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공간 공존의 조건]강홍구·안세권 작가 은평·월곡 뉴타운·청계천 등 사라지는 곳 기록으로 남겨

1-안세권 'The Fading Lights of Weolgok-dong'
2-강홍구 '논산집'
3-강홍구 '물놀이'
4-안세권 '청계천'


처음부터 재개발 현장을 '기록'할 생각은 아니었다. 작가 강홍구가 서울 은평구로 작업실을 옮긴 것은 2001년. 이사오기 전까지는 부근이 그린벨트인지도 몰랐던 그는 서울 같지 않은 변두리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슬렁슬렁'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재개발사업 계획이 발표된 것은 다음해인 2002년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산책로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무 사이로, 물줄기를 따라 동네를 걷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터였다. 그리고 비로소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3월13일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몽인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사라지다: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기록' 전은 그렇게 찍어온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강 작가의 눈빛이 유난히 애틋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마다 얽힌 이야기를 술술 들려준다.

"여긴 시장통이었는데, 재개발 때문에 가게도 좌판도 사람들도 다 사라졌어요. 그런데 한켠에 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죠? 떠난 사람들이 두고 간 개들이에요. 아직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이 폐허에도 이렇게 빨래를 해서 널어두었고."

폭포동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재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주인이 "내 집 사랑합니다"라고 크게 적어 놓은 집 담벼락, 박정희 정권 시절 '홍보'용으로 조성된 한양주택 등 지금은 감쪽 같이 사라진 풍경들이 강 작가의 카메라를 통해 재현되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과거'를 고스란히 옮긴 것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금이 가 있다. 한 자리에서 각을 달리해 찍은 사진들을 이어 붙인 탓이다. 마치 상처 같은 그 균열이, 이 풍경들이 지금 여기에 불려 나오게 된 과정을 증언한다. 벌써(!) 지나가 버린 개발사업의 여파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현재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전시장 한 쪽에선 슬라이드쇼가 진행되고 있다. 강 작가가 미처 벽에 걸지 못한, 너무 많은 사진들이 차곡차곡 겹쳐지고 지나간다. 순간순간 보이는 것은 단편적인 풍경의 흔적이지만 체험되는 것은 그것들의 연쇄, 결국 은평구의 역사이자 강 작가를 포함한 주민들의 삶의 역사다.

"한 70대 전농동 주민이 이 사진들을 보곤 우리집도 개발되면 저렇게 되지 않겠냐며 도대체 새 집을 지어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더라. 결국 사람의 문제다."

2003년부터 청계천과 월곡동 뉴타운을 주제로 사진과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해온 안세권 작가는 "그 작업은 언제까지 할 거냐"는 질문을 들을 때 가장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 질문이 안 작가에게는 "서울이란 도시의 개발은 언제 끝나냐"는 질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재개발사업을 통해 5층 건물을 허물고 20층 건물을 세운다고 개발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20층 건물도 언젠가 더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 허물어질 것이다.

안 작가에게 서울은 계속되는 '변이'의 과정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연속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변이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에가 나비로 탈바꿈할 때, 누에나 나비 각각의 상태보다 그 탈바꿈 과정에 주목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어떤 상태든 전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러면 나비는 예쁘고 누에는 추하다는 이분법에도 의심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안 작가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 지역을 아름답고도 자세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포착한다. 이런 풍경에 근대화를 일군 꿈과 욕망이 내재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사용하는 초대형 카메라는 정보 탐색을 위해 군사용으로 개발된 종류다. 전경을 담으면서도 현실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광각렌즈는 사용하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여러 장을 찍어 이어 붙인다. 이렇게 만든 사진의 필름은 세로길이 2m, 가로길이 7~8m에 이른다.

"대형사진을 고집한다. 공간이 침묵하는 광경, 시간의 흔적, 잔물의 체취를 감지할 수 있도록. 사진들을 확대해 보면 골목에 쌓인 연탄, 집 밖에 내놓은 평상, 심지어 어느 집에서 키우는 파꽃까지 보인다. 그게 다 일상의 기억이다."

이런 풍경은 과거이자 현실이고, 동시에 그 변화 과정이다. 그 연속성을 인식할 때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현재를, 나아가 미래까지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 안 작가의 설명이다.

사진을 라이트 패널로 제작해 전시하는 것도 보는 사람의 사유를 돕기 위해서다. 관객은어두운 가운데 빛나는 사진의 곳곳을 확대경으로 찾아보도록 유도된다. 이런 매체 경험을 통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게 된다.

"서울 하면 떠오르는 명동이나 서울역 광장 같은 랜드마크들이 있지 않나.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내 사진을 보면 '여기가 서울이냐?'고 묻는다. 나에겐 이게 더 현실적인 서울 풍경이다. 이게 바로 뉴타운이다."

사라지는 곳을 기록하는 작가들의 의도는 결코 과거를 간직하거나 회고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조건지어지고 전개되는 바탕이자 맥락으로서의 공간을 보여주려는 것이며, 공간의 역사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자고 제안하려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개발이 "원주민에 대한 배려나 삶의 질을 높이려는 고민" 없이 "약자들을 변두리로 내쫓고 고유성과 다양성을 무시하는"(강홍구)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패러다임과 정서,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친다.

"최대한 다큐멘터리적으로,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작업하려고 노력하지만 현장을 보는 심정은 종종 아찔하다. 재개발 지역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면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각목을 들고 나온다. 내가 용역 업체 직원인줄 아는 거다.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안세권)

'사라지다: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기록' 전시장 바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재개발 사업 전 동네의 지도다. 강홍구 작가는 거기에 자신의 카메라에 담긴 살구나무, 닭 키우던 집, 원두막 등을 표시해 두었다. 한때 강 작가가 산책했던 그 동선은 이제 기호로만 남았다.

"이런 게 무서운 거다. 개인의 일상적 삶에 어느 날 갑자기 개발 논리가 침범해 오는 것. 다른 게 폭력인가."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