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매혹인도 파키스탄 접경 오지불교사진작가 전제우 순례기록 사진전 책 담아

비경이다. 의젓한 산악의 품에 소박한 정경의 곰빠(절)가 안겼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만큼 명도가 은은하고 채도가 편안하다. 드물게 오가는 스님들의 행색은 자연스럽다. 종종 산자락에 펄럭이는 ‘타르쵸’(불교 경전을 적은 천으로 곰빠 근처에 널어둔다.

바람에 의해 온 세상에 퍼지라는 의미)의 찬연한 색감, 무리진 동승들에 어린 생기와 총기는 미장센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정중동이다.

여기는 지난해 여름 불교사진작가 전제우가 다녀온 북인도 라닥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일대의 오지다. 한눈에야 아름답지만 편리한 땅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송광사 방장 범일 보성 스님의 말마따나 “신앙과 수행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다. 고산준령이라 접근하기 어려운데, 그 탓인지 그 덕인지 티베트 불교 스님들이 수행하는 곰빠가 속속들이 배어 있다.

전제우는 천정스님의 ‘보시행’(베푸는 행위)에 동행했다. 20년 넘게 인도 다람살라에서 수행 중인 천정스님은 매년 의약품과 생필품을 갖고 다락을 찾는다. 그곳 사람들의 어려운 형편을 돌보기 위해서다.

고생이 많았다. 내내 고산증에 시달렸고, 먹고 씻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필 “최고로 열악한 곰빠”인 ‘랑둥곰빠’에 고산증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이곳은 물이 한 방울도 없어 종일 당나귀 등에 물통을 싣고 멀리까지 물을 길러 오가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는 “이런 곳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행복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불교에서 행복은 마음의 평안함에서 온다고 했다. 라닥 사람들은 행복을 멀리서 찾지 않는다. 현재가 행복하고, 사는 곳이 행복한 곳이라고 알고 있다.” 그가 ‘행복하냐’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순하게 웃으며 “삼보님(부처, 부처의 법, 불교 사회를 이르는 말) 가피(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줌) 덕분에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사진작가로서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감동적인 사치”를 맛본 후, 그는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깨쳤다. 예를 들면 이런 순간.

“밖으로 나와 보니 건너편 산이 저무는 햇살에 비쳐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좀 점 우리가 다녀왔던 라마유르 곰파 뒤 계곡이 붉게 물들어 감히 그 어느 화가도 흉내낼 수 없는 명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얼른 사진기를 들어 파인더에 눈을 댔다. 그리고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마냥 셔터를 눌렀다. 부처님께서는 이 척박한 불모지에서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눈부신 아름다움을 주셨나 보다.”

미세한 돌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콧바람도 내지 못하고 일주일 이상 집중해야 하지만 완성 한 후에는 부처님의 뜻이 널리 전해지도록 흐트러뜨려 버리는 ‘만다라’ 수행은 “한순간 세상에 왔다 덧없이 사라져가는 인생사” 같았다. 이토록 험한 준령과 초원은 “아래 세상의 번잡한 인간사”를 덧없게 만들었다. “이곳 사람들이 수행에 익숙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인도는 ‘인도’다. 문명화된 세속적 가치를 넘어서는 멀고 높은 ‘영성’이 깃든 지명이다. 시인 류시화가 “나 자신과 마주서 본 적이 있는” 곳,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안에 있는 신을 알아본다는 뜻으로 인사를 나누는 곳이다. ‘인도’가 문명과 세속에 찌들려 자신을 잃은 모든 사람들을 매혹하는 지점이 바로 그것임을 전제우의 라닥 순례가 다시 일깨운다.

전제우는 이 순례의 기록을 지난 12일까지 열린 사진전 ‘청전스님과 함께한 북인도 라닥 곰빠 이야기’와 책 ‘라닥, 하늘길을 걷다’에 담았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