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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스캔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미술, 영화를 만나다
미술품 복제 모티프로 미술에 대한 상식과 비밀, 의혹과 상상 뒤섞어 영화화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400년 전 사라진 전설의 그림 ‘벽안도’가 나타났다. 그림을 손에 넣은 이는 국내 최대 규모 갤러리 ‘비문’의 배태진(엄정화) 사장. 그는 천재적인 복원 전문가 이강준(김래원)을 영입해 ‘벽안도’를 제 모습으로 되살리는 계획을 알린다. 하지만 이 복원 작업을 둘러싸고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 다사다난의 와중에 미술계의 이면이 드러난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미술 영화’다. 단지 미술을 소재로 삼았다기보다 국내 미술계의 이슈와 메커니즘, 뒷이야기를 소상히 파고들어 꿰어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기에 어디까지는 상식, 어디까지는 감춰졌던 비밀, 어디까지는 제기되었던 의혹, 어디까지는 상상인데 이 여러 층위들이 뒤섞이며 미술계를 조명하는 과정과 의미가 제법 흥미롭다.

인사동 스캔들의 발원지

5년 전 영화제작사인 쌈지아이비전의 전호진 대표로부터 ‘미술 영화’를 만들어볼 것을 권유 받은 박희곤 감독은 인사동부터 찾았다. 미술을 눈요깃거리로 삼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갤러리 주인부터 골동품 상인까지, 사람들을 최대한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이 ‘바닥’이 보였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사동의 ‘컨베이어 벨트 식’ 시스템이었다. 재료 조달에서 액자 제작, 작품 거래까지 미술품 제작-유통의 전과정이 전문적으로 분업화되어 있고 각각의 과정 간 연결이 긴밀해서 그야말로 “화가는 그림만 그리면 되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충분히 위작이 나올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감독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미술품 복제’에 맞춰졌다. 자료 조사를 하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마주쳤다. 천경자 화백의 일화가 한 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미인도’를 보고, 화백 스스로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증에 부쳐진 결과는 ‘진품’이었다. 화백은 이에 불복해 절필을 선언했다. 2007년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 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도 위작 논란에 휩싸여 있다.

국내에 있는 ‘몽유도원도’는 지난한 역사가 만들어낸 모작이다. 조선의 궁중화원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이 그림의 진품은 임진왜란 때 일본이 가져가 현재 덴리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반환 요청에 응하지 않고 모작을 제작해 보내왔다.

감독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몽유도원도’를 보고 “여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함축되어 있다”고 느꼈다. 작품 밑에 ‘모사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데도, 관람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좋아할 뿐이었다. 인사동에서 마주친 풍경, 그곳에서 만났던 위작 제조업자들의 모습도 스쳐갔다. 미술품 복제를 모티프로 삼은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폭풍의 푸른 눈, ‘벽안도’

영감을 영화로 구체화하기 위한 첫 단계는 ‘주인공’ 역할의 그림을 찾는 것. ‘몽유도원도’에 비견할 만한 그림이 필요했다. 역사적인 위작인 동시에 ‘몽유도원도’ 자체의 드라마틱한 사연 역시 지니고 있어야 했다.

안평대군은 이 그림을 아끼는 뜻으로 지인 20명에게 발문을 받았는데, 이것은 훗날 계유정난 때 살생부가 되었다. 수양대군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동생인 안평대군과 그 주변을 처단했고, 몽유도원도의 발문은 안평대군의 측근을 가리는 결정적 증거로 쓰였다. 그 중에 사육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사동 스캔들’의 중심에는 이런 ‘폭풍의 눈’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원하는 그림을 찾지 못한 감독은 스스로 그것을 창조하기로 한다. 자신의 꿈을 되살린 저 준상한 화원의 꿈을 궁금해 한 안평대군의 부탁으로 안견이 그린 그림이 있다고 상정했다. 이를테면 ‘몽유도원도’에 화답하는 그림 말이다.

안견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감독은 창덕궁 부용지에서 그것을 짐작했다. 창덕궁은 지세로 볼 때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 용의 머리를 건드리면 화가 된다는 속설 때문에 최대한 지형을 살려 건축되었다. 건물들의 위치나 방향이 북한산 기슭의 굴곡을 따라 다양하다. 땅에 있던 돌들이 주춧돌로 쓰였다.

부용지는 특히, 용의 눈에 해당한다. 왕만이 거닐 수 있는 곳이다. 안견의 꿈은 이곳에 안평대군이 거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권력욕에 불타는 수양대군이 아닌 당대 문화예술인을 돌보고 아낌으로써 덕망을 쌓은 안평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을까. 감독은 저 ‘푸른 눈’을 그려 ‘벽안도’라 이름했다.

인사동의 활기를 살리다

인사동의 사건과 사연을 담는 것이 다음 차례였다. 영화 속 미술계의 겉과 속을 잇는 ‘문’ 같은 역할은 배태진(엄정화)의 몫이었다. 국내 최고 갤러리인 ‘비문’의 사장으로 인사동의 거물이자, 위작이 유통되는 블랙마켓의 중심이기도 한 인물이다. 인사동 토박이로 미술계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꿰고 있는 권마담(임하룡) 캐릭터에는 감독이 만난 다섯 명의 특징을 합쳐 놓았다.

갤러리와 복원실, 경매장 같은 ‘공식적’인 장소 외에 사설경매장과 위작 공장 등 ‘비공식적인’ 장소들은 실제에 바탕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었다. 감독은 취재 중 지역을 떠돌아 다니며 열리는 사설경매장을 찾아 냈다. “청나라 도자기”가 고작 4만 원에 팔리고, “무덤에서 막 파왔다”는 유물들이 뻔뻔하게 오가는 곳.

‘경매꾼’들은 그 귀중하디 귀중한 물건들을 트럭에 아무렇게나 부려넣고 또 떠나버렸다. 영화는 이 “소란스러운” 풍경을 생생히 재현한다. ‘어둠의 경로’로 묘사되는 사설경매장은 그러나, 지역 골동품상의 고정적 판로이기도 하다.

위작공장 ‘호진사’는 더 상상에 가깝다. 60~70년대 서울 시내 지하 곳곳에서 가동될 정도로 성행했던 위작공장은 현재 중국으로 거의 넘어간 상태. 인건비가 높아진 탓이 컸다. 이 때문에 역으로 ‘호진사’는 영화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로 꾸며질 수 있었다.

이곳은 냉랭하고 형식화된 갤러리 비문과 대척점에 있다. 자유롭고 경쾌하고 무질서해서 활기차다. 온갖 공구가 어지럽게 배치되었고 사람들도 개성이 뚜렷하다. 이곳의 사장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에게 총을 만들어준 배우 고창석이 맡았다.

결국 인사동 ‘사람들’로

‘어둠의 경로’들이 상식만큼 음습하게 그려지지만은 않는다는 점은 수상해 보인다. 심지어 “복제는 위선으로 가득찬 미술계에 대한 도전”이라는 대사도 나온다. 물론 그것을 단순히 불법행위에 대한 지지 메시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것은 우선 영화이고, 비극이 아니기에 복제와 복원을 넘나드는 주인공의 편에서 발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주인공은 감독의 눈에는 단순히 복제 산업 종사자가 아닌 ‘인사동 사람들’의 한 모습이다. 대형 갤러리 주인이나 유명한 작가, 미술품으로 돈 세탁을 하는 정치인, 고가 미술품을 사고 팔아 이득을 챙기는 큰 손들이 아닌, 인사동 골목골목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가는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사회에서 대단히 인정 받을 일도, 큰 돈을 만져볼 일도 없고 늘 바르게만 행동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매일 밥벌이를 위해 몸을 놀리고, 사고를 치고, 틈틈이 사소한 허풍으로 생의 남루함으로 견뎌가는 소시민들의 상징이다.

송태수(이얼)라는 위작 화가의 에피소드는 짧지만 중요하다. 재능은 있으나 가난 때문에 위작을 그린 경력이 낙인이 된 그는 영영 좁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제 이름을 걸고는 내보이지도 못할 그림들만 잉태하다 죽는다.

박희곤 감독은 인사동을 두루 누빈 후 “정규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쯤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그런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했다.





▲ 영화 속 그림 뒷이야기

‘인사동 스캔들’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그림들이 등장한다. 영화를 위해 특별 제작된 그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1. 벽안도

영화의 중심에 놓인 ‘벽안도’의 컨셉트는 한눈에도 ‘날아갈 것 같은 북한산’을 담는다는 것. 영화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의 작품들을 맡았던 이형주 화백이 작업을 맡아 장장 8개월 만에 완성했다.

동양화는 원래 농담으로만 원근을 표현하기 때문에 보는 순간 시선이 모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동양화가들 중에는 소실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에 나오는 그림은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쉬워야 하기 때문에 감독은 화백에게 특별히 소실점을 두어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2. 강화병풍

주인공인 이강주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이 작품은 전남 광주에서 활동하는 평사 허희남 화백의 작품. 병풍은 주로 산수화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벽안도’와 비슷해질 것을 우려해 매화나무를 소재로 그렸다.

3. 창가의 여인

영화 초반 경매에 부쳐졌다가 위작으로 판명되는 이 작품은 연제욱 작가가 그렸다. 사랑하는 여인과 하룻밤을 지내고 깬 아침, 그가 누운 모습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누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했다.

4. 송태수 자화상

영화 속에서 배태진 사장의 파국을 장식하는 이 그림은 송태수라는 인물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내야 했다. 생계 때문에 복제를 한 후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작가로서의 가능성 또한 접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삶의 굴곡과 고뇌가 풍기는 작품. 어두운 톤, 진지한 표정,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었다. ‘두 얼굴의 여친’, ‘경계’, ‘내 사랑’ 등을 작업한 김성규 미술감독의 작품.





▲ 이후경 미술감독이 말하는 영화 속 미술 공간

5. 갤러리 비문

국내 최대 규모 갤러리로 설정된 곳. 명품 매장 같은 느낌이 들도록 설계되었다. ‘경외감과 이질감’이 동시에 풍기는 곳. 모노톤과 미니멀한 선과 면, 매끄러운 질감 등으로 모던함을 살렸고, 그를 통해 ‘막연한 거리감’을 표현하려 했다. 국내 갤러리들은 규모가 크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모델로 삼기 어려웠다.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작품을 응용해 보았다. 높은 문은 그리스 신전에서 따온 것. 여기에 원색의 추상화를 배치해 배태진의 내면을 표현했다. 붉은 색의 추상화는 조동건 작가의 작품으로 컨셉트는 로스코의 회화.

6. 이강준의 복원실

실제 미술품 복원실은 평범한 작업실 같다. 그래서 기능만 가져오고 외형은 영화적으로 리폼했다. ‘미래적’인 느낌의 설치 미술과 미국 드라마 ‘CSI’의 공간을 참고했다.

7. 권마담의 골동품 가게

인사동 골목에 있는 골동품상처럼 꾸미는 것이 컨셉트. 골동품 외에도 복조리, 항아리, 엽전 꾸러미, 곡괭이 등 잡다한 소품을 배치함으로써 권마담의 미술적 안목, 가게 규모 등을 표현했다. 촬영은 광주 예술의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8. 위작공장 호진사

작업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공간. 더럽고 정신 없는 공간에서 산적 같은 사람들이 진품에 버금가는 위작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 모티프가 된 공간은 ‘마징가 제트’도 만들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을지로 공구상과 철공소들.

목공소와 비닐 하우스 등등도 믹스되었다. 거기에 팝아트적 색감과 키치적인 소품들을 가미했다. 강원도 한 탄광 입구에 위치한 광부들이 옷 갈아 입던 집을 개조했다.

9. 구로다 컬렉션

밀거래로 얽힌 배태진과 구로다의 관계를 고려해 갤러리 비문과 비슷한 느낌의 공간으로 설계했다. 외형적 형식은 같지만 일본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김해 클레이아크 박물관의 분위기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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