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 행복을 전하다] '반 고흐'전 등 미술 대중화에 기여기획력과 질은 풀어야 할 숙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블록버스터전시‘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2007년 11월 24일~2008년 3월 16일)에는 82만명의 관객이 찾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블록버스터전시'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2007년 11월 24일~2008년 3월 16일)에는 82만명의 관객이 찾았다.

오는 28일 시작하는 ‘르누아르 전’을 비롯해 올 하반기에 ‘블록버스터 급’ 미술 전시들이 대기하고 있다. 6월에는 덕수궁미술관에서 ‘보테로 전’이, 12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앤디 워홀 특별전’이 열린다.

2000년 이후 활성화된 이런 대형 전시는 미술관 관객층을 넓히고 미술 문화 대중화에 기여했다. 작년 초 열린 ‘반 고흐 전’은 8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장민한 전시과장은 “그 중 반 이상이 미술관에 처음 온 관객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몇몇 전시의 지나친 상업성과 대형 전시로의 ‘쏠림 현상’은 비판받기도 했다. 많은 대형 전시들이 민간 기획사에 의해 기획되었고 국공립미술관의 역할은 대관에 머물렀다는 점, 이 과정에서 전시의 기획력과 질이 담보될 수 없었다는 점 등이 비판의 요지였다.

최근 대형 전시들은 이런 문제점을 얼마나 극복했을까? 미술전문가들은 “대형 전시의 의미와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5일 올 상반기 최대 규모의 미술전시인 ‘구스타프 클림트 전’이 약 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막을 내렸다. 이 전시에 대한 평가들은 국내 미술계가 대형 전시에 거는 기대와, 현 상황에서 대형 전시가 가진 한계를 잘 보여준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단지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이 어떤 시대 상황, 종교,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했는지 알 수 있게 한 전시”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클림트가 활동했던 ‘빈 공방’을 전시장에 재현하고, 당대에 영향을 주고받았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등 입체적으로 구성한 덕분이다.

하지만 이 전시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장동광 독립 큐레이터는 “미술사에서 중요하고 유명한 작가들의 전시는 재해석이 중요한데 그런 고민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클림트가 살았던 세기말적 상황과 현재의 관련성은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좌) '구스타프 클림트' 전 (우) '보테로' 전

공익적, 교육적 목적의 질 높은 전시로서의 대형 전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한다. 문제는 충실하고 차별화된 전시 내용을 만드는 기획력의 저변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대형 전시가 주로 열리는 국공립미술관 자체의 역량 부족이 한계다. 장동광 독립 큐레이터는 “자생적인 미술 문화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 국공립미술관이 대형 전시 기획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국공립미술관이 이런 대형 전시를 단독으로 기획하기에는 예산과 컬렉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언론사, 민간 기획사와 공조하되 공익적 성격을 띨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예를 들었다.

일본에서도 1980년대 이후 언론사가 주도하는 대형 전시들이 잇따라 열렸지만, 그 전시들은 상업적인 목적에 머무르지 않고 공익적, 교육적 역할을 해왔다. 언론사 쪽에서 전시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위원회를 꾸리는 등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대형 전시를 평가하는 기준도 규모가 아닌 내용이어야 한다.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은 “단 한 점이라도 걸작, 명작을 유치하는 것이 전시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작품 대신 ‘주변’ 작품들로 전시장을 채우고 작가의 네임 밸류에 기대는 전시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올해 초 열린 ‘서양미술거장전: 렘브란트를 만나다’ 전에는 정작 렘브란트의 유화가 한 점밖에 없어 제목에 ‘낚인’ 관객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대형 전시의 영향력이 큰 만큼, 그 의미와 지향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박천남 경희대 교수는 “대형 전시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대형 전시의 의미를 찾으면서도 그것이 건강한 미술 문화에 반하는 방향으로 조직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