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문화에 꽂히다] 이청승 세종문화회관 사장3~4기 지나면 대한민국 문예 진흥 그룹으로 성장할 것

수십 년 전 한 청년이 ‘문제’라는 제목을 달고 개인 에세이집을 펴냈다.

그 때 “‘문제’를 쓴 문제아”란 타이틀로 화제를 모으며 당대 최고의 인기 잡지 ‘주간한국’에 인물 기사가 실렸던 그의 이름은 이청승. 당시 ‘예비 청년 재벌’로까지 관심을 모으다 지금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된 그는 수 십년 만에 주간한국과 다시 인터뷰를 가졌다.

“내 인생에 돈만 벌다 사는 것은 아니다 싶어 과감히 결심했습니다. 수출도 잘 되고 편안한 생활이 보장됐지만 기업 운영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 셈이죠. 아들에게 (조금 이르다 싶긴 했지만) 물려 주고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 있는 그의 이력은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민간기업인 CEO 출신으로 ‘뒤늦게 공직에 입문’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의 사업 경력들. 이미 20대 때 동대문종합상가에도 투자해 돈을 버는 등 일찍이 사업에 눈을 뜬 그는 ㈜현우를 설립, 중견기업으로까지 성장시켰다. 상공의 날에 대표자상과 수출산업훈장도 받는 등 실적을 쌓고 폴라화장품과 50대50으로 합작계약에 성공하면서는 유명세를 치르며 재계의 커다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1999년 그가 새롭게 택한 길이 ‘디자인 전도사’. 국제디자인대학원 아카데미 원장을 지내며 기업들의 디자인 마인드 고취와 디자인 경영 확산에 적극 나섰다.

“당시 디자인 전도사를 자처하며 쌓게 된 안목과 경험이 밑바탕이 돼 지금 세종르네상스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상당 수준으로 진척이 이뤄졌고 앞으로는 문화와 예술 부문에서 발전을 이뤄야 하는 것이죠.” 이청승 사장은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문화의 르네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해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여러가지 역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CEO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강좌 프로그램인 ‘세종르네상스’. 1기가 졸업한데 이어 지금 2기 수업이 한창인 과정으로 최고경영자들의 문화 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이면서 우리 사회의 문화 수준을 높여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를 통해 문예진흥이 일어날 때 당시 지배 권력인 메디치 가문의 절대적인 후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메디치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르네상스가 없었다고 말 할 정도로 큰 역할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청승 사장은 세종르네상스를 ‘CEO들의 문화사랑방’이라고 부른다. 한 기에 70여명씩 3~4기가 지나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문예진흥 지원 그룹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문화를 경영과 최고경영자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사실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아침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아니다. 국제디자인대학원 재직 시절 디자인을 주제로 한 비슷한 프로그램인 ‘아이다스(IDAS)’를 운영해 적잖은 성공을 거뒀기 때문. 당시의 경험과 실적이 밑바탕이 돼 오늘날 세종르네상스가 탄생한 셈이다.

“앞으로의 경영은 문화 예술과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나가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을 경시하고서는 완전 경영을 이룰 수도 없는 것이지요. 회사의 이미지부터 브랜드, 소비자 서비스, 기업 문화와 사원 관리 등 모든 것이 문화와 같은 코드로 연결돼 있습니다.”

기업인이고 경영자로서 문화에 대한 그의 특별한 신념은 젊은 시절에 이미 잉태돼 있었다. 학생 시절 르네상스를 공부하면서 다빈치의 매력에 가슴이 뛸 정도로 흠뻑 매료된 것. 단 한 사람의 천재, 인재, 나아가 지도자가 그 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면서다.

“‘한 우물을 파라’ 그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지식인이 돼야 하는 것은 성공의 기본 조건이죠.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의 진정한 성공과 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여러 분야들을 아우르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 사장은 이를 ‘통섭’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통섭 속에서 진정한 가치가 자랍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그의 지적도 이런 그의 시각과 그대로 연결돼 있다. “이제 한국적인 것만 끄집어 내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같은 유교문화권이고 지리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어우러져야 우리의 경쟁력도 더 살아날 수 있다고 봅니다.”

글로벌적인 그의 안목은 또한 그의 국경을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회사와 합작을 하면서 선진 경영을 배우고 중국에도 진출, 예술대학을 만들어 운영하고 새마을운동을 소개해온 경험에서 비롯된 것. 대학교를 다니면서 출판사를 설립, 학교 교지 편집장도 거친 그는 한중일 세 나라를 아우르는 문화 계간 잡지 ‘베세토’도 발간한 적이 있다.

“결코 전시 행정은 제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지요.” 기업가 출신답게 실효성과 동기부여를 강조하는 그는 ‘주인의 삶’을 강조한다. 공기업적인 특성상 타성에 젖지 않도록 직원들에게도 스스로 창조적으로 일하는 자발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항상 얘기한다.

“광화문 광장의 조성과 함께 시내 인근 문화 예술 시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세종벨트’ 구상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함께 협력해 나가면서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지금껏 살아 오면서 경험하고 축적해온 모든 에너지와 네트워크를 여기(세종문화회관)에 다 쏟아 붓고 가겠습니다.” 문화 예술을 향한 이청승 사장의 다부진 각오가 느껴지는 한 마디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