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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다
[르누아르, 행복을 전하다] 빛과 색채로 가득 찬 화면
인상주의·고전주의 아우르며 자신만의 스타일 완성





이지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그림이란 건 그렇지 않은가, 벽을 장식하려고 있는 거야. 그래서 가능한 한 화려해야 해. 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이라네. 그렇지, 예쁜 것. 그림이 위대한 동시에 즐거울 수 있다는 개념을 받아드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평범한 미술품 수집가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은 이 말은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했다. 그는 말 값을 하듯 평생 아름답고 즐거운 장면만을 그렸다. 슬픔이나 고단한 삶의 찌꺼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의 그림들을 보자면 화가의 일생도 그림처럼 행복했거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르누아르 자신은 가난에 ?기고 콤플렉스에 시달린 삶을 살았다.

1841년 가난한 재봉사의 일곱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르누아르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의 견습생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갖가지 장식품과 그림 부채, 옷장 등에 문양을 그려 넣는 장인이었다. 그러나 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그를 밥벌이가 되는 장식미술 공방에서 샤를 글레르의 화실로 이끌었다.

이듬해인 1862년에는 국립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르누아르에게 고전을 숭앙하고 엄격한 형식을 강조하는 아카데미의 교육은 잘 맞지 않았다. 글레르 화실 동기인 바지유와 모네, 시슬리와 어울리던 르누아르는 이들이 존경하는 선배 마네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인상주의 화가로 거듭나게 된다.

당시 화가들의 등용문은 살롱전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고 고답적인 주제와 형식을 강조하는 살롱의 심사는 젊은 작가들의 반발을 샀다. 일상의 단면과 부르주아의 여가생활을 주제로 한 인상주의 작품은 거친 붓 터치와 대담한 색채를 내세우며 <낙선자전>을 중심으로 무수한 스캔들과 혹평, 풍자를 낳았다.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을 시작으로 참여한 전시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은 여전히 안 팔렸다. ‘햇빛 속의 누드’(1875)는 피부에 곰팡이가 피었다는 혹평을 받았다. 끼니를 거르며 동료화가의 화실에서 모델을 빌려 쓰고, 물감이 떨어져 작업을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르누아르에게는 힘든 시기였다. 이때 부유한 동료 화가 카유보트는 후원자의 역할도 겸했다. 몇몇 초상화 주문은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이 시기 르누와르가 그린 ‘책 읽는 여자’(1875)와 ‘알폰스 도데 부인의 초상’(1876)을 비교해보면 도저히 한 사람의 그림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다르다. ‘책 읽는 여자’는 전형적인 인상주의 기법이다. 머리칼과 얼굴, 주름장식의 블라우스는 아이스크림처럼 빛 속에 녹아들어 구분이 어렵다. 대상의 묘사는 뒷전이다. 화가는 팔레트의 색과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한 빛의 변화에 푹 빠져있다.

반면 도데 부인의 초상은 단정하고 침착한 모델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온다. “적어도 어머니가 딸을 알아보게는 그려야 하지 않겠어”라는 르누아르의 농담 섞인 말처럼 주문자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로 르누아르는 살롱전을 택했다. 거듭되는 낙방 끝에 결국 1879년 살롱에서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1878)로 큰 성공을 거두며 명성을 얻게 된다. 출판업자의 부인으로 내로라하는 파리의 지식인들을 불러 모으던 파티의 여주인인 샤르팡티에 부인을 위해 만찬 메뉴판을 그릴 정도로 저자세였던 르누아르였지만 든든한 후원자를 둔 효과는 컸다.



1-목욕하는 여인들, 1887
2-장 르누아르의 초상, 1899
3-책읽는 여자, 1875
4-도데 부인의 초상, 1876


초상화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경제적 사정,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미술의 아름다움에 눈 뜬 것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목욕하는 여인들’(1887)은 르누아르의 고전적 성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정확한 데생과 매끈한 모델들의 피부는 앵그르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고전주의의 엄정함은 르누아르를 오래 붙잡아두지 못했다. 빛과 색채로 가득 찬 그의 화면은 인상주의와 고전주의를 아우르며 르누아르 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간다. 화가이자 평론가였던 모리스 드니가 지적했듯 그는 여인과 꽃으로 멋진 부케를 만들어냈다.

말년의 르누아르는 류머티즘으로 고생했다. 뻣뻣해지는 손에 붕대를 감아 붓을 묶고는 그림을 계속했다. 심지어 죽기 몇 시간 전에도 그림을 그리려고 간병인에게 준비를 부탁했다. 화가는 꽃을 그리려 했다. 그러나 기력이 떨어진 그에게 더 이상 작업은 무리였다. 가져온 붓과 팔레트를 물리며 르누아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제야 이걸 좀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삶이 고단해서였을까. 그의 그림은 누구보다도 밝고 아름답다. 여인들은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며 농염한 살내음을 풍기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과 단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과일은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먹고 마시고 떠드는 유쾌함은 다른 어느 인상주의자의 그림보다도 실감난다. 인생에 괴로운 것이 많다면 그림까지 그러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의 좌우명대로 르누아르는 아름다운 것에 설레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냈다. 화가가 남긴 말은 솔직하다. “아! 저 젖가슴! 얼마나 부드럽고 중량감 있는가! 금빛 색채를 띠며 밑으로 처진 저 아름다운 기복.... 만일 젖가슴이 없다면 내가 과연 인물들을 그렸을까 의심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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