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정신]심장박동 주기와 비슷한 배기음·말타고 달리는 듯한 기분 매력

1- 아서 데이비슨, 2-윌리엄 할리, 3-현대모터사이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할리데이비슨 초기모델 serial No.1 4-할리데이비슨의 트레이드마크인 V-트윈 엔진

과거에 남성성으로 상징됐던 터프함은 현대화가 되면서 그 효과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듯하다. 깨끗한 피부에 예쁘장한 ‘꽃미남’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남성의 터프함보다 세심한 감성을 선호하는 현대여성들의 취향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성들의 바람일 뿐, 꽃미남에 가리워진 남성들의 본성은 여전히 살아있다. 현대사회가 부드러운 젠틀맨을 원하는 만큼 남성들의 야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할리데이비슨은 남성의 야성을 대표하는 모터사이클이다. 탄생한지 106년이 되었지만 할리데이비슨은 그 특유의 올드한 이미지를 유지하며 남성들의 본성을 자극하고 있다.

건장한 남성이 말을 타고 거친 벌판을 달리는 서부영화의 한 장면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매력적인 모습이다. 남성들의 뼛속깊이 각인된 ‘남성성’을 자극하는 이 주인공들은 거친듯하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듬직한 모습으로 보호받고 싶은 여성들의 심리를 건드리기도 한다.

할리데이비슨은 말을 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오토바이이다. 그래서 할리데이비슨의 라이더들은 서부영화의 남자주인공에 비유되기도 한다. 때론 이러한 남성성의 상징이 여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할리데이비슨의 마니아가 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할리데이비슨의 매력, 그 첫 번째는 소리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이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소음인 할리데이비슨의 배기음은 말을 타고 달릴 때의 느낌을 나타내는 것으로, 말 달리는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다그닥 다그닥’과 비슷하다.

영어로는 “potato-potato-potato”라고 표현되는 이 소리는 삼박자의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키며 동시에 몇 km가 떨어진 곳에서도 할리데이비슨을 짐작케 하는 특유의 사운드이다.

땅을 울리는 웅장한 이 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면 실제로 심장이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소리가 커서’가 아니라 심장 박동주기와 비슷한 울림 때문이다. 할리데이비슨에 푹 빠진 사람들이 할리데이비슨이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판매와 구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이 소리다. 이 고유의 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할리데이비슨은 배기음만을 연구하는 부서 NVH(Noise Vibration Harshness)를 설립하여 전문적으로 소리를 연구, 관리하고 있다.

이 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할리데이비슨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눈으로 보아도 매우 크게 보이는 엔진의 움직임은 자그마치 2~3cm간격이다. 크게 요동치는 엔진은 마치 차대에 붙어있지 않고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고무부싱을 넣어 진동을 흡수하게 하는 방법인 러버 마운트 방식에 의한 것이다.

자동차 기술이 발달할수록 조용하고 움직임이 적은 차가 생산되고 있지만 이와 반대되는 할리데이비슨의 소리와 진동은 현대인들의 잠자고 있던 야생성에 대한 본성을 깨우는 것이다. 마치 말을 타고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강한 진동은 승마를 즐기듯 할리데이비슨을 레포츠로 여기기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도로를 질주하는 할리데이비슨은 웬만한 자동차만한 크기로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위험천만한 오토바이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큰 몸집 때문에 자동차처럼, 아니 그보다 더 중후하게 도로를 달려야 한다. 이러한 할리데이비슨의 디자인은 소리와 진동을 담고 있는 총체다.

과거의 디자인과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은 현대적인 엔진을 가미하면서도 전통적인 멋을 고수하기 위한 12명의 스타일리스트와 300명의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유행 따라 쉽게 변해버리는 디자인은 결코 역사를 운운할 수 없다.

사회가 첨단화될수록 옛날이 그리워지고 인간적인 멋이 부각되는 것은 빈티지 스타일이 뜨고 있는 이유와 직결되기도 한다. 할리데이비슨은 모터사이클 업계에서 유일하게 ‘디자인 코리아 2005’의 ‘서울베스트디자인전’에 초청을 받으면서 우수한 디자인 그자체로 인정을 받았다.

할리데이비슨이 유지하고 있는 전통은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193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전통적인 엔진방식 OHV(Over Head Valve)는 지금의 할리를 지탱시키고 있다.

1903년 윌리엄 할리(William Harley)와 아더 데이비슨(Arthur Davidson)은 현대 모터사이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동력자전거 ‘할리데이비슨’을 통해 그 역사를 일구어왔다. 1909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트레이드마크 V-트윈 엔진을 개발, 세계대전에 모터사이클을 납품하면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전성기를 누리던 할리데이비슨은 50, 60년대 위기를 맞게 되었지만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애정을 가진 소수의 임원들과 할리데이비슨을 사랑하는 오너들의 모임 H.O.G.(Harley Owners Group)를 통해 활기를 찾게 된다.

1984년 할리데이비슨의 결점을 완벽하게 커버해주는 새로운 엔진 에볼루션을 선보이면서 라이더들의 더욱 큰 신뢰와 사랑을 받아 마침내 연간 10만대 생산을 넘어서는 기록을 남겼고 주식시가총액에서 GM사를 앞지르기에 이르렀다.

할리데이비슨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할리를 사랑하는 ‘충성고객’이었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력을 지닌 할리데이비슨의 오너들은 전통적인 멋과 맛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전세계 130개국 1,405챕터에 속해 있는 100만여 명의 H.O.G. 멤버에는 한국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1999년부터 300여 명의 회원으로 시작된 H.O.G. 코리아챕터는 한국 내 가장 큰 모터사이클 동호회로 회원수는 현재 1,300여 명에 달한다. 할리데이비슨 오너 그룹의 멤버들은 결속력이 뛰어나기로도 유명하다.

매년 2회의 랠리를 통해 그들의 자부심 공유가 가능한 것은 ‘사회 규범을 존중하고 행복 나눔을 실현하는 가운데 표현하는 무한한 자유와 개성’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거칠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사회의 모범이 되고자 하는 그들은 서부영화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글│최유진 미술세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