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 전성시대] 아트페어 매년 30개 이상 개최인기 작가·대형 갤러리 편중 현상은 문제

2009 화랑미술제는 ‘성공’했을까. 지난달 24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표미선 화랑협회장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그 기사에서 성공의 근거는 지난해보다 관람객 수가 3200여 명 증가했고 그 층도 부산 인근지역으로 넓어진 데서 ‘지방 미술시장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인’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화랑미술제가 흑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화랑협회 소속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정종효 디렉터는 “재정적으로만 계산하면 적자”라고 말했다. 32억 원의 작품 판매 실적은 작년의 70억 원은 물론, 목표했던 50억 원에도 크게 못 미친 것. 어려운 시장 상황에 참가 갤러리의 부담을 덜기 위해 부스비를 작년에 비해 20% 낮춘 것도 원인이었다.

전시와 경매 사이, 미술 시장 구심점으로서의 아트페어

참가한 갤러리들도 각각 사정이 다르다. 학고재 갤러리 우찬규 대표는 부스비가 낮았고 부산시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부산을 포함한 경남의 미술 시장 가능성을 확인한 효과를 고려하면 “손해를 보지 않았다.” 갤러리현대는 흑자를 내지 못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작품 운송비 때문이다. 대형갤러리의 경우 부스비와 운송비, 홍보비 등을 포함해 1000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 하지만 대형갤러리는 손익을 숫자로만 계산하지 않는다. 가나아트갤러리 마케팅팀 김정아 차장은 “비용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굳이 작품 판매를 통해 벌충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갤러리와 소속 작가를 홍보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갤러리에게는 당장의 참가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큰일이다. 매년 화랑미술제에 참가해온 서울 관훈동의 한 갤러리 대표는 “올해에는 운송비 때문에 참가를 포기했다. 대형 갤러리에는 잘 ‘팔리는’ 작가들이 있지만 중소갤러리는 작품 판매를 보장받을만한 작가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화랑미술제를 둘러싼 제각각의 손익계산법은 ‘아트페어’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론의 시선도 여러 층이다. 부산’에서’ 열린 미술 축제라는 시각, 부산 작가들에게 성장의 기회라는 시각에서 지역 작가 갤러리가 없는 ‘그들만의 잔치’라는 평까지. 어디선가는 ‘13억짜리 거미, 1억짜리 물방울’을 ‘구경’할 수 있는 행사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시장’이라고 못박는다.

아트페어는 전시와 경매 사이 ‘중간 지대’에서 여러 기능을 아우른다. 관람객 입장에서 아트페어는 “동시에 수천 점의 다양한 작품을 한 자리에 감상하고 작품 경향과 가격 등을 자유로 선택하여 구매할 수 있는 곳”(윤수희, 2008, ‘한국 아트페어의 활성화 방안 연구,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석사학위 논문)이며 갤러리 입장에서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미술시장 붐을 지속시킬 목적으로 연합하여 만드는 미술시장”, “미술품의 국제적 교류, 현재 특정 작가의 미술계 활동을 평가”(정준모 미술평론가)하는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가로지르기 때문에 아트페어는 오늘날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국내 미술시장은 전시를 담당하는 갤러리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잡지 못했고, 경매 시장은 작품 가격 ‘거품’ 논란과 몇몇 작품의 위작시비,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연계된 의혹이 있는 삼성비자금 사건 등의 고초를 겪으며 얼어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시장 구도가 재조정되는 시점이고, 그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제도 중 하나가 아트페어이다.

국내 주요 아트페어 현황

그렇다면 국내 미술시장에서 아트페어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을까? 미술시장 관계자들이 꼽는 가장 중요한 아트페어는 한국국제아트페어다. 국내 유일의 ‘국제’ 아트페어라는 점에서 해외 교류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판매를 촉진하는 장이라기보다 다양한 국내 작가를 소개하는 허브로 인식되고 있다.

정종효 디렉터는 “국제아트페어로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질 높은 갤러리와 해외 시장 관계자, 관람객을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운영 방향을 밝혔다. 해외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술적 영역에서의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5월30일부터 6월4일까지 열리는 한국과 아세안 국가 간 정상회의의 부대행사로 아시아권 미술계의 협력을 도모하는 목적의 세미나를 준비하는 것이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한국화랑협회에서 한국국제아트페어와 동시에 주관하고 있는 화랑미술제는 국내 아트페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1986년 시작되어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다. 최근의 행보를 살펴보면 국내에서의 미술 시장의 저변을 넓히려는 의도가 강하다.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부산에서 개최한 이유는, 부산이 제 2의 도시임에도 갤러리는 10개 이하에 불과하고 아트페어가 열리지 않는 등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외의 주요 아트페어로는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SIPA), 마니프(MANIF), 한국현대미술제(KCAF) 등을 들 수 있다.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는 판화미술을 포함한 ‘프린팅 미디어’라는 장르에 초점을 맞춘 특성화된 아트페어다. 판화와 사진, 드로잉 등의 작품을 다루었고 디지털 문화가 붐을 일으키며 더욱 각광받고 있다. 마니프는 갤러리 중심의 기존 아트페어와는 다르게 작가 중심으로 운영된다.

일종의 ‘군집개인전’이다. 작가와 구매자 간 ‘직거래’를 통해 저가로 미술품을 대중화하려는 의도다. 이러한 시도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만큼 의미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실험적 작품 찾아보기 힘들고 중년 작가가 매년 비슷한 전시만 반복한다”(윤수희)거나 “누가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작품가격을 책정하는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또 고객관리, 작품판매에 있어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정준모)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트페어의 문제점은 곧 미술시장의 구조적 취약성

위의 주요 아트페어와 여러 군소 아트페어, 지역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들을 합하면 매년 30개 이상의 아트페어가 개최된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국내 미술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숫자”라고 지적한다. 미술시장의 규모가 협소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개최되는 아트페어 중 졸속인 것이 상당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컬렉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트페어만 난립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긴다.

대표적인 예는 갤러리가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비용을 작가에게 떠넘기는 경우. 지역에서 공신력 없는 아트페어가 열리는 이유는 지역자치단체의 전시행정 때문이기도 하다.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으려는 행사 주최측의 계산과 ‘문화 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의 환심을 사려는 지자체장의 정치적 이해가 맞물린 결과라는 것.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자생력 없이 작가에게 부담을 떠넘기거나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아트페어는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 이은주 팀장은 갤러리가 아닌 일부 언론사와 기업의 자본으로 주최되는 아트페어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것은 작가와 갤러리가 중심이 되는 미술시장 메커니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다.

국내 아트페어의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되어 온 것 중 또 하나는 기획력의 부재다. 아트페어 각각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성립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미술시장의 다른 구조적 취약성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문제다. 미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수준이 낮고, 소양과 안목을 갖춘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 ??문이다. 그 결과 아트페어에서의 인기 작가, 대형갤러리 편중 현상이 나타나고 상업성이 두드러지며 국제경쟁력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이런 아트페어의 문제점은 현대 미술 시장 상황과 맞물려 ‘미술’ 자체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심상용 교수는 2007년에 쓴 ‘현대미술에 있어 트랜드화 현상과 다양성의 위기에 관하여’ 라는 논문에서 글로벌화된 미술시장에서 “예술이 예술기획의 형태로 생산되고 소통되는 일이 빈번해질수록 예술 자체가 기획화되어 가는 딜레마”를 지적했다.

그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의 세계 비엔날레의 주제를 살피며 “세계의 미술관, 비엔날레, 아트페어들이 세계의 예술들로 하여금 동일한 문제 제기를 하게 만드는” 현상을 읽어낸다. “그토록 다른 역사를 지니고, 상이한 정치사회적 상황에 처해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들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주제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에서의 트랜드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문제는 트랜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통합적 미적 지식 체계”가 부재한다는 점이다. 예술의 트랜드화는 “창조적인 개인에 기반을 두며 진정한 다양성을 향해 스스로를 여는 정신의 각성”이라는 예술의 본래 성격과 목적에 반한다는 점에서 걱정할만 하다. 국내 아트페어의 내실이 튼튼하지 못하면 그 내용이 글로벌화된 미술 시장의 트랜드를 맹목적으로 좇아갈 가능성이 크다.

미술시장의 공공적 책임 공유한 아트페어 필요

정준모 평론가의 말처럼 아트페어는 “미술시장의 바로미터”로써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현재 국내 미술시장에서의 아트페어는 여러 정황상 그 역할과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 물론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트페어를 어떤 일률적인 헤게모니 잣대로 가늠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아트페어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영역이고 작가와 갤러리, 컬렉터라는 시장 주체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미술시장은 단지 미술 ‘시장’이 아니라, 꼭 작품 거래를 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보고 느끼고 겪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로서의 ‘미술’ 시장이라는 점에서 공공적 책임의 문제를 어느 정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심상용 교수는 “미술은 인간의 관계, 삶의 의미 등을 환기해주는 영역이다. 미술시장도 이런 고민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 있는 젊은 갤러리스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조와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결국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국제아트페어 정종효 디렉터
"아트페어의 흐름 주목해 주었으면"



국내 아트페어에 대해 기획력 부재, 상업주의, 국제경쟁력 부족 등의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국내 대표 국제아트페어를 이끄는 입장에서 이런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좀 개선되었나

아트페어 주최자만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갤러리도 노력이 필요하다. 바젤 아트페어, 프리즈 아트페어 등 세계 유명 아트페어는 한 번 열리면 그 근방에서 20개 이상의 군소 아트페어가 함께 열린다.

그 아트페어들에서 실험적이고 젊은 작가들이 소개된다. 그런 작가를 주목하고 발굴하는 갤러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만 앞서 열거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국내 갤러리에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아트페어에 참가할 때는 적어도 3년에서 5년 정도는 앞을 내다보았으면 한다. 그동안 자신의 작가를 꾸준히 서포트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작가를 해외로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그 시장과 지속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갤러리도 특성화되고 아트페어의 정체성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 아트페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간지에서 수치에 치중해서 보도하는 점 아쉽다. 작품 가격이나 관람객 수 등에만 초점을 맞춘다. 아트페어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작품세계와 활동 내용 같은 것이다. 그런 부분에 초점 맞추어 흐름을 형성할 수 있는 보도를 해주었으면 한다.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심상용 교수
"다양한 중규모 아트페어 더 많이 필요"



최근 국내에서 지역을 가로지르며 열리는 아트페어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이런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시대다. 불가피한 면이 있다. 지역이 무의미하지 않나. 지역 컬렉터들이 모이기 시작하니, 갤러리 비즈니스도 한 데 모일 수밖에 없다. 지리적인 의미이기도 하지만, 취향이 쏠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취향도 통일되어가고 있고, 지역적 특수성을 잃고 있다.

올해 화랑미술제의 경우 부산에서 개최됐다. 주최측에서는 지역문화 활성화를 의도했다고 하던데

그런 순기능도 있을 것이다. 지역 미술시장의 잠재력을 끌어내거나 지역 작가가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트페어가 그렇게 '중립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은 명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지역성에 어느 정도 영역을 할애하지 않는 아트페어는 지역을 '알리바이' 삼은 것일 뿐이다. 그리고 지역문화는 아트페어보다는 미술관 같은 공공영역과 더불어 활성화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현대 미술의 트랜드화를 연구했다. 아트페어가 그것에 어떻게 일조하나

예를 들면 바젤 아트페어에는 세계 모든 갤러리가 참가할 수 없다. 200~300개 정도만 '걸러진다.' 그렇게 선택된 작가와 작품들이 그 아트페어의 정체성을 만든다. 그 정체성이 다시 작가와 작품들을 '팔릴만한' 것으로 만든다.

국내 아트페어는 아직 초기 단계라 그런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벌써 '팔리는' 패턴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갤러리가 모험을 하겠나. 트랜드가 강하면 다양성이 사라진다. 미술은 다양성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런 문제점을 고민한 이후에 지향할 수 있는 아트페어의 모습은 무엇인가

노선 비슷한 갤러리들이 여러, 중규모의 아트페어들을 조직하면 어떨까 한다. 대규모로 모일수록 다양성은 중화된다. 중규모로 조직하되 차별성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아트페어는 더 많이 생겨야 한다. 비전 있는 비즈니스로서가 아니라 젊고 참신한 작가들을 지지해줄 수 있는 바탕으로서.

그러려면 결국 아트페어를 만드는 갤러리들의 내실이 중요하겠다

갤러리 역할의 핵심은 작가를 키우는 것이다. 20c에 볼라르가 세잔느, 마티스, 보나르를 키워낸 것처럼 자신의 안목을 가지고 작가를 키울 수 있는 갤러리스트들이 중요하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