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 행복을 전하다] 직업 모델·아내·친척 등 소재즐겁고 경쾌한 일상의 삶 그려

1-머리를 땋는 쉬잔 발라동, 1885
2-전원의 무도회, 1883
3-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알린느와 피에르), 1886
4-장미를 든 가브리엘, 1886
5-햇빛 속의 누드, 1875~1876

르누아르는 즐겁고 유쾌한 일상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 화가다. 그는 삶의 불안과 절망을 보여주기보다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보여주고 했기 때문에 인상주의 화가들 중 그처럼 즐겁고 경쾌한 일상의 삶을 보여준 화가는 없다.

화폭에 삶의 즐거움 모습만 담아내기를 원했던 것처럼 젊은 날의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다. 평범한 여자들과 로맨스를 즐기던 르누아르는 전업화가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델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 중 파리 뒷골목 몽마르트르의 직업 모델인 쉬잔 발라동(1867~1938)은 르누아르 작품의 단골 모델로 등장한다.

쉬잔은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여섯 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일터로 나갔고, 열 여섯 무렵에는 서커스단에서 곡예사로 일했다. 그러나 그네에서 떨어져 곡예사 일을 그만 둔 뒤에는 생계를 위해 직업 모델로 나섰고 화가들이 원하면 싼값에 스스럼없이 누드 모델이 되어주고 그들과 사랑을 나눴다.

르누아르의 작품 중 쉬잔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 ‘머리를 땋는 소녀-쉬잔 발라동’이다. 쉬잔이 풍성한 머리를 땋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장밋빛 뺨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녹색의 나뭇잎이 어울려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쉬잔 발라동이 가지고 있는 소녀의 순진함과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포착했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전문 모델보다 가족과 친구 등 주위 사람들을 그리기 좋아했다. 그의 삶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은 그림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르누아르의 모델이자 아내인 알린느 샤리고(1859~1915)는 대표적인 여인이다.

르누아르는 1880년 무렵 스무살 남짓의 알린느를 그녀가 일하고 있던 간이식당에서 처음 만난다. 르누아르에게 빠진 알린느는 자원해서 모델이 되고 싶다고 청하지만 르누아르는 거절한다. 르누아르는 “가난한 화가보다는 부자와 만나라”고 충고하지만 소박한 성격의 알린느는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그의 화실에서 모델 일을 한다.

그러나 딸이 가난한 화가와 사귀는 것을 싫어했던 알린느의 어머니 때문에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서로를 잊지 못했던 두 사람은 르누아르가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기차역에서 재회를 하면서 동거에 들어간다.

르누아르는 아내 알린느의 모습을 여러 차례 그렸는데 대표적인 작품 ‘시골의 무도회’는 알린느의 화사한 미소와 충만한 행복감에서 르누아르의 알린느에 대한 애정을 잘 보여준다.

활기 넘치는 전원에서 소박한 사람들의 즐거운 한 때를 담아낸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오랜 후원자였던 뒤랑 뤼엘이 기획한 전시회에서 왈츠를 추고 있는 남녀를 그린 무도회장 그림 3점의 작품 중에 두 번째 작품이다. 3부작 중 두 작품은 쉬잔 발라동이 모델이며 이 작품만 알린느가 모델이다.

르누아르는 화가에게 자유로운 연애는 화가로서의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알린느와 함께 살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알린느는 장남 피에르를 출산한 5년 후인 1890년 르누아르와 결혼, 장과 클로드까지 세 아들을 낳았다.

. 르누아르는 아들 피에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알린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껴 여러 차례 화폭에 담았다.‘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작품에서 아이는 엄마의 품안에서 젖을 먹고, 엄마는 그런 아이가 사랑스럽기만 한 듯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상적이지만 지극히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행복을 포착해 표현했다.

이 작품은 색채가 강렬하나 화면 전체의 색 어느 것 하나 눈에 띄는 색이 없이 절제되어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젖을 먹는 아이와 어머니의 모습이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화면 전체에 흐르는 따뜻한 색감은 행복한 모자의 모습을 더욱 더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은 모자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알린느의 친척 가브리엘 르나르(1878~1959)도 르누아르의 단골 모델이다. 가브리엘은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 장이 태어날 무렵 유모 겸 하녀로 들어왔다가 르누아르의 말년까지 모델이 됐다. 가브리엘은 르누아르가 작품의 주요 테마로 삼았던 관능적이고 풍만한 여인의 모델로 자주 등장하는데 오르세미술관의 ‘장미를 든 가브리엘’은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르누아르는 말년에 여인의 누드에 매료되었다. 여인의 육체에 심취한 그는 “만일 여인의 유방과 엉덩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다. 르누아르의 누드 여인들은 거의 야외를 배경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여인의 몸과 얼굴을 보면 모두 그가 좋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누드화를 그릴 때 누구나 그 그림을 보고 그 유방이나 엉덩이를 매만지고 싶도록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 어린 소녀를 주로 그렸다.

이번 전시회에서 감상할 수 있는 르누아르의 누드의 여인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햇빛 속의 누드’다. 르누아르는 균형 잡힌 몸매였던 안나를 모델로 1875년 코로가에 있는 작업실 정원에서 완성했다.

나뭇잎 사이에 있는 그녀는 꽃처럼 활짝 피어있다. 그녀 주변에 있는 나뭇잎들은 녹색과 노란색이 어울러져 있지만 그녀 앞에서 자연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그리스 여신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 자연을 빛의 흐름 속에 반사된 모습으로만 표현했다.

또한 이 작품에서 비싼 팔찌와 반지를 끼고 있는 여인은 마치 물속에서 솟아 오른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를 연상시키면서도 자연인으로서 인간을 표현했다.

말년에 르누아르는 젊은 날과 다르게 알린느와의 이상적인 가정생활을 통해 예술세계를 펼쳐나갔다.



박희숙 화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