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문화] 관심 집중시키는 뛰어난 소통 도구명확한 근거 없이는 욕에 불과해
기존의 가수와 소속사 간 분쟁의 전형적인 시나리오를 따라가던 이 사건에 자그마한 에피소드가 하나 붙었다. 한 힙합 가수가 남규리의 전 소속사를 비방하는 내용의 디스곡을 발표한 것이다.
“세상이 알아야 될 이야기”로 거창하게 시작된 랩은 “그녀가 다른 회사를 찾는 데서 아니면 네게 복종하지 않아서 그 꼴이 괘씸했나?…구린 노래들로 애들 코 묻은 돈이나 훔친 양아치”라는 가사로 소속사 대표를 거침 없이 난도질 했다.
그렇잖아도 설왕설래하며 편을 갈라 싸우던 네티즌들은 이 곡이 발표되자 한층 열띠게 싸웠고 해당 가수는 남규리의 연관 검색어로 묶여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 안에 디스 문화의 가능성과 위험성이 단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디스 문화, 날카로운 양날의 검
막말이 트렌드가 된 이유와 디스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유는 본질적으로 같다. 거침 없는 서양이든, 점잖은 동양이든 장소와 시기를 막론하고 불 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이기 때문이다. 비방은 그 비방의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을 동시에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힙합이 다른 음악에 비해 빠른 속도로 발전해온 이유 중 하나가 이 디스 문화 때문이다. 디스를 당한 쪽은 분노하며 다시는 그런 모욕을 듣지 않기 위해 연습에 몰두한다. 그리고는 더 나아진 모습으로 당당하게 상대방에게 ‘맞 디스’를 선사하는 것이다.
단 시간에 구경꾼들을 확보하는 그 뛰어난 주의 환기성 때문에 디스는 광고 업계가 사랑하는 수단 중 하나다. 물론 수억 달러가 왔다 갔다 하고 자칫 기업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힙합퍼들의 원색적인 디스와는 다르게 표현된다.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사지 않고 경쟁 업체에게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은근한 표현과 위트, 탁월한 창의력이 필요하다. 해외의 광고 수작 중 비교 광고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에는 얼마 전까지 높은 심의 기준으로 인해 경쟁 업체의 이름까지 거론한 비교 광고를 별로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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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이규성은 “전통적인 미풍양속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종종 창의성을 틀어 막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며 “디스 문화는 막힌 배수구를 뚫어주는 주요한 소통 수단”이라고 말했다.
국내의 비교 광고 중 빈폴과 폴로에 대담하게 도전장을 내민 헤지스의 광고는 유명하다. 빈폴을 상징하는 자전거를 탄 여인과 폴로를 상징하는 말을 탄 남자가 헤지스의 옷으로 갈아 입으며 남기는 건방진 한 마디, “굿바이, 폴”은 점잖은 한국 소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업계 1,2위를 다투던 두 브랜드의 경쟁 구도에 한 다리를 걸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해외에 비해서는 한참 낮은 수위지만 헤지스 광고를 만든 메이트 커뮤니케이션즈의 정호영 국장은 당시 광고주를 설득시키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의 40~50대는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미 대중에게 각인된 유명 브랜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구매 고려 대상, 즉 ‘consideration set’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똑똑한 전략은 칼 자루를 누가 쥐었느냐에 따라 위험하게 쓰이기도 한다. 디스의 엄청난 주의 환기성이 불러온 부작용이다. 남규리의 전 소속사를 비난했던 가수는 이전에 동방신기, 빅뱅 등 아이돌 가수들을 향해 “생각 없는 댄스 가수들”이라며 디스를 해 유명세를 떨친 전적이 있다. 언뜻 노래하는 철학자 같아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음반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 가수가 포탈 사이트 검색어 1순위에 오른 화면을 캡쳐해 앨범을 내달라고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힙합 가수 김디지는 “디스에 정확한 팩트가 없다면 그건 그냥 욕과 다를게 없다”고 말한다.
“남규리 사건이 문제가 된 건 그 가수가 실상을 모른 채 ‘~카더라’ 통신에 의지해서 말했기 때문이에요. 디스에도 뚜렷한 이유와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해요. 왜 싫은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가 있어야죠. 내가 세운 칼날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요. 자기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남을 지적하는 건 그냥 욕이고 쇼에 불과해요.”
그는 “디스는 가장 진화된 소통 수단인 동시에 가장 정화되지 않은 대화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검의 양날 중 어느 쪽을 더 자주 사용할지는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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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