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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키자
[도심 속 공간 공존의 조건]
'반지하' '스페이스 빔'등 문화예술 활동 주민들의 동네 사랑·자부심 일깨워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1-퍼포먼스 반지하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
2-배다리 문화축전
3-스페이스빔 '도시 유목 공공미술프로젝트'
4-스페이스 빔 '동네 미술 공장'

'퍼포먼스 반지하'(이하 '반지하')의 활동가 결락씨는 재작년 인천 동구 배다리 근처로 이사를 왔다. 지역문화 운동은 곧 그 지역에서 사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표현집단'인 반지하는 2001년부터 인천을 중심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동네를 찾아 교육, 문화 운동을 해왔다. 사진, 글 등의 다양한 프레임으로 동네를 기록하는 동시에 주민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퍼포먼스를 벌임으로써 동네 문화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반지하가 배다리 일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인천의 오래된 지역 중 하나인 이 곳의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다. 당시 비어 있던 건물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듬해 근처에 상설 공부방을 마련했다.

평화롭던 배다리 일대가 떠들썩해진 것은 2006년이었다. 산업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면서였다. 송도경제자유지역과 서울을 잇는 산업도로가 배다리 근처를 가로지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동네가 반으로 갈라질 위기에 놓인 것.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 급격하게 변화한다는 데 두려움을 느꼈다. 산업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대책위를 꾸렸다.

반지하는 2007년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함으로써 동네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움직임에 동참했다. 작가들을 모집해 동네 곳곳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몄다.

벽화를 그리고 공원을 만들었다. 초점은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닌, 있는 것을 최대한 아름답게 살려내는 데 있었다. 허물어져가는 담을 고치고 가게 간판을 새로 다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이 모든 과정은 주민과 함께 함으로써 프로젝트가 지역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도록 했다.

반지하 이외에도 여러 문화예술인들이 배다리 동네 지키기에 나섰다.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도 그 중 하나다. 지역성과 공공성을 지향점으로 삼고 2002년 설립된 스페이스 빔은 2007년 도시 유목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배다리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10군데의 도시 공간을 돌아다니며 텐트 생활을 하는 내용의 프로젝트였다. 민운기 대표는 당시 "배다리가 한국사회와 인천시가 처한 상황을 상징하는 장소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스페이스 빔은 산업도로 건설을 막겠다는 의지를 갖고 이 곳으로 위치를 옮겼다.

스페이스 빔이 주목했던 것은 배다리 일대가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였다. 이 지역은 개항이후 인천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이다.

자유공원 부근에 외세의 거주 지역이 형성되면서 그곳에서 밀려난 주민들이 모여든 지역이며 근대 교육과 종교, 노동과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부근의 학교들은 100년 이상 되었고, 오랫동안 대규모로 조성된 헌책방 거리가 남아 있다.

이 공간이 중요하다는 데 동감한 여러 문화예술인들이 스페이스 빔처럼 자신들의 작업실을 옮겨 왔다. 헌책방 전문가 최종규씨가 들어왔고 작가회의 사무실이 이전해 왔다. '시가 있는 작은 책길'이라는 문화 공간도 생겼다.

이런 문화예술 작업들의 주요한 성과는 주민들이 동네에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삶의 터전을 스스로 가꾼 경험은 소속감으로 귀결된다. 이런 정서가 동네를 자연스럽게 지속시켜야 하는 이유가 된다.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기왕의 삶은 문화예술적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스페이스 빔의 공간 구성은 상징적이다. 이 건물의 이전 쓰임이 양조장이었음을 알려주는 각 방의 이름이 현재의 쓰임과 맞닿는다. '시험실'은 주방, '발효실'은 예술작업을 하는 곳, '숙성실'은 공부방, '취음실'은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로비처럼 툭 트인 1층 공간은 '우각홀'이다. 이 동네가 끼고 있는 큰 길인 '우각로'를 딴 이름이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신작로였던 우각로의 연장선에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세미나, 전시, 공연 등 사람들이 교류하고 접촉할 수 있는 행사들이 열린다.

우리가 사는 곳은 우리 삶의 형태를 만드는 기반이므로 공공 미술은 지금 여기를 살 만한 데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한 지역을 둘러싼 이런 여러 문화예술적 시도들의 지향점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고 현재 안에 풍성하게 살려내는 것은 그 연속선상에서 미래를 구상하려는 노력이다.

반지하가 동네의 외관을 다듬는 공정과 더불어 할머니들의 생애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것, 스페이스 빔이 매년 배다리의 역사를 주제로 삼은 작품들로 문화 축전을 열고 작년 10월부터 지역 통화 '띠앗'을 유통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삶의 현장에 관심을 갖는 문화예술작업이 과거를 부정하는 방식의 개발 논리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역마다 쌓여 있는 과거의 지층들은 그 자체로 현재를 행복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화가이자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연구소 대표인 김정헌 공주대 교수는 일본의 유휴인 마을을 예로 든다. 유명한 온천 마을인 이 곳의 명성은 "주민들이 일구어 낸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다가도 가업을 이으러 스스로 돌아왔다.

그만큼 자신이 나고 자란 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있었다는 뜻이다. 거기에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보탰다. 예를 들면, 영화를 공부한 젊은이가 영화 축제를 기획하는 식으로. 유휴인은 매력적인 여행지인 동시에 일본인들에게 가장 살고 싶은 마을로 꼽힌다.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연구소는 유휴인처럼 문화예술이 우러나오는 삶의 공간을 조성하려는 취지로 지난 2월 만들어졌다. 출발점은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단절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된 근대화 결과 개개인의 삶의 최소 단위인 마을이 붕괴되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제주도 서귀포 가시리 마을의 '신문화공간 조성 사업'. 마을의 빈 공간을 작가들의 작업실,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꾸미고 200여 평에 달하는 목장에 목축문화박물관, 별 관측소 등을 세워 '생태문화마을'을 만들려는 기획이다.

공간을 지키고 지속시키려는 이런 시도들은 결국 문화예술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반지하 활동가 결락 씨는 말했다. "예술이 뭐 별 건가. 지역 안 삶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표현하며 나누는 것일 뿐"이라고.

김정헌 공주대 교수
"예술의 힘은 사회로 환원돼야"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가 지향하는 '마을'은 무엇인가?

주민들 간 소통 구조가 있는 단위다. 나아가 자치까지 가능한 작은 정부 같은 형태를 지향한다. 그런 마을을 조성하려는 문화예술인은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주민들끼리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10년째 가평 두밀리라는 마을에서 화실을 차리고 사는 중인데, 주민회의에만 가봐도 그런 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마을에 큰 길이 나서 경관이 파괴될 위기에 처했는데도 다들 말이 없다. 집값이 오를까 하는 기대 때문일까. 시골은 고령화되다 보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이대로 살다 가는 거지 하는 분위기랄까.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있기 어렵다.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먹고 사는 문제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더라도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을 마을 주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는

예술이 개입되면 지역의 삶과 문화가 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다. 예술의 힘은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

중심은 마을 주민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동참하려는 의지를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공공미술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이해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주민들이 작가들과 활발히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주민 대표 조직을 꾸리는 것도 도와야 한다.

이런 활동이 작가들 자신의 예술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지역과 교류하며 작업하는 것이 작가들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때 한창 폐교를 작업실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들이 실패한 건, 그곳에 간 작가들이 지역 사회와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으면서 변화하는 것이 곧 작가 개인의 예술 세계를 넓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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