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날 문화가 되다] 한국 전통·근대 혼재된 '21세기 판 아케이드'끈임없는 작품 소재 원천

최근 발간된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는 제목처럼 서울을 배경삼아 쓴 단편소설집이다. 2년의 계획 끝에 나온 이 작품집에 이혜경, 권여선, 하성란 등을 비롯한 걸출한 여성작가 9인이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영화 ‘인사동 스캔들’과 개봉을 앞둔 ‘김씨 표류기’는 각각 서울의 인사동과 뚝섬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을 텍스트로 한 사진전도 심심찮게 열리고, 서울이 소재가 된 음악은 서울을 넘어 대중을 파고든다. 문화예술인들이 서울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을 주목하는 이유

서울은 근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도시다. 한국의 전통 문화와 근대문화, 소비문화와 단절의 문화가 혼재한 ‘21세기 판 아케이드’인 셈이다. 서울은 한국의 정치권력과 행정 기능이 집중된 곳일 뿐만 아니라, 문화 지형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서울의 특징인 다양한 문화와 구성원, 끊임없는 사건은 곧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된다.

최근 강북강변도로를 배경으로 한 소설 ‘죽음의 도로’를 발표한 강영숙 작가는 “도시는 오래전부터 내게 탐구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열다섯 살 때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와 만났을 때, 인파에 섞여 종로 네거리의 횡단보도 앞에서 바라본 서울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유람선 같았다.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체이며 공간에 대한 사유는 곧 시간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

남산타워와 63빌딩, 남대문으로 대표되는 서울의 고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시도는 2000년대 문화예술인들이 자주 선보이는 테마다. 60년대 근대화의 산물, 90년대 욕망의 도시로서 서울을 그렸다면 2000년대 문화예술인의 눈에 포착된 서울은 단절과 소외의 도시다. 이제 그들은 거대한 매스미디어의 시야에 가려진 서울의 이면을 드러낸다.

사진작가 강상훈은 ‘서울의 발견’, 청계천 프로젝트 ‘물위를 걷는 사람들’ 등 서울과 서울 지역을 모티프로 한 전시회에 참여해 왔다. 그는 2003년 ‘서울의 발견’ 전시회 참여 당시 가진 대담에서 “실제 서울 사람은 어떻게 사는 지, 우리가 도시를 겪고 있는데 어떻게 겪고 있는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시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형화된 공간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이 자기식으로 만드는 공간, 거주하는 사람화된 공간을 찍은 것이죠. 판에 박힌 도시를 탈피하려는 시도입니다. 서울에 대해 지각하는 것은 이미 이미지화된 것, 겪어서 체득한 것보다 이미 일반화되고 교육된,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 인 듯해요.”(책 ‘서울의 발견’중에서)

사진작가 조동준은 지난 2005년부터 서울과 한강을 중심으로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서울과 한강을 찍는 이유에 대해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다. 비록 서울과 한강이 뿌연 하늘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만들어낸 환영일지라도 그 속에는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상처가 녹아 있으며, 이를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이다.

“80년대를 숨죽이고 안전하게 보낸 사람들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어떤 예의를 보여주어야 할까? 14대 조상부터 살고 있는 서울, 그 중에서도 한강을 찍고 있다. 이 행동이 사회에 대한 나의 작은 예의라고 믿고 묵묵히 한다.”(사진집 ‘한강’중에서)

또 한편으로 모든 예술 작품이 창조자의 생애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유추해 볼 때, 작가가 머문 공간과 이 공간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문화적 자양분’이 된다. 때문에 대다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 서울과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실에서, 서울이란 공간은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의 소재로 등장하게 된다.

최근 서울을 모티프로 쓴 소설 ‘크림색 소파의 방’을 발표한 편혜영 작가는 “서울은 내게 출생지이지 본적지이며 현 거주지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진 이력의 전부”라고 말한다.

“서울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를 영영 떠날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서울은 나와 가장 닮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서울의 상

그렇다면 서울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게 됐을까? 전쟁 후 다시 ‘서울 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1960년대 문화를 살펴보자.

1) 근대화의 이면에서 : 1960~70년대 개발독재의 도시

1960년대 한국은 ‘무작정 상경’ 시대였다. 서울은 동경과 상처가 중첩된 도시다. 이 시기 사람들은 근대 산업 도시 서울을 열망하지만, 결코 서울에 융화될 수 없는 타자가 되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서울의 이중성은 문화예술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인 신동엽은 60년대 서울을 부패와 향락의 도시로 보았다. 그는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양성을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 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이라고 노래한다. 그는 시 ‘종로오가’(1967)에서 농촌 사람들이 상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서울에 와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1-소설집‘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의 작가 (왼쪽부터) 강영숙, 편혜영, 윤성희, 김숨, 김애란, 하성란, 이혜경, 이신조, 권여선씨
2-영화‘자유부인 (自由夫人)’ 1956
3-영화‘김씨표류기’
4-영화 ‘인사동 스캔들’
1-소설집'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의 작가 (왼쪽부터) 강영숙, 편혜영, 윤성희, 김숨, 김애란, 하성란, 이혜경, 이신조, 권여선씨
2-영화'자유부인 (自由夫人)' 1956
3-영화'김씨표류기'
4-영화 '인사동 스캔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1968)에서도 서울은 자연을 부수고 콘크리트 덩어리로 포장되는 거대 도시로 형상화 된다. 최인훈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서울은 인구가 집중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건설한다는 미명하게 그 주변부를 집어 삼키는 도시로 묘사된다.

서울에 새롭게 형성되는 시가와 구조물은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 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역시 서울 한 켠, 가공의 마을이 개발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 ‘맨발의 청춘’(1964)은 서울 뒷골목에서 절망하는 청춘의 암울한 풍경을 그린다. 여기서 서울은 이미 공동체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공간이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귀로’는 남편의 원고를 신문사로 전달하는 일로 인천에서 서울로 외출하는 아내의 행적을 따라가며 당시 서울이 여성에게 선물하던 잠정적 해방감을 다룬다.

김소영 영화평론가는 ‘이미지와 공간: 영화속의 서울’에서 “‘자유부인’(1956), ‘맨발의 청춘’(1964) 등은 이 시대 모더니티 경험을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서울을 문화 지형도로 독해할 수 있는 탁월한 텍스트”라고 말한다. 19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1975), ‘여자들만이 사는 거리’(1976), ‘별들의 고향’(1964), ‘내가 버린 여자’1977) 등 ‘도시로 간 처녀’ 이야기가 상당부분 만들어 지면서 서울은 유혹과 절망이 공존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한편, 대중가요에서 이런 면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중가요평론가 이영미는 ‘광화문 연가’에서 “대중가요의 세계는 매우 솔직하게 대중들의 경험과 욕망을 담아내는 듯하지만, 정작 서울의 그늘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둡고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다루는 일은 대중들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서울은 그 자체로 이미 희망의 도시였다. ‘서울 아가씨’와 ‘서울 찬가’는 1950~60년대 ‘럭키 서울’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영미 평론가는 그러나 1960~70년대 대중가요의 저변에 이런 의식을 담은 ‘서울 노래’가 만들어 지고 또한 불렸다고 덧붙인다.

대표적인 예가 김민기 작사·작곡, 송창식 노래의 ‘강변에서’(1974)다. 이 노래는 당시 가요 검열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한강변 공단 지역과 노동자의 삶을 풍경화처럼 그려낸다.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퀭한 두 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왠지 맘이 서레인다’(송창식 ‘강변에서’ 중에서)

당시 서울로 몰려든 이농현상과 도시 하층민 생활의 고통을 노래한 곡도 있다. 역시 김민기 작사·작곡의 ‘서울로 가는 길’(1972)이다.

‘우리 부모 병들어 누우신 지 삼년에 뒷산의 약초 뿌리 모두 캐어드렸지.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양희은 ‘서울로 가는 길’ 중에서)

2) 욕망의 도시 :1980~90년대 거대한 아파트 촌과 욕망의 섹슈얼리티

서울을 테마로 한 문화 예술작품에서 80년대 후반에는 이태원이, 90년대에는 압구정동과 홍대 앞이, 2000년대에는 청담동이 집중적으로 이야기 된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욕망과 소비의 도시로서 서울을 읽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압구정 사라’에 이르기 까지 압구정을 제목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봇물처럼 생산된 점은 특히 흥미롭다. 김소영 평론가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여성화, 소비 주체로서의 여성 그리고 여성과 공간에 대한 성적, 상품에 관한 페티시화는 압구정을 재현하는 이미지들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이는 특징은 문학에서도 동일하게 엿보인다. 이순원의 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는 90년대 한국 자본주의 천박함을 드러내고 있다. 성도착증에 빠진 노인, 성전환 수술을 한 강혜리, 소비와 향락에 빠진 여대생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욕망의 공간 압구정동에 사는 인물들이다. 단국대 김재관 교수는 “작가 이순원은 압구정동을 한국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 공간으로 상징화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배경을 한 이남희의 소설 ‘플라스틱 섹스’(1998)는 여주인공의 커밍아웃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두식 단국대 교수는 “소설 ‘플라스틱 섹스’에 드러난 것처럼 서울의 변화는 사랑과 성 정체성의 영역에서도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 서울은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공간이다.

대중가요에서도 이 점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신성우의 ‘Rock’n Roll+압구정동, 공주병’(1994)의 가사를 보면, 과시욕이 넘치는 압구정동의 이미지가 묘사되어 있다.

‘구두굽 높이 만큼 솟아 있는 자존심/ 이만하면 킹카라고 내 자신은 생각한다/쇼윈도엔 항상 내 얼굴이 비치고 있어/ 거리엔 모두 텅빈 눈으로 오만한 미소를 짓는 공주뿐이야’(신성우 ‘Rock’n Roll+압구정동, 공주병’ 중에서)

3) 2000년대 서울의 모습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욕망의 도시 서울은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화 된다. 1960~70년대 서울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던 자들이 느낀 소외감은 이제 강남으로 집중된다. 2000년대 문화예술가들은 이제 거대 매스미디어가 포착하지 못한 서울의 이면을 응시한다.

대중가요에서도 이런 면은 확연히 드러난다.

‘강을 건너보니 여긴 딴 세상이야 만만한 사람 많이 적을 볼 수가 없어 이 동네 분위기도 정말 장난 아닌걸 여기저기 둘러봐도 내가 제일 약해 보이네 난 괜찮아 절대 기죽지 않아’( 왁스 ‘강북에 산다’ 2001)

‘메리 크리스마스되면 과연 화양리에도 눈이 내릴까 모두 궁금해해 남들은 날 무시해 흥 화양리에 산다고 하지만 난 보여주겠어 우리 동네에도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걸 산타 할아버지랑 손잡고 압구정동으로’(DJ DOC ‘메리크리스마스’ 2000)

지난 2003년 서울을 테마로 27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회 ‘서울의 발견’은 매스미디어가 만든 이미지에 가려진 서울의 이면을 담았다. 작가들은 베스킨라빈스, 버거킹, 세븐일레븐 등 거대 도시가 만들어내는 환상적 소비문화의 단면을 포착하는 가하면 난곡, 회현동 등 재개발 지역의 현실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윤성희의 소설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2009)는 서울이라는 공간의 속물성을 드러낸 작품이다.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이런 집들은 얼마나 하나?” “니들 정말 차 안 살래?” 같은 대화를 일삼는다.

서울은 어떻게 문화가 되었나?

서울 또는 서울의 특정 지역은 진즉 생활공간을 넘어 문화 예술의 소재가 됐다. 경복궁, 북촌과 같은 서울의 중심부터 성북동과 영등포 같은 재개발 구역, 압구정을 위시한 소비문화 등 서울은 문화 예술의 화수분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예술에서 서울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대중음악 평론가 이영미 씨는 ‘서울 중심의 타자화’란 말로 우리 문화에서 서울의 위상을 설명한다. 그는 음반을 만들고 파는 곳이 서울이었으니, 대중가요는 서울 중심적인 특성을 보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중가요에 담겨있는 대부분의 도시 생활은 모두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은 그 자체가 이미 대중문화의 일부분이 되는 셈이다.

미술평론가 강수미 씨는 “예술 작품은 소재라는 출발점부터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문화가 축적되면서 구성되는 서사 안에 있다. 그리고 다시 예술 작품이 그 서사의 일부를 써간다”고 말한다. 즉, 개별 예술 작품은 정치, 경제, 문화의 집합적 사회 속에서 읽혀질 수 밖에 없고 역으로 개별 예술 작품을 통해서 당대 사회의 지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을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에 비유한다. 실물경제를 앞서는 소비욕망, 필요를 압도하는 소비재의 편재, 집단 주거, 교육, 퇴폐 유흥, 쾌락 소비가 한 곳에서 동거하는 멀티플 도시가 바로 서울이라는 말이다. 즉, 서울의 다양한 모습이 예술가에게 취사 선택되고 이 문화적 기억이 다시 서울의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는 것이다.

현대의 아케이드 서울, 21세기 문화의 화수분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 ‘문학 속의 서울’, 김재관·장두식 저, 생각의 나무, 2008

‘서울 생활의 발견’, 강수미 외, 현실문화연구, 2003

‘서울 생활의 재발견’, 강수미 외, 현실문화연구, 2003

‘광화문 연가’, 이영미, 예담, 2008

‘서울, 영화 속의 도시’, 김소영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