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다문화를 품다] 베트남 등 제3세계와 외국인 노동자 등 국내 이주민 삶 소재 작품 잇달아

다문화에 관한 문학 작품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우선 서양과 일본, 중국에 치우쳐 있던 작가들의 시선을 제 3세계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하나다. 베트남, 팔레스타인, 미얀마 등 제 3 세계 소재를 통해 '세계 속의 우리'를 발견한다. 제국주의적 시선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은 다문화를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두 번째는 '우리 안의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등을 통해 국내 이주민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세계 속의 우리

문학은 태생적으로 특정한 사회현상을 즉각적으로 발현하는 장르가 아니다. 장편 소설의 경우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수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미적 성숙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나온다.

단편소설과 시, 희곡의 경우도 미적 완성도를 가진 작품을 만드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 작가의 단편집이 묶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3년, 시집은 편차가 있지만, 평균 4~5년에 한 권이 묶인다.

따라서 1990년대 이주민과 다문화가 문학의 새로운 소재로 등장했다 하더라도 이를 본격적인 쓴 문학 작품은 시간이 흐른 2000년대부터라는 말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방현석 작가의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다. 방 작가는 1994년부터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어 아시아권 문학 소통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그는 2003년에서야 베트남에 관한 작품집을 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기웃거린 지 10년이 되어서야 겨우 베트남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쓸 엄두를 냈다. … 우리들이 존재하는 형식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밝혔다.

표제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주재 한국기업(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건석의 일화를 그린 단편이다. 건석의 배다른 형은 베트남 혼혈인인데, 건석은 어릴 적부터 그런 형을 부끄러워했다. 형은 건석의 학비를 대며 공장에서 일하다가 파업에 휘말리고,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죽는다.

작품에서는 형의 삶과 베트남에서 만난 러이의 삶이 기억을 통해 병치됨으로써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경험의 유사성이 드러난다. 건석의 의식 흐름으로 이 비극을 딛고 연대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타진된다.

이밖에도 이대원의 소설 '슬로 블릿'과 김형수의 시 '슬픈 열대'등은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 배출한 문학적 성과다.

2007년 출간된 오수연의 소설집 '황금지붕' 역시 '세계 속의 우리'를 그려낸 작품이다. 2003년 이라크전 당시 팔레스타인을 통해 이라크로 들어갔던 작가 오수연 씨는 지식인 모임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 모임과 이라크전 경험을 토대로 2007년 '황금 지붕'을 출간했다.

표제작 '황금지붕'을 비롯해 '문', '소리', '꽃비' 등 6편의 단편이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쓰였다. 일련의 작품들은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나 팔레스타인과 아시아적 연대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 문제를 전 지구적 시야에서 새롭게 인식하는 통로를 만든다.

이 작품집에 대해 문학평론가 황광수 씨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상태에 있는 지역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의 진경을 보여주었다"고 평한 바 있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들은 '세계 속의 우리'를 보는 시선으로 국내 리얼리즘 문학의 세계관과 미학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다.

방현석, 오수연, 박범신, 김려령, 공선옥


우리 안의 그들

2004년 이후 박범신 작가의 장편 '나마스테'를 비롯해 십여 편의 다문화 작품이 발표됐다.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등 '우리 안의 그들'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다.

김재영 작가의 단편집 '코끼리'(2005), 손홍규 작가의 단편소설 '이무기 사냥꾼'(2005), 이시백의 연작 소설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 공선옥의 연작 소설 '유랑 가족'(2005) 등이다.

하종오 시인은 2005년 이주민, 다문화를 주제로 시집 '국경 없는 공장'과 '아시아계 한국인들'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20만부를 돌파해 청소년문학의 한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김려령의 '완득이' 역시 이주노동자 문제를 소재로 쓰고 있고, 김기정, 이용포 등 8명의 신진 작가가 쓴 단편집 '빨주노초파남보똥'(2008)은 인세 일부를 아예 이주노동자 조합에 기부한다.

이 작품집에 실린 '노랑'은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 아들의 눈으로 유머러스하게 바라본 작품이다.

박범신의 '나마스테', 김려령의 '완득이' 등 대중적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지만, 다문화에 주목하는 대다수 문학작품은 노동문학계열의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다문화 현상에 따른 '불편한 진실'에 집중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김재영의 '코끼리'에서 화자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관계, 상하의 위계질서가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민족과 인종 차별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 노동자가 하지 않으려는 3D업종의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최하층 노동자 계급임이 뚜렷이 그려진다.

손홍규의 '이무기 사냥꾼'에서 방글라데시인 '알리'는 불법 체류자다. 그는 한국인 범법자에게 사회적 약점을 저당 잡힌 채 이용당하는 신세가 된다.

이렇듯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이주민들은 모두 한국사회 내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차별은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점과 함께, 1960년대 개발 독재 이후 성장제일주의 신화에 갇혀 노동자 인권을 유린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노동문제가 겹쳐있다.

문학평론가 고명철 씨는 평론집 '뼈꽃이 피다'에서 "20세기 한국문학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현실이 일국적 차원에서 탐구된 것이라면, 21세기 한국문학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현실은 지구적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작가들의 시선이 진정한 연대에 이르지 못하고 연민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07년 한 심포지엄에서 문학평론가 복도훈 씨는 "우리 문학이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정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엄밀히 말한다면, '세계 속의 우리', '우리 안의 그들'을 드러내는 다문화 문학 작품들은 '감각이 대세(본지 2265호 참조)'인 현재 한국 문단에서 주류적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다. 복도훈 평론가의 지적처럼 이들의 시도 중 일정부분 한계를 지닌 점도 있다.

그러나 다문화를 다룬 문학작품이 새로운 리얼리즘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평에 문학계 이견은 없다. 19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이 단순한 현실 고발에 그친 반면, 현재 다문화를 다룬 문학 작품들은 이를 한 단계 발전시켜 미학적 성취로 발현 시켰다는 평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노동시장 유입, 새로운 사회의 현실,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노동 유연성이 강조되는 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21세기 한국인의 삶을 다룬 리얼리즘문학은 예전에 비해 더 심층적인 세계관을 필요로 하게 됐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통찰이 한국 문학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