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문화에 꽂히다]생생한 예술 현장체험 바탕 기업 경영과 접목 시도입학 희망자 꾸준히 증가

1-세종 르네상스 강의
2-라운지에서 식사
3-황병기 교수의 가야금 강좌 & 공연

CEO들은 왜 지금 문화 예술 배우기에 나서는가?

“문화는 이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기업 경영에서도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 다양한 분야와 형식을 통해 경영과 문화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한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세종르네상스를 담당하는 세종문화회관 문정수 교육사업팀장은 “굳이 경기가 좋든 그렇지 않든 간에 관계없이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도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CEO들의 문화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최고경영자 문화예술과정의 경쟁률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말과 올 초 두 차례 모집한 세종르네상스의 평균 경쟁률은 각각 3대1. 한 기수에 70 여명만을 선발하는데 무려 절반 이상의 신청자들이 심사 단계에서 탈락해야만 했다. 갓 출범한 강좌치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문화계 및 재계에서조차 놀랍다(?)는 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CAP과정 또한 최근 들어서는 입학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3년여 전부터 2대 1이상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 2003년 처음 개설했을 때만 해도 학교측에서 나서서 더러 입학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널리 알려진 지금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신청자들이 밀려들 정도다.

‘입학관문’을 통과한 이들 수강생들 중에서 기존의 경영 경제 관련 최고경영자과정을 들어본 ‘경험자’들과 생전 처음 CEO과정에 입학한 ‘초보 학생’들이 고루 섞여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경영 관련 졸업장을 가진 이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CEO들에게 고루 어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럼 이들 문화 CEO과정과 경영 경제 분야 CEO과정의 형식상 가장 큰 차이점은? 문화와 경영이라는 각각의 주제가 다른 것 외에도 서로 다른 수업 방식도 크게 차별화된다. 아무래도 문화예술이라는 특성상 교실에서의 강의 외에도 실습이나 관람 등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세종르네상스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인프라를 이용, 각종 공연이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시간을 많이 마련한다. 생생한 문화 현장을 몸으로 보면서 감성을 느끼라는 시도에서다. 일반 수업에서도 2교시에는 예술가들을 초청, 강의와 함께 공연을 덧붙이는 것도 같은 맥락.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개설한 CAP는 다양한 예술 장르에 걸쳐 강의와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공연이나 전시는 물론, 연극, 무용, 도예, 사진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술학교라는 특성 때문. 학교 선생님들도 강의에 나서고 학교 시설도 CEO들이 실습공간으로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

“평소 쉽게 가 볼 수 없는 발레 연습장이나 도예실에 들어서서 실습에 임하는 CEO분들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예술의 현장에서 이뤄지는 수업인데다 교수나 학생들이 바로 ‘눈 앞에서’ 살아 있는 시범을 보여 줄 때면 CEO분들의 눈동자도 초롱초롱해집니다.” 성기숙 CAP 주임교수는 “평소 ‘삭막한’ 환경에서 주로 생활하기 쉬운 CEO들에게 문화 예술적 감성을 가장 쉽게 전해줄 수 있는 곳은 예술 현장”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문화예술과정을 듣는 CEO 수강생들 중에는 ‘문화 예술 초보자’도 있지만 젊은 시절 예술을 동경했던 “예술 지망생’들도 적잖이 섞여 있다. 예술 방면에 소질은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진출하지 못하고 대신 ‘생업’을 선택했던 이들이 뒤늦게 나마 ‘꿈을 성취하게 돼’ 마냥 즐거워 한다는 것. 정규 수업과는 별개로 예술 실습을 위주로 하는 CAP의 특별활동은 이런 이유 때문에 항상 인기만점이다.

일반 경영 경제 관련 CEO과정에서도 수강생들간의 교류와 인맥 형성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는 문화 예술 CEO과정도 마찬가지.

세종르네상스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수업을 갖는데 6시부터 라운지에서 식사와 함께 ‘학생들’간에 서로 인사하고 환담을 나눌 기회를 마련한다. CAP 과정은 매주 월요일 1교시와 2교시 사이에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지면서 역시 대화의 시간을 제공한다. 수업이 끝나면 있기 마련인 뒤풀이라면 ‘간단한’ 소모임이 있는 정도. 더불어 이름난 문화계 인사들의 얘기를 가까이서 들어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원우분들 중에서는 친교의 시간을 더 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너무 늘어나 강의가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에 자칫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수업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세종르네상스 문정수 팀장은 “때문에 수업의 열기나 강도가 웬만한 대학 수업 수준 이상이다”고 전한다. 이는 또한 문화CEO과정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이다.

CEO 문화예술과정을 거치면서 효과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화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운CEO들이 기업 경영에 문화적 감성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문화 예술의 후원자로 올라서고 있기 때문. 직원들에게 술자리를 마련하는 대신 공연 티켓을 대량으로 구입해 선물하거나 예술 교육 시간을 마련하는 것 등이 가장 먼저 바뀐 일상의 변화들.

“하지만 문화나 예술이라 하면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인식을 친근하게 바꿀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수강한 CEO 과정을 다른 CEO들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부쩍 늘고 있다”고 성기숙 교수는 전한다.

CEO들이 문화예술 수강 과정을 통해 쌓은 교분을 확대하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CAP는 과정을 마친 CEO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못이겨(?) 포스트CAP과정(예술장르심화과정)을 추가로 개설했다. 이름 그대로 CAP과정 졸업생들만을 대상으로 이들이 또 다른 문화 수업을 받는 것. 50명을 모집하는 1기 정원이 금방 꽉 찼을 정도로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세종르네상스 또한 방학기간 동안 예술 과제를 내 주며 소그룹별로 모임을 갖고 점검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졸업한 1기와 2기간에 워크숍 등을 통해 친교의 장을 마련하는 등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문화예술과정을 마친 CEO들의 관심이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도 또 하나의 소득이다. 세종르네상스는 원우들의 추천을 받아 월1회 젊은 차세대 그룹에게 문화예술 무료 강좌를 열어주고 있다.

CEO들의 자제분이나 회사 실무 직원들이 대부분 참가자들로 인기도 높다. 또 매 기수 마다 3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아 예술 지원금으로 기부하기로 의견을 모아 실행하고 있다.



글·사진=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