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 전성시대] 전시와 경매 중간형태 아트페어 중심으로 미술시장 재편

불황 탓에 갤러리 공기는 싸늘해졌고, 미술품 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경매시장은 얼어붙었다. 어려운 미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갤러리들이 선택한 ‘제3의 길’은 아트페어다. 전시와 경매의 중간 형태인 아트페어를 구심점으로 미술시장의 구도가 재조정되고 있다. 아트페어의 현재를 진단하고 그 역할을 고민함으로써 국내 미술시장의 향방을 가늠하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트페어, 미술시장의 불황 타개책

지난 3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심은하 그림’이 올랐다. 배우 심은하가 그린 그림이 15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09 서울오픈아트페어’의 부대행사인 ‘스타예술프로젝트’에 출품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오픈아트페어운영위원장인 창작화랑의 손성례 관장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기획을 했다”고 밝혔다. 2009 서울오픈아트페어에는 6명의 연예인이 참여하는 스타예술프로젝트 외에도 작품 판매 수익을 영동세브란스병원 근육병센터에 기부하는 ‘이머징 아티스트 컨테스트’, 한 화가가 유명인사 100인을 그린 ‘인물100인전’ 등의 특별전이 마련된다.

올해 아트페어는 어려운 미술 시장 상황을 반영한다. 이벤트성 기획이 늘어난 것도 한 예이다. 지난달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09 화랑미술제’에는 ‘아트열차’가 등장했다. 한 미술평론가가 서울발 부산행 KTX 열차에서 특강을 진행한 행사였다. 다음달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되는 ‘한국구상대제전’과 ‘아트서울’은 ‘과장’ 명함 소지자와 그 가족을 무료입장시킬 계획이다.

7월에는 ‘성’을 주제로 한 작품만 모은 ‘한국 에로티카 국제 아트 페스티벌’이, 8월에는 아시아 국가 갤러리들이 호텔 객실에 전시를 하는 형식의 아트페어인 ‘아시아탑갤러리호텔아트페어’가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다. ‘아시아탑갤러리호텔아트페어’의 부대행사로는 나얼, 조민기가 참여하는 ‘AHAF STAR EXIBITION’이 준비되어 있다. 손성례 관장은 “전시 관람객이 크게 줄어든 탓에 아트페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갤러리가 많다”고 말했다.

구색을 저가의 소품 위주로 갖추는 것도 경기 탓이다. 화랑미술제의 ‘아트 인 부산’에서는 부산 작가들의 작품이 100만 원대에 거래되었다. 한국구상대제전과 아트서울에는 100만원 선에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부스가 따로 있다. 이 이트페어들을 기획한 마니프조직위원회 홍명주 실장은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를 골랐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우림화랑에서 열린 ‘미니 아트페어’ 형식의 ‘화향춘신-한국현대회화 100인전’은 10호(53x43cm) 이하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이런 경향은 신진작가에 대한 미술계의 관심과 맞물린다. 올해는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미술시장에서 오를대로 오른 기성작가의 작품 가격이 ‘거품’ 논란에 휩싸이고 거래가 얼어붙은 시기. 신진작가의 작품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미술전문 월간지 ‘미술세계’의 정승은 기자는 2월호에서 2009년 한국 미술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젊은 작가, 독특한 개성이 있는 작가 등 앞으로의 가능성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6일부터 시작하는 ‘서울아트살롱’은 유망한 작가들을 양성해 미술 시장 대중화,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참가 비용을 없애고 갤러리 단위가 아닌 작가 개인의 참가도 가능하게 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총 60여 명의 신진작가가 참가한다. 왕진오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한국 미술계가 “기성작가만 클 수 있는 구조여서 차세대 작가의 저변이 넓지 않다. 미래가 촉망되는 작가들을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6월에 열리는 ‘한국현대미술제’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20~30대 신진작가 50여 명의 자리를 마련했다.

올해 많은 아트페어는 새로운 시장 상황에 대처하는 갤러리들의 발 빠른 전략처럼 보인다. 관람객과 작가에게 미술계의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부분이다. 아트페어들의 이벤트성 기획에 대해 가나아트갤러리 마케팅팀 김정아 차장은 “다양할수록 좋다. 볼거리가 생기면 시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홍명주 실장은 “지방작가나 신진작가는 아직도 갤러리에 진입하기 어렵다. 올해 아트페어의 경향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임기응변이 오히려 미술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칫 아트페어의 본래 목표와 기능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왕진오 사무국장은 “아트페어의 중심인 작가가 아닌, 부대행사에 참가하는 연예인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학고재 갤러리의 우찬규 대표는 “아트페어는 미술 전문 시장이다. 취지에 맞게 수준 높은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 우선이다. 미술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