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닌텐도처럼 소비자의 시간과 마음 사로잡고구글처럼 직원 창의성 북돋고 폴로처럼 지속적으로

50년은 남의 나라, 나머지 50년은 죽어라 일하기. 우리에게 20세기는 잊혀진 세기라고 불린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든 지금에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 감지된다. 사람들이 비로소 느려진 것이다.

“지금 경제 상황은 IMF보다 확실히 안 좋습니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그때와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불감증이라기 보다는 여유라고 해석 됩니다.”

똘레랑스. 우리 말로 관용, 여유가 우리 삶 곳곳에 적셔 들고 있다. 컬처 비즈는 이런 소비자들의 변화한 라이프 스타일을 캐치해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것을 뜻한다. 소비자와의 소통이 생명인 시대, 소비자들로부터 ‘말이 좀 통하는 기업’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What is culture? 문화를 이해하라

문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 급선무다. 컬처마케팅그룹의 김묘환 대표는 ‘과거를 뜯어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대기업들의 가장 큰 잘못은 문화를 예술이나 역사에 한정 지었다는 것입니다. 문화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마시고 노는 현장에 있습니다. 거장이 그린 명화만이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소비자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문화는 어디에나 있다. 모든 시기와 모든 세대는 문화를 가진다. 문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집단적인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가치, 거기에 따른 정서가 범벅 된 거대한 덩어리다. 이를테면 네티즌들에게는 공유 문화가 있다.

그들은 집에 들어가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다. 음악도 당연히 컴퓨터를 통해 듣고 싶어한다. 가수들이 아무리 하소연해도 CD를 살 생각은 없다. 돈을 주고 콘텐츠를 사라고 하면 못마땅해 한다.

인터넷을 통한 각종 무료 콘텐츠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기업들은 소비자와 내내 싸우기만 했다. 국내 최고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포탈 사이트마저도 음원을 삭제하기에 급급할 때 이 간극을 똑똑하게 파고든 이가 있으니 바로 아이팟이다.

아이팟은 디자인과 기능도 훌륭하지만 다른 기업들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된다. 가장 강력한 것은 그들이 만들어 낸 음원 획득 시스템이다.

아이팟 구매자들이 저렴한 가격과 합법적인 방법으로 음원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아이튠즈 스토어는 기업들의 숙원인 ‘평생 고객 만들기’를 단시간에 성취했다.

‘애플의 법칙’의 저자인 하야시 노부유키는 이를 ‘아이팟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라고 부르며 ‘이미 아이팟을 사용하고 있는 전세계 1억 5천만명의 고객에게 새로운 음악 재생기를 사라고 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생으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웃음과 짜증을 이해해준 기업에게 기꺼이 충성을 바친다.

Buy consumers’ time 소비자의 시간을 사라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기업의 제품을 샀다면 이제는 기업이 소비자의 시간을 살 차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닌텐도는 화투 제작 회사답게 끝내주는 오락기를 만들어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후속작으로 나온 닌텐도 위와 닌텐도 위 핏까지 줄줄이 히트를 치면서 닌텐도 유저는 1억 명을 넘어 섰고, 닌텐도 측은 “우리의 타깃은 5세부터 95세 중, 아직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기세 등등하게 외쳤다.

그 중 온 가족이 할 수 있는 게임을 표방하는 위 핏은 ‘인 도어(in-door)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다. 집에서 요가를 하고 테니스를 치고 심지어 스키까지 타는 시대가 열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아웃 도어 인구가 줄어든 것이다. 닌텐도에 의한 희생자는 소니가 아닌 나이키가 되었다. 음악을 들을 시간에 오락기를 집어 들었다면 희생자는 아이팟이 되는 셈이다. 기업 간의 경쟁은 동종 업계의 범주를 벗어났다.

누가 소비자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점유할 것인가. 이제 기업들은 고객의 집에 감시 카메라라도 설치해 그들의 삶을 엿보려고 할 지도 모른다.

Turn your eyes to the inside 내부로 눈을 돌려라

소비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맞출 수 있을까? 사랑에 눈이 멀어 잘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엔 헤어지고 만 코끼리와 개미의 슬픈 이야기처럼, 소비자와 기업 간의 감성 차이가 너무 크다면 만족할 만한 소통은 어렵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업의 문화적 감수성을 높이는 일뿐이다. 기업의 감수성을 결정 짓는 것은 그 기업을 이루고 있는 직원의 감수성이다.

구글의 직원 복지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일명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구글 본사는 캠퍼스를 연상케 하는 넓은 잔디밭과 자유로운 복장의 직원들로 묘사된다.

애완견을 끌고 다니는 것이 허용될 정도로 허물 없는 분위기 속에서 구글러들은 아침, 점심, 저녁을 일류 요리사들의 음식으로 먹고 요가, 마사지, 수영장, 스파를 마음껏 즐긴다. 당연히 모두 무료다.

과도할 정도의 복지를 제공하면서 구글이 노리는 것은 직원들이 뿜어내는 창의성, 그리고 직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오래오래 남아주는 것이다. 내부로 눈을 돌려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은 무직의 시대를 맞고 있다.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넘쳐나지만 과거처럼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는 분위기는 아니다. 과거 일본의 프리타(free-arbeiter의 준말,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족처럼 자발적인 실업자가 늘고 있다.

평생토록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굳이 인생을 바쳐가면서 할 이유가 없다는 계산이다. 머지않아 기업은 숙련된 일꾼 하나를 얻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질 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직원들에게 오래도록 같이 할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 기업과 직원 간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것 역시 문화를 통해 가능하다.

1-음원 다운로드 시스템‘아이튠즈 스토어’로 전세계의 액세서리가 된 아이팟
2-'인 도어' 라이프 스타일을 연 닌텐도 위
3-구글 본사 내부에 있는 카페테리아
4-성도 GL이 주최하는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5-보끄레 머천다이징이 사천성 지역에 세운 소학교
1-음원 다운로드 시스템'아이튠즈 스토어'로 전세계의 액세서리가 된 아이팟
2-'인 도어' 라이프 스타일을 연 닌텐도 위
3-구글 본사 내부에 있는 카페테리아
4-성도 GL이 주최하는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5-보끄레 머천다이징이 사천성 지역에 세운 소학교

인쇄출판 전문업체인 성도 GL은 20% 가량이던 이직률을 2%로 떨어뜨렸다. 김상래 대표는 최소 한 달에 한번 이상 연극, 뮤지컬 등 각종 문화 행사와 체험 학습에 직원들을 참여하도록 한다.

모든 행사에는 직원들뿐 아니라 직원의 가족들까지 전부 동행한다. 복지에 그치지 않고 파주 헤이리 마을에 복합문화공간인 ‘퍼플’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직원들이 무료로 오케스트라를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대표의 마음 씀과 여유로운 삶의 태도에 공감하는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국내 대기업들의 출입구에는 아직도 공항에서 볼 수 있는 검색대가 설치 돼 있다.

그 앞에서 가방과 몸 수색을 받기 위해 늘어선 직원들의 줄은 출퇴근 진풍경이다. 전문가들은 “보안 유지에 쓸 돈으로 직원들과 놀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하라”고 조언한다.

Do continuously 지속적으로 하라

문화는 단 시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문화 사업에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전체 매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측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느냐에서 진짜와 가짜가 갈린다. ‘대한민국을 응원한다’고 외치고 뒤에서 고객들의 통화 요금을 가로채는 통신사에게서는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지구를 걱정한다’고 떠벌리다가도 유행이 지나가면 슬그머니 깃발을 내리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칸 캐주얼의 대표 주자인 폴로 랄프로렌은 매주 수요일 할렘 거리에 나가서 전직원이 봉사 활동을 펼쳐 왔다. 흑인들이 다니는 학교의 담장을 가꾸고 거리를 청소한 것이 올해로 근 20년째다.

911 테러 사건 때는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서부 개척 정신을 표현한 제품을 출시했다. 캠핑카를 임대해 초심을 환기시키는 복고풍 인테리어로 내부를 꾸미고 미국 전역을 돌며 단합 정신을 일깨우기도 했다.

보수주의자들의 패션, 심지어는 ‘수구 꼴통’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폴로가 미국의 국가 브랜드로서 존경 받는 이유다.

여성복 온앤온과 더블유닷을 만드는 국내 의류 기업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보끄레머천다이징은 지난해 발생한 쓰촨성 지방의 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기부 활동 및 추도에 그치지 않고 지진의 중심지인 사천성 지역에 소학교를 건립하는 중이다. 이만중 사장은 “중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혜자로서 중국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기업 문화란 기업 전반을 관통하는 공약이자 동일한 가치관을 갖겠다는 약속”이다.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듯이 일관된 미래에는 기업이 가진 고유한 문화가 소비자와의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