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매혹'인도현대미술-세 번째 눈을 떠라' 27명 작가 110여 점 5개 섹션으로 진행

1-바르티 케르 '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
2-레나 사이니 칼라트 '동의어'
3-지티쉬 칼라트 '죽음의 격차'

지난 17일부터 6월7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인도현대미술-세 번째 눈을 떠라’ 전이 열린다.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작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열린 ‘찰로! 인디아: 인도미술의 신시대’ 전을 옮겨 왔다. 27명의 작가가 110여 점의 작품으로 참여했다.

부대행사로 인도의 종교, 역사, 철학 강연회와 인도문화축제도 열린다. 세계가 주목하는 인도 문화를 조망하는 이 대규모 전시를 계기로 인도 문화의 특성과 매력을 살펴본다.

인도현대미술, 한국에 오다

전시장 입구에 거대한 코끼리가 한 마리 누워 있다.(바르티케르 ‘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 언뜻 피부의 질감이 오돌토돌해보이지만 이는 빼곡하게 붙어 있는 정자 모양의 ‘빈디’ 때문이다. 상징적이다.

신흥인도경제는 흔히 잠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코끼리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코끼리는 좀 피로해 보인다. 이 전시를 기획한 김남인 큐레이터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드는 수많은 정충의 움직임은 과잉된 생명력의 한 켠에서 시름시름 소진되는 에너지의 피로함, 무언가의 상실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는 폭발적인 인도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지만 정작 인도사회는 그로 말미암은 사회 혼란과 삶의 속도의 변화 같은 광풍에 휩쓸려 자신을 돌보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 아닐까? 막 일어서려는 듯한 코끼리의 자세는 막 쓰러진 것처럼도 보인다. 예술가는 아무래도 장밋빛 미래의 허상보다 즉물적인 상처에 더 예민한 사람들이다.

전시의 인상은 자유롭고, 들쭉날쭉하고, 흥미롭다. 인도미술의 현재를 굳이 하나의 키워드나 톤으로 편집하기보다는, 발견되는 생장점들을 고루 내보인다. 적절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현대 인도사회 자체가 여러 시대와 계층,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는 카오스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도와 관련해 여러 권의 책을 쓴 파이낸셜타임즈의 델리특파원 에드워드 루체는 “다속도의multi-speed”, “정신분열증적인schizophrenic” 같은 수식어로 인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것은 피로한 상태이지만 역으로 “왕성한 생명력, 에너지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열린 마음”(미키 아키코, ‘찰로! 인디아’ 전 큐레이터)의 상태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서구 미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제시해줄 거리를 찾아온 세계 미술계가 인도미술에 주목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미술시장에서의 인도미술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것. 미키 아키코 큐레이터는 “뉴욕과 런던에서 열리는 경매에서 인도미술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큰 돈이 투자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 원천으로서의 혼란과 공존

전시는 ‘프롤로그: 여정들’, ‘창조와 파괴: 도시풍경’, ‘반영들: 극단의 사이에서’, ‘비옥한 혼란’, ‘에필로그: 개인과 집단/기억과 미래’의 다섯 섹션으로 진행된다. ‘프롤로그: 여정들’은 주로 지금 인도의 작가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작업들로 채워졌다.

이를테면 현대인도미술로의 ‘입문’ 섹션으로 다소 개념적인 작품들이 많다. N.S 하르샤는 전시장 곳곳에 의자를 두었다. 일본 도쿄의 한 전시장에 갔을 때 관리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그 의자에 직접 앉음으로써 관리자에게 감시 당해 왔던 관계를 뒤바꿀 수 있다. 예술의 원칙은 저항과 역전이라는 의미다.

‘창조와 파괴: 도시풍경’은 고대 문명의 흔적이 남은 동시에 식민지 경험과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만들어진 폐허와 현대적 공간이 뒤섞인 곳으로서의 인도사회를 조명하는 섹션이다. 크리슈나라즈 초나트는 큰 욕조 위에 인도의 공간성을 상징하는 여러 조형물들을 쌓아 올려 현대 인도를 형상화한 ‘작은 배’를 선보였다. 현대 인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꼭대기에 얹힌 쌍안경이 앞으로 인도가 나아갈 방향을 묻는다.

이 섹션의 작품들은 개발의 결과인 스펙터클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 이면의 파괴성을 두려워한다. 나타라즈 샤르마의 설치작품 ‘에어 쇼’가 대표적인 예다. 모형 전투기의 궤적이 철제 구조물에 갇혀 있는 형상이다. 작가가 어느 날 넋 놓고 에어 쇼를 보다가 저 전투기들이 실은 전쟁의 도구임을 깨닫고 만든 작품이다.

여러 대립 쌍들이 혼재된 인도사회의 양상이 작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임을 보여주는 섹션이 ‘반영들: 극단의 사이에서’다. 작은 방으로 관람객이 들어가면 그림자가 흰 벽에 투사되고 그들 사이로 여러 선과 모양이 나타나는 식으로 현대사회에서의 관계의 의미를 묻는 실파 굽타의 ‘그림자’, “1루피면 온 인도와 통할 수 있다”는 한 통신사의 광고와 1루피가 없어서 자살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게 함으로써 인도사회의 양면을 살피는 지티쉬 칼라트의 ‘죽음의 격차’ 등을 만날 수 있다.

전통과 역사적 경험이 풍성하고 인구와 언어, 문화가 다양한 이 ‘비옥한’ 토양에 대한 다각도의 감각과 성찰은 ‘비옥한 혼란’ 섹션에 모여 있다. 주목할 만한 작가는 레나 사이니 칼라트다. 그의 작품 중 하나는 여성의 등에 도장을 찍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지리를 표현한 것.

(‘주름/균열/윤곽’) 양국간 분쟁으로 인해 국경이 변화하는 과정을 담는다. ‘새기고 찍는’ 도장의 ‘작동 방식’은 그 자체로 폭력적인 데가 있다. 그 대상도 여성의 몸이다. 폭력의 역사가 ‘마더 인디아Mother India’에 상처를 남겼음을 뜻한다.

그의 또 한 작품은 ‘동의어’다. 인도의 다양한 언어로 이름을 새긴 도장들을 사람의 얼굴 꼴로 배치한 작품이다. 그렇게 완성된 ‘초상화’는 다양성 속의 통일을 상징한다.

이외에도 스테인리스 우유병, 사발 등 대량생산된 일상용품을 접합하고 축적하여 현대인도사회의 물질소비문화를 풍자한 수보드 굽타의 작품들, 우표나 화폐에 인쇄된 ‘아버지’ 간디의 초상의 뜻을 비트는 것으로 인도를 돌아보는 아심 푸르카야스타의 작업 등이 눈을 끈다.

‘에필로그: 개인과 집단·기억과 미래’에서 개개인의 일상은 집단적 서사 속에 놓인다. 실파 굽타의 ‘운명과의 만남’은 인도의 최초 수상 자와할랄 네루가 독립 직전 헌법제정의회에서 발표한 연설문이 흘러나오는 설치 작품이다. 스피커와 마이크의 역할이 뒤바뀌어 있다는 점은 이 공식 행사가 인도 독립 이후 60년이 지나면서 사적 경험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섹션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인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이런, 개인과 집단 간, 과거와 현재 간 관계를 사유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로 전망하는 인도의 시대

전시장 출구 근처 벽에는 여러 예술가, 학자들이 밝힌 ‘인도’에 대한 단상들이 적혀 있다. “무대 안쪽에서 관객을 향해 ( )의 시대로 인도가 등장한다”는 문장을 그들에게 주고 괄호 안을 채우도록 한 결과다.

“터무니 없는 피로와 실체 없는 헐떡거림의 소리”, “끝없는 불확실성과 사라져가는 서구의 전성기와 그릇된 아시아” 등이 눈에 들어온다. 진단한 현실이 썩 밝지만은 않지만, 이런 “자기부정”이 인도현대미술의 동력인지 모른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