올리면 하루 만에 거의 모든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작년 중순부터 강의 신청이 부쩍 많아졌어요. 보통 클래식 강의라면 나이 지긋한 분들이 오신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엔 젊은 분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습니다." 담당자 김서진 씨의 설명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과 젊고 매력적인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등장으로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숫자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잠시 동안 마음의 휴식을 얻어가던 음악감상실은 이제 클래식 애호가들의 공부방으로, 사교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오페라, 발레 해설가인 유형종 씨가 이끄는 무지크바움(http://www.musikbaum.org)은 동호회와 음악강좌, 그리고 음악감상실이 더해진 개념이다.

당초 동호회로 움텄던 무지크바움은 광장클럽과 클래식 바움이란 두 개의 동호회와 그란디보치, 클래식산책, 오페라글래스, 바움특강 등 네 개의 강좌를 갖추고 있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지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만도 200~300명을 헤아린다. 낮에는 가정주부들이, 밤에는 직장인과 남성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을 찾은 한 중년 여성은 "편안하고 사람들이 좋아 평생 놀이터처럼 드나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 동호회 클래식 바움의 발표도 열리는데, 처음엔 게스트로 참여하다가 후에 정식회원으로 등록하면 된다. 이달에만도 LP로 듣는 동구권 음악, 하이든과 멘델스존의 실내악, 피아노의 역사와 빈의 피아노 음악, 괴테의 파우스트와 관련된 음악, 바르톡의 피아노 음악 등 주제도 다양하다.

주말의 무지크바움은 온라인 동호회의 음악감상 공간이 된다. '슈만과 클라라', '클래식 박스', '하이 클래식', 그리고 연주를 하고자 찾는 비올라 앙상블 '올라 비올라'도 이곳의 단골이다.

12만 80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온라인 클래식 동호회인 '고 클래식(http://www.goclassic.co.kr)'. 클래식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와 장터가 망라된 이곳에선 음악 감상평과 작곡가 정보, 공연 감상후기 등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클래식 음반과 음원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회원인 정세준 씨는 지난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클래식에 다가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올려 회원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만큼 클래식이란 높고 험준한 산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인 셈이다.

34세의 공무원인 정 씨는 걸작으로 널리 인정받으며 음악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곡을 두루 접하는 것이 클래식 애호가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동일한 곡이라도 연주자의 스타일에 따라 음악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러한 선택 앞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는 고개를 든다.

"개인적으로 개성이 드러나는 연주보다는 작품 자체에 충실한 연주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평소에 잘 듣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앨범은 인터넷 동호회 장터에 판매해서 적정 수준으로 음반 수를 제한하죠. 처음에는 음반이 늘어날수록 얻는 즐거움이 크지만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즐거움보단 그로 인한 공간이나 관리에 대한 문제가 커지기 마련이거든요."

완전한 행복을 클래식을 통해 느낀다는 그는 도서관에서 식사를 거르면서 클래식 음악 자료를 찾는 날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직업 음악가가 아닌, 애호가로서 깊이 있게 즐기는 데 필요한 공부로 정 씨는 작곡가의 생애, 작품의 창작 배경, 악보를 근거로 한 작품 분석, 작품에 대한 연주자의 생각과 해석 등을 들었다.

흔히들 애호가의 최상의 단계를 '고수'라고 일컫는 이들이 있다. 정 씨는 이러한 표현에 철저한 경계를 표하기도 했다. "음악감상이라는 순수한 취미 활동에서 수준을 따지는 것은 가장 순수해야 할 음악감상마저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라고 생각해요."

감상으로 클래식에 진득한 사랑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면, 직접 악기를 다루면서 클래식에 다가가는 이들도 있다. 11년째 플루트를 연주하는 손미령 씨(39)가 악기를 잡은 계기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지인이 부탁한 디자인 작업을 해주고 뜻하지 않게 받은 25만 원이 10년 지기 친구를 만들어 준 것. 사무실 동료가 클라리넷을 배우는 모습을 봤던 그녀는 25만원으로 살 수 있는 악기를 찾았고, 그렇게 찾은 악기가 야마하에서 나온 연습용 플루트였다.

문화센터에 등록해 그룹으로 악기를 배우다가 점차 실력이 향상되면서 지금은 8~10명의 멤버들과 매주 금요일 연습실을 빌려 합주 연습을 하고 있다. "일주일 간 지쳐 있던 일상에 생기를 줘요. 삶이 풍부해지는 느낌이죠." 들숨과 날숨으로 직접 악기를 통해 클래식을 호흡하는 과정은 클래식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클래식은 그 단어만으로도 단단한 벽을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이 같은 접근의 어려움은 애호가를 음악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감상보다는 남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 때때로 클래식 애호가들이 비난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은 프로의 열정과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전에는 미처 경험할 수 없던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기도 하다. "귀한 보물은 숨겨져 있기 마련이에요. 한두 번 들어보고서 재미없다고 외면하면 그 안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은 찾지 못해요" 정세준 씨의 끝맺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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