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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훌륭한 연주자와 지휘자에 뛰어난 경영 능력 삼박자의 조화 필수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







오케스트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유럽에서는 삶의 질을 말할 때 어떤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는가를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문화예술의 선진국들에는 정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된 배경에는 물론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대체로 세 가지 충분조건이 전제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장인 사이먼 래틀은 언젠가 “좋은 오케스트라란 좋은 연주자가 많은 오케스트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대로 오케스트라의 핵심은 역시 ‘단원’이다. 실제로 악기 소리를 내며 연주를 하는 사람은 결국 그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단원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 20년 전 지휘자 임헌정이 부천 필하모닉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도 엄격한 오디션으로 단원을 선발한 것이고, 4년 전 서울시향이 법인화되면서 가장 우선 시행된 일도 대대적인 단원 오디션이었다.

그래서 정식 오디션 외에도 실력 있고 이름난 스타 음악가들을 오케스트라의 악장이나 수석단원으로 영입해 오케스트라의 기량과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일도 많다. 이때 새로 영입할 음악가의 기량이 이미 검증되었다 할지라도 정단원으로 임명하기 전에 시험적으로 몇 차례의 공연에서 함께 연주해본 후 단원들의 투표로 그의 입단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신중한 오디션과 시험 과정을 거쳐 좋은 단원을 선발한다 해도 오케스트라의 모든 자리를 채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공연 때마다 필요한 객원단원을 초청해 부족한 인원을 충원한다.

좋은 객원단원을 구하는 일은 정단원을 선발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국내 오케스트라의 경우 프리랜서 연주자나 음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객원단원을 모집하기 때문에 연주회 날짜와 음대의 실기시험 일정 등과 겹치게 되면 객원단원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또한 어렵게 객원단원을 초청한다 해도 일시적으로 연주에 참여하는 그들이 전체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객원단원 확보의 문제를 ‘아카데미’ 제도로 해결한다. 아카데미에서는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이 오케스트라의 수석 단원들의 교육을 받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을 객원단원으로 참여시켜 공연 때마다 좋은 객원단원을 구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

아카데미는 오케스트라에게는 좋은 객원단원을 확보하고, 젊은 음악가들에게는 훌륭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경험을 쌓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제도다. 국내 오케스트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아카데미 제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를 시행할만한 여건을 갖춘 교향악단은 많지 않다.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은 ‘좋은 지휘자’다. 오케스트라가 군대라면 지휘자는 총사령관이다. 그의 지휘로 100여 명의 음악가들은 화음을 맞추며 하나의 거대한 악기가 된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상임지휘자나 음악감독 체제를 택해 한 사람의 지휘자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의 음악적인 문제를 결정하고, 여러 객원지휘자들을 초청해 음악적인 안목을 높인다.

한 오케스트라가 오랜 기간 동안 한 명의 강력한 리더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 단 기간에 발전을 이루기가 더 유리하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 첼리비다케와 뮌헨 필하모닉, 그리고 국내에서는 임헌정과 부천 필하모닉이 그 좋은 예다. 세 악단은 모두 한 명의 뛰어난 지휘자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조련되면서 그 악단만의 고유한 사운드와 개성을 만들어가며 일사불란한 합주력과 통일성을 갖춘 악단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휘자의 권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21세기에는 강력한 리더 중심의 체제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베를린 필도 아바도와 래틀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단원 중심의 민주적 체제로 변모해가고, 오케스트라 사운드 역시 점차 다채롭고 화려하게 변하고 있다.

상임지휘자를 뽑을 때도 단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단원들의 의견이 공연 프로그램에 반영되기도 한다. 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단원들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단원 중심 체제를 유지하며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상임지휘자 체제를 취하지 않는다 해도 지휘자의 음악적 역량이 연주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상임지휘자가 없는 빈 필하모닉이 번스타인과 함께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했을 때, 그리고 클라이버를 초청해 신년음악회를 열었을 때 더욱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 것은 역시 지휘자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좋은 오케스트라에는 ‘뛰어난 경영 역량’이 수반되어야 한다. 오케스트라에 있어 경영의 문제는 종종 간과되어 왔지만, 청중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후원자를 모집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사무국이다.

오케스트라 경영에 있어 뉴욕 필하모닉의 활약은 눈부시다. 거의 단원 숫자와 맞먹는 수의 전문 경영진과 스태프들을 갖춘 뉴욕 필은 개성 있는 프로그램과 충실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합리적인 티켓 가격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다른 오케스트라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와 공연 전에 연주할 곡에 대해 해설하는 ‘프리 토크’,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 뉴욕 필의 충실한 프로그램은 유럽의 오케스트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오케스트라의 기량이 향상되고 좋은 지휘자가 많이 나타났음에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전문적인 경영과 기획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지휘자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사무국의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있는 국내 오케스트라에게 뉴욕 필의 사례는 많은 자극을 되고 있다.

그러나 뛰어난 기획력과 전문적인 경영능력을 갖춘 뉴욕 필도 최근 연주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어,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는 길은 당연히 쉽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원 개개인의 피나는 노력이 있다 해도 훌륭한 앙상블을 가능케 할 팀워크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팀워크가 좋은 오케스트라라도 그들의 연주력을 하나의 음악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뛰어난 지휘자가 없다면 오케스트라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또 제 아무리 좋은 연주를 하는 오케스트라라 해도 음악가들을 받쳐주는 경영조직과 후원체계가 튼튼하지 않다면 연주활동을 계속하기 어렵다.

단원과 지휘자, 경영의 삼박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오케스트라는 드물지만 국내외의 많은 오케스트라는 각자의 여건에 맞는 방식을 택해 오늘도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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