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진] 최고 원단 맞춤 패턴 수작업 워싱으로 롱다리 힙업효과 날씬해 보여가격과 비용 간극은 편안함·아름다움에 브랜드 이미지로 메워

광부들의 작업복에서 시작된 청바지가 50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대중 앞에 나서기까지 그 청바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프리미엄 진을 위한 변명 또는 프리미엄 진을 향한 공격.

1-신세계 블루핏 매장
2-제임스 진, 3- 제임스 진
4-파라수코

'청바지는 100벌 이상 입어 봐야 자신에게 맞는 걸 고를 수 있다'

이 말은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을 괴롭힌다. 지금 입고 있는 청바지가 '내 바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다리가 길어 보이고 날씬해 보이며 힙-업 효과를 줄 수 있는 청바지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멀쩡히 입던 청바지가 미워지면서 어딘가에 있을 이상향의 청바지를 향한 갈망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치 결혼을 앞둔 처녀가 지금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것 같은 막연한 예감에 망설이듯이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의류 매장을 서성이게 된다. 그리고 발견하는 50만원 짜리 청바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묻는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돈 많은 배우자든 비싼 청바지든 겪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모험을 두려워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친절한 가이드를 하고자 한다. 이 글은 프리미엄 진을 위한 변명이 될 수도, 반대로 그를 향한 공격이 될 수도 있다. 프리미엄 진은 온라인 마켓의 3만원 짜리 청바지와 무엇이 다를까?

최고의 데님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최고의 데님은 어떻게 태어날까? 이 질문은 마치 최고의 떡볶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라는 질문과 비슷하다. 가장 대중적이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단가를 낮춰 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떡볶이에도 공을 들이면 단가는 올라간다.

유기농 쌀을 재배해 전통 방식으로 떡을 만들고 최고급 태양초 고추장에, 최고로 주가를 올리는 쉐프가 만들면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떡볶이 주제에 왜 그렇게 비싸냐'는 편견에 맞서는 문제만이 남게 된다.

청바지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원단에 개개인의 체형에 맞춘 패턴, 그리고 최고의 기술자의 손을 거친 청바지는 그 단가가 대량 생산된 청바지와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간다.

현재 가장 좋은 데님 원단을 생산하는 나라는 일본과 이탈리아. 디젤, 세븐진 등 대표적인 프리미엄 진 브랜드들은 주로 이곳에서 원단을 구입한다. 질 좋은 원단들은 인건비가 높은 나라로 배달돼 입체 패턴으로 재단된다. 대부분의 프리미엄 진 브랜드들은 가장 체형이 예뻐 보일 수 있도록 고안해낸 핏(fit)을 10개에서 많게는 50개 정도 가지고 있다.

이 핏은 곧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이를 얻기 위해 수많은 샘플링 과정을 거치는 것은 물론이다. 마름질한 천은 봉제에 들어간다. 저가 청바지가 1인치 안에 5~6개의 스티치(땀)가 들어간다면 프리미엄 진은 최소한 9개 이상의 스티치가 들어간다.

만들어진 청바지는 워싱, 즉 물을 빼는 과정을 거치는데 청바지가 다른 옷들과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 워싱이다. 워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데님에 가치가 부여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프리미엄 진은 거의 모든 워싱 작업을 손으로 직접 한다.

"샌드 페이퍼로 데님을 긁어낼 때 어떤 사람이 얼만큼 힘을 줘서 얼마나 오랫동안 작업하느냐에 따라 데님의 외관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에 따라 체형도 달라 보이죠. 그림에 명암을 넣는 것과 똑같아요. 허벅지 안쪽이나 엉덩이 아래쪽 등 살이 많아 감추고 싶은 부위를 어둡게 처리해서 몸매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헐리웃 배우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제임스 진 임승선 대표의 말이다.

여성용 청바지가 날씬해 보이는 워싱에 초점을 맞춘다면, 남성용 청바지는 디스트로이드(찢어짐), 페인팅 등을 통해 거친 느낌을 내기도 한다. 프리미엄 진 브랜드들은 R&D팀을 따로 두고 브랜드 고유의 워싱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워싱 역시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가의 청바지들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기계로 워싱을 하게 되며 수작업이 필요한 섬세한 장식들은 배제된다. 완성된 데님의 사이즈가 종종 들쑥날쑥한 이유도 일괄적인 기계 워싱으로 수축율이 제각각이 되기 때문이다.

청바지의 태를 좌우하는 마지막 결정적 요소는 엉덩이의 포켓이다. 위치와 크기가 조금만 어긋나도 몸매가 완전히 달라 보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위치를 선정해야 한다. 엉덩이 살짝 아래 쪽에 위치한 포켓은 다리를 훨씬 길어 보이게 만들고 힙-업 효과를 낸다.

포켓의 크기가 약간 크면 엉덩이가 앙증맞아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프리미엄 진에는 뒷 포켓에 브랜드를 상징하는 정교하고 화려한 자수 장식을 넣는데 이것도 단가를 올리는 요인 중 하나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탄생된 프리미엄 진은 헐리웃 배우들의 파파라치 사진을 통해 대중에게 노출된다. 사람들은 '배우들의 몸매가 좋기 때문에 아무 옷이나 입어도 예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프리미엄 진 매장으로 달려간다.

1-세븐 포 올 맨카인드
2-리플레이
3- 파라수코

프리미엄 진, 그 가치를 입는다

복잡한 공정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으로 프리미엄 진의 가치를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다리가 길어 보이고 힙-업 효과가 있다는 것만으로 40만~50만원의 가격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패션에 무지한 사람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청바지라고 다 같은 청바지가 아니죠. 좋은 청바지는 체중을 5kg 쯤 덜 나가게 보일 수도 있고 다리를 10cm쯤 길어 보이게 할 수도 있어요."

데님 마니아인 모델 김용표의 말이다. 그러나 그가 평소에 즐겨 입는 바지는 프리미엄 진이 아닌 19만원대의 베터 진(better jean, 프리미엄 진보다 한 등급 아래의 청바지)이다. 그럼 프리미엄 진은 그보다 두 배쯤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야 하는 것 아닐까?

"프리미엄 진도 입어본 적이 있어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였는데, 솔직히 특별하게 다른 걸 못 느꼈어요. 해외 브랜드라 그런지 동양인 체형에 잘 안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의 말대로 프리미엄 진의 가치는 분명히 그 기능에만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가격과 비용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다름아닌 브랜드의 시그니처다. 프리미엄 진들은 시그니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고유의 워싱과 핏, 화려한 포켓 자수 등을 개발해 적극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어필한다.

디젤은 그 브랜드 네임처럼 거칠고 터프한 남성을, 제임스 진은 여성 CEO가 만든 데님답게 섹시한 여성스러움을 한껏 드러낸다.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진에 높은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편안함과 아름다움 뿐 아니라 브랜드가 만들어 놓은 가치와 이미지를 덧입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목 마른 이들이 프리미엄 진의 타깃인 만큼 여기에 고가의 가격이 매겨진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수순인 지도 모른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