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갤러리] Someplace-어떤 장소 전

장소는 행동거지를 규정한다. 문명화된 공간일수록 ‘율법’은 은근하고 강하다. 갤러리가 대표적인 예다. 쾌적한 여백에 속지 말 것. 엄격하게 짜인 동선이 관람객의 운신을 조인다. 남루한 차림, 불안한 시선 처리와 어리석은 질문, 흙 묻은 구두는 금기다. 공간의 양식이 사람의 개별성을 재단한다.

그걸 서상익은 대놓고 비꼰다.(‘길들여지지 않기’) 자연스럽게 ‘관람객’의 제스처를 취한 사람들 앞에 백지를 걸어 두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팔과 모자가 뒹군다. 심지어 한 켠에서 늑대가 ‘볼 일’을 보는데도 관람객들은 ‘작품’ 감상에 여념이 없다.

한편 기차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까지 일어날 수 있을까? 노준구는 빠르게 직선의 레일을 지나는 저, 근대의 첨병을 투시한다.(‘Existence’) 천태만상이다. 먹고 먹이고, 몸을 섞고 싸우며, 기도하고 훔치고, 토하고 싼다. 이쯤 되면 기차는 단지 ‘길’이기보다, 사는 꼴들을 함축하는 무대 같다.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

‘Someplace_어떤 장소’ 전은 ‘장소’를 공통분모로 삼은 8명 작가의 작업을 모았다. 그러나 장소를 해석하는 틀과 정서는 제각각이다. 서상익의 장소가 냉소적이고, 노준구의 장소가 해학적이라면, 얼굴이 지워진 집단의 식사 의례가 벌어지는 이정민의 장소(‘모두 나누었습니까’)는 풍자다.

1-서상익, 길들여지지 않기
2-조종성, Architecture against space
3-이진주, 경계의 봄
4-한성필, Sing a Song
5-이정민, 모두 나누었습니까
6-정진서, 빌딩숲
7-이혜인, 비정한 세계

석고 모형이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갇힌 형상으로 건축법, 자본주의 따위의 사회적 맥락이 ‘건축’을 제한함을 표현한 조종성의 ‘Architecture against space’는 서사면서 반어다. “투명 플라스틱 제품 케이스 안 건축물은 안정되고 편안한 공간 속(in space)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틀과 제약을 뿌리치고(against space) 싶은 것”(‘작업 노트’ 중)이기 때문이다.

이진주(‘경계의 봄’)와 이혜인(‘비정한 세계’)의 장소는 내면을 투사한 은유에 가깝다. 이진주의 작업은 “일상에서 환기되는 인간 감정과 기억의 작동 메커니즘”을 “상상력과 버무려 이미지화”(‘작업 노트’ 중)한 것이다.

이혜인은 자신의 “옛 집을 기억에 따라 복원”하면서 “그것이 참담하게 무너지고, 쓸려 나가버린 모습을 함께 그렸다.”(‘작업 노트’ 중)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추영 큐레이터는 그의 작업에서 “인간의 이성과 윤리를 초월하는 속도로 뛰쳐나가는 현대 물질문명에 재물로 바쳐진 우리의 과거와 기억”을 본다.

정진서와 한성필은 나아가 저 장소들의 단단한 물질성을 녹여버린다. 나름 랜드마크였던 고층빌딩의 모형들은 한 데 모으자 그 고유한 감을 잃고 어째 시시해진다.(‘빌딩숲’) 보수공사 현장을 가리는 ‘차단막’에 주목해 온 한성필의 작업(‘Sing a song’)에서 장소에 입혀진 ‘껍데기’는 이중적이다. 가짜이면서도 현실이다. 순간이나마 거리를 구성하고 공공의 기억으로 남으며, 동시에 도시의 ‘꿈’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장소와 사람 간 상호작용을 탐구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데’를 고민하는 전시다.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갤러리 인에서 5월20일까지 열린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