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공간 공존의 조건]문래동 철공소 건물서 미술하는 김 강 씨삭막한 철'의 공간 주민 정체성 살린 '꽃'의 공간으로 탈바꿈

"빈 공간에서 예술적 상상력이 일어난다. 꽉 차 있으면 개입의 여지가 없으니까…."

서울 문래동3가 철공소 건물의 빈 공간에서 설치미술 작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김 강(37)씨의 말이다. 김 씨는 지난 2007년 6월 먼저 문래동 철공소 공단에 들어와 있던 예술가들의 얘기를 듣고 평당 1만 원대의 저렴한 임대료로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의 작업실 겸 연구소에 들어왔다.

김 씨는 자신의 작업 외에도 문래동 공단 내에서 김윤환(43), 박지원(43) 씨 등 뜻을 같이하는 예술가들과 공동 작업, 전시회장인 'LAB 39'를 만들었고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를 만들어 도심의 '빈 공간'을 재생하는 문화예술 활동을 연구, 이론화하고 있다. 서울 문래동의 작업실에서 11일 김 작가를 만났다.

김 씨는 빈 공간의 가치에 대해 "허술하고 비어 있는 곳에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창작의지가 생기게 된다"며 "도시에서의 빈 공간은 전통적 의미에서 보자면 빈 캔버스라고 볼 수 있다"고 요약했다.

김 작가와 동료들은 자신이 차지한 빈 공간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김 씨가 문래동의 공단을 걸으며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 이유다. 김 씨와 입주 작가들은 철공소 일대의 건물 외벽, 철문, 복도, 우편함, 화장실 등을 가리지 않고 동네 주민들의 사진과 그림 등이 들어간 미술작품을 그려넣었다. 삭막한 '철'의 공간을 주민들의 정체성을 살리는 '꽃'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사진작가 박지원 씨는 15년여 동안 문래동을 지켜온 '복길네 식당'에 주인 아주머니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진, 꽃그림(사진)이 들어간 벽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김 씨는 쓰레기로 가득한 건물 옥상에 설치미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한물 간 철공소 건물의 빈 공간을 문화예술의 향기로 가득 채웠다.

"스?을 한국에서 적용해보고 싶었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그가 유학한 프랑스 등의 서구사회에서는 '아트 오브 스콰트(Art of Squat)'가 이미 도시예술의 한 활동으로 정착해 있다. 이는 허가 없이 빈 공간이나 배타적 도심공간에 들어가 예술활동을 펼침으로써 다른 가치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가 동료들과 펼쳐온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유휴 공간을 자꾸 부수지 말고 창작공간으로서 도시의 허파와 같이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담론에서 출발했다. 이는 빈 공간의 재구성으로 정치적 분쟁의 공간을 예술적 창작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행위다.

'철공소 먼지 때문에 작업하기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 씨는 "임대료 문제도 있지만 철공소의 힘이 넘치는 분위기가 좋다"며 "예술이란 결국 삶의 문제인데,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를 좋아하는 나의 삶과 창작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김 씨는 "작년 서울시 조례개정으로 이곳 예술가들이 상시적 철거위기를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빈 공간은 어디든 나의 캔버스로 생각하고 삶과 예술에 대한 실험을 계속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