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다문화를 품다] 외국인 노동자·농촌 총각 국제결혼 증가로 사회적 담론 생성국내거주 외국인 100만명시대 '화이부동'의 열린 문화 필요

한국사회에 다문화 사회 담론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이후다. 외국인 노동자 수가 증가하고 농촌 총각들의 국제 결혼이 활발해진 사회적 배경에서였다.

2006년 일어난 '하인즈 워드 열풍'은 이같은 다문화 사회 담론의 팽창에 도화선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 슈퍼볼에서 스타로 떠오른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국민적 정서가 커진 것이다. 정부도 국내 외국인 정책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다문화 사회 담론을 촉발했다.

이런 움직임은 세계화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책이기도 했다.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단일 민족이라는 믿음이 뿌리 깊었던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수의 증가는 낯설고 불안한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마주치고, 그것을 소화해야 하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다.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주로 제3세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저임금 일자리에 투입된 것은 저소득 계층의 불만을 불러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주 노동자는 사회적 불안과 불만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 담론이 제기된 맥락에는 사회적 균열을 봉합하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 한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의 다문화 담론이 정부와 학계, 언론이라는 세 축에 의해 전략적으로 '구성'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다.(안지현, 2007,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주의 담론의 배치와 그 성격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런 담론 속에서 초점은 다문화와 이주민들의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가능성에 맞추어져 있었다.

위로부터 구성된 다문화 사회 담론은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수준에서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포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동네와 거리, 일터 등의 공간에서 '타자'와 마주쳤을 때의 대응 방식이나 감정은 문화적인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문화는 정치적인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다문화 사회 담론은 이주민들을 '한국'이라는 단일민족의 공동체 안에 포섭해야 할 이방인으로 위치 짓는다는 한계 또한 가지고 있었다. 특히 제3세계의 이주민들은 종종 '한국'의 우월성을 확인해주는 '열등한 민족'으로 묘사되었다.

정치적 캠페인, 공영 방송에 편성된 이주민 소재 프로그램은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 몫 해 왔다. 농촌에 시집 온 필리핀인 며느리는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한국인'으로 인정 받았고, 다문화 가정의 아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20세가 넘으면 군대에 간다는 조건으로 이 사회에 공존할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하나의 공고하고 우월한 문화 속에 '다른' 문화들을 일방적으로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가 열린 상태로 교류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공존하는 상태다.

그런 민주적인 상태가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고, 다양성은 문화적 상상력이 발현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박경태 교수는 지난 2월 11일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열린 '이주민과 다문화사회 이론' 세미나에서 "다문화 사회를 위해서는 화이부동, 즉 화합하되 동일함을 강요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사회는 '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명 시대'라는 사실로 인해 자연히 만들어지는 단계가 아니다. 제 안의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을 포용하면서 그들 간 창조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이주민들을 중심 테마로 삼고, 이주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이 제도, 정책적 수준에서의 다문화 사회 담론보다 훨씬 더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에 긴밀하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방송, 영화, 문학 등 대중적인 문화 장르에 주목한다.

그것은 이른바 '고급 문화'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빈발하게 경험되기 때문이다. 이주민들 스스로도 이런 매체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한국 사회와 소통하는 통로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다문화 사회 담론이 제기된 지 5년째에 접어든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다문화화'되었을까. 한국 문화는 이주민들이 지닌 다양한 문화적 맥락과 가능성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북돋우고 있을까. 그것이 이번 호 커버스토리의 질문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