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인문학에 길을 묻다] 시장경제 의료한계 극복 환자 존중 병원 환경 구축 노력

녹색병원 양길승 원장은 19년에 걸쳐 의대 졸업장을 딴 특이한 이력의 의사다. 서울의대 재학 중 학생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고, 학교에선 제적을 당했다.

이후 이화여대 앞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그는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아일랜드 유학을 떠나 의대에 편입했고, 그곳에서 의사자격증을 취득했다. 85년 귀국한 그는 국내에서 다시 의사시험을 치러 합격한 뒤 성수의원을 열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창설을 주도하며 본격적으로 직업병 환자를 위한 의료활동에 투신한다.

88년 이황화탄소에 의한 중독증세가 집단적으로 발견된 원진레이온 공장 노동자들을 진료하던 그는 이들의 법정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중독증으로 사망한 50여명 그리고 지금까지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 900여 명의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금 및 치료비로 원진재단이 설립됐고, 직업병 환자의 전문적인 치료와 보호를 위해 녹색병원이 탄생했다.

인터뷰 요청에 양 원장은 "의료인문학과 관련된 인물이라면 섭외가 잘못 들어온 것 같다"며 의아해 했다. 그러나 의학과 인문학과의 통섭을 시도하는 이들은 그를 인문의학을 실천해온 대표적인 의사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위주의 임상의학이 간과해온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아픔을 치료하는데 앞장서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양 원장의 이러한 활동은 인문학의 토대에서 자란 사회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양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요즘 경제불황의 여파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급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라도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양 원장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생활고로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검진을 실시하고, 필요 시 치료비를 지원하는 '건강방파제'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녹색병원 직원들의 급여 기부(매월 급여의 1%)로 운영될 예정이다.

또, 날로 상업화 되고 있는 의료현실 속에서 경제취약 계층은 의료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환자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기 바쁘고, 돈 안 되는 진료는 거부하기 일쑤다.

이에 대해 질병중심의 과학적 기술이 내놓을 수 있는 해법은 뭘까.

이윤의 가치를 넘어 복지차원의 의료를 가능케 해주는 것도 인문학의 힘이다. 인문학적 소양은 단순한 물질적 만족에 그치지 않고 공익과 행복처럼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양 원장은 시장경제 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환자를 존중하는 병원환경을 구축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녹색병원은 국내 종합병원 가운데 최대규모의 재활치료센터를 자랑한다. 그것도 이례적으로 이 병원에서 가장 전망 좋은 7층에 배치했다. 환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치료 받게 하기위한 배려였다.

"우리나라 병원에선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돈 안 되는 재활치료는 피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치료 받을 곳이 없어요. 이윤이 안 남는 중환자실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병원은 대형병원 중 가장 큰 재활센터는 물론 대형병원 중 유일하게 요양병동을 갖추고, 대학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하지 못하는 중환자들을 받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술을 펼치려면 질병이 사회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공익의 가치를 추구해야 해요."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