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희망의 판타지]엄복동·손기정서 국민남매 박태환·김연아까지 세대를 이어가

1-김태균, 2-박찬호, 3-김일, 4-홍수환

한국의 근ㆍ현대 스포츠 100년사는 ‘판타지’의 연속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거쳐 냉전시대, 산업화시대를 이어오는 동안 스포츠는 국민에게 질곡의 현실에서 벗어나 희망의 안식처를 제공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판타지는 스포츠 스타들의 신화를 통해 이뤄졌다. 해방 이전부터 최근까지 시대별 스포츠 신화의 영웅들을 따라가 본다

슈퍼스타의 탄생

한국 스포츠사에서 최초의 스포츠 스타는 ‘자전차대왕’‘자전차귀신’으로 불린 엄복동(1892~1951)이다. 자전거 판매상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1913년과 1922년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일본 선수를 물리치고 우승,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자긍심을 높힌 ‘스타’였다. 그의 대회 출전에는 관중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우승할 때마다 조선인의 반일 감정을 들끓게 하면서 암울한 현실에 희망을 주었다.

이어 1930년대 ‘오빠부대’를 불러온 야구천재 이영민(1881~1962)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조선의 야구대표로 출전해 일본팀을 연파, 식민통치에 억눌린 조선인들에게 통쾌함과 용기를 북돋웠다.

해방 이전 최고의 슈퍼 스타는 단연 손기정(1912~2002)이다. 1932년 신의주 대표로 ‘제2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양정고보 6년생이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해 금메달을 땄다.

동아대 정희준 교수는 “근대 초기, 조선인들이 가졌던 민족적 열등감은 육상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극복되기 시작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목에 건 사건은 그 정점이었다”고 말한다.

해방 직후인 1947년에는 서윤복(1923~)이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 한국을 처음 세계에 알렸다. 산업화시대가 본격화한 1960~1970년대 초의 영웅은 권투선수 김기수(1941~1997)와 프로레슬러 김일(1929~2006)이었다.

김기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1966년)으로 서양사람과 싸워 이긴, 그리하여 국민에게 자존심과 자신감을 ‘육감적’으로 느끼게 해준 최초의 영웅이었다.

김일은 보릿고개 시절 대통령을 능가하는 최고의 국민 스타였다. 김일은 1963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을 차지한 후, 1960~70년대 초반 프로레슬링을 호령했다.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등 서양의 쟁쟁한 라이벌들과 경기에서 그는 주특기인 박치기로 승부를 냈다.

김일이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는 데 흑백 텔레비전의 공로를 빼 놓을 수 없다. 김일이 활동하던 196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에 흑백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스포츠 경기가 전파를 통해 대중화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중은 정치ㆍ경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암흑기에 흑백 수상기 속 레슬링 경기를 통해 울분을 표출하였다.

5-박태환, 6-김연아

1970년대 일본이 금메달을 싹쓸이했던 수영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조오련은 1974년 제7회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아시아의 물개’로 부상했다. 같은해 권투의 홍수환은 세계챔피언에 올라 국민 사이에 ‘4전5기’의 신화를 낳으며 영웅으로 부상했다. 양정모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따며 ‘한국이 낳은 장한 아들’이 됐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컬러 텔레비전이 배출한 스타들

손기정과 김일, 조오련이 ‘흑백 스타’였다면 컬러 텔레비전와 함께 범국민적 사랑을 받은 스타가 1980~90년대 출연했다. 차범근, 선동열, 박찬호와 같은 해외파 선수들의 등장이다.

차범근은 유럽에서 코리아를 알린 최초의 선수였다. 그는 서독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자마자 1979/80 시즌에서 팀을 UEFA컵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아 ‘차붐’의 애칭을 얻게 된다. 1982/83 시즌에는 15골을 터뜨리며 팀 내 최다득점 선수로 성장했다. FIFA선정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에 선정된 차붐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은 매주 그의 경기를 녹화해 방영하기도 했다.

국내 프로야구 붐과 함께 이름을 알린 투수 선동열은 1985년부터 11년간 ‘국보급 투수’,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칭과 함께 국내 최고 선수로 인정받았다. 1996년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인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해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고 이듬해엔 시즌 최다 세이브인 38세이브를 기록, 일본에서 첫 타이틀을 석권하며 명성을 떨쳤다.

1990년대 등장한 박찬호는 야구 종주국 미국의 메이저리그 투수가 되어 ‘국민의 자존심’을 높였다. 1994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구원으로 첫 등판한 이래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고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1998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등장한 박세리는 국민 영웅이 됐다. 1998년에 LPGA 투어에 참가한 그는 투어 참가 첫 해에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특히 U.S. 여자 오픈 결승전에서 호수에 빠진 골프공을 치기 위해 맨발로 물에 뛰어든 모습은 ‘의지의 한국인’의 상징이 됐다.

외환위기 시절, 국민은 박세리와 박찬호, 두 스포츠 스타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

국민동생의 출현

2000년대 스포츠 스타는 옆집 아이 같은 친근함과 함께 헝그리 정신과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 아닌 타고난 재능과 과학적 훈련이 더해진 국민 영웅이란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박태환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후 각종 수영 기록을 갈아치웠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수영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국민영웅이 됐다. 박태환은 타고난 신체조건과 귀여운 외모로 일약 국민남동생에 등극하며 각종 연예프로그램과 패션지 화보 촬영, 광고 모델로 주가를 올렸다.

국민 여동생 김연아 역시 타고난 재능과 과학적 훈련의 결정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국내 피겨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은 김연아는 2002년 4월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한 이래 2006년 시니어 데뷔 첫무대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 입상, 그 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그리고 올초 한국 최초로 4대륙대회에서 우승해 국민의 희망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김연아의 등장과 함께 ‘트리플 악셀’, ‘트리플럿츠’같은 피겨전문 용어를 외우게 됐고, 그를 주인공으로 쓴 만화(내일은 김연아)와 위인전(도전 슈퍼코리언 김연아)도 발간됐다.

스포츠는 사회의 반영이다. 스포츠 영웅은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제공한다. 보릿고개를 함께한 헝그리 복서와 외환위기를 견딜 수 있게 해준 박세리와 박찬호, 한층 발랄해진 국민동생은 모두 한국의 시대상을 드러내는 ‘슈퍼 히어로’다. 시대마다 등장하는 스포츠 영웅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국민 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