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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기'살려 불황을 이기자
[펀 경영] 미라이 공업 등 대박신화 원천
연속성·진정성 없으면 되레 역효과





김청환기자 chk@hk.co.kr





(좌) 노성운 버그테스트 사장(가운데)이 직원들과 펀 경영 행사를 앞두고 분장한 채 포즈를 취했다. (우) 펀 경영의 일환으로 신한은행이 벌이고 있는'와우! 서비스 데이'의 장면들


회사원 홍모(29ㆍ여)씨는 한 달에 서너 번은 컬러 가발을 뒤집어 쓰고 장난감 기타를 손에 든다. 생일을 맞은 동료 등을 찾아가 코믹한 공연을 펼치기 위해서다. 그는 프로그램 테스트 업체 ‘버그테스트’의 최고재미책임자(CFO; Chief Fun Officer)다.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최고재미책임자로 선발된 그는 홍보업무와 더불어 타사 파견이 잦은 직원들을 찾아가 즐거움을 준다.

직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튀는 공연 때문에 처음에는 “창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동료 직원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줄어든다. 대화의 물꼬가 터지게 마련이다. 노성운 사장까지 출동(?)해 직원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본 타사 직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버그테스트는 최고재미책임자와 사장이 직접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것 외에도 ‘로또데이’와 바비큐파티 등을 열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로또데이’란 회사에서 직접 로또복권을 구입해 팀원들에게 나눠주는 날이다.

펀 경영을 실시한 이후 이 회사의 이직율은 25%이상 감소했다. 버그 테스트는 매출액의 3%를 펀 경영 예산으로 쓰고 있다.

펀 경영이 불황기 기업문화의 대안으로 활성화하고 있다. 구조조정 등으로 올라가는 기업 내 마찰을 줄여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우스 웨스트ㆍ미라이 공업을 비롯한 펀 경영 기업의 ‘대박신화’는 직원ㆍ고객의 즐거움이라는 무형의 경쟁력 원천이 몇푼의 예산절감보다 막강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불ㆍ호황을 막론한다.

대외적으로도 펀 경영은 유머로 관심을 집중시켜 매출 상승이나 기업 이미지 개선에 기여하기도 한다. 듀라셀의 성공은 북치는 토끼(광고)의 유머감각에 빚지고 있다. 에너자이저를 일으킨 것은 자금부서의 논리가 아니라 팔굽혀 펴기 하는 건전지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들은 펀 경영의 가치를 경시해 불황기 비용절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바뀌면 폐지되는 펀 경영 시도는 펀 경영을 보는 우리 기업들의 단선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펀 경영을 최고경영자 홍보의 수사로 활용했을 뿐 진정한 기업비전으로 인정하고 추진하지는 않았다는 반증이다.

‘연속성’과 ‘진정성’ 없는 펀 경영은 오히려 거부감을 줘 역효과를 내는 부작용도 있다. 펀 경영이란 유머와 재미를 기업의 대내외적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감성경영 기법을 일컫는다.

신상훈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는 “유머는 삶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펀 경영은 불황기 심화하는 기업 내 인적마찰을 줄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며 “대외적으로도 기회가 줄어든 시기에 유머로 주의를 끌고 고객과의 마찰을 줄이게 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펀 경영’, 재미 쏠쏠하네

펀 경영을 도입해 불황으로 낮아진 직원 사기를 높이려는 기업들의 시도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1982년부터 운영해온 사내 여성 리더 그룹인 ‘갤포스’를 펀 경영 활동의 리더로 활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03년부터 ‘와우! 서비스 데이’ 프로그램을 본사에서 만들어 재료 등을 지급하고 각 지점의 ‘갤포스’ 여직원들이 이끌게 하고 있다.

개점 직전 한 지점의 직원을 두 조로 나눠 동전을 빨리 옮기는 내기를 하는 행사를 벌이는 식이다. 게임이 끝난 후에 이긴 팀은 진행자의 사회로 이긴 비결을 발표한다. 진 팀은 이긴 팀에게 쿠폰을 줘서 커피,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사주도록 한다. 소소한 게임이지만 이기는 팀워크의 비결을 공유하고 이후 인간관계를 더 장려해 지점 분위기가 유쾌해지도록 유도한다.

신한은행 갤포스는 지난 4월 23편의 펀경영 행사 방법을 모아 펀 경영 사례집(조직을 살리는 펀경영)을 발간하기도 했다. 본사의 갤포스 팀은 행사에 필요한 재료를 지급하는 등에만 최소예산을 쓴다.

펀 경영은 기업 내ㆍ외부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정환주 신한은행 갤포스 책임자는 “게임을 할 때 뿐 아니라 이후 만들어지는 인간적인 교감을 통한 소통이 팀워크를 높이는 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좋은 기분으로 일하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져 친절이 생명인 은행의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발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펀 경영을 도입하는 공공기관도 생겨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신나는 일터만들기 공모’를 통해 펀 경영 기획안 총 665건을 접수하고 이 가운데 6개 제안을 당선작으로 발표해 장관상 등을 지난 3월 5일 수여했다.

멘토제도로 직원 전출 시 전임자가 후임자(멘티)에게 도움을 주는 것, 국토해양부 내부 인트라넷에 여가활동 일정을 올려 지방 근무가 많은 직원들이 여가생활을 함께하며 팀웍을 다지는 내용 등이 당선작이다. ‘직원 가족의 직장견학’안은 3등으로 당선돼 실시되고 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경제위기 때문에 건설경기 연착륙을 위한 국토해양부의 예산 조기집행이 늘어남에 따라 업무강도가 세지고 있는 게 도입 배경”이라며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업무효율성에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많던 ‘펀 경영’은 다 어디로 갔나

반면, 펀 경영을 최고경영자(CEO) 홍보에 적극 활용하던 일부 대기업들은 최고경영자 교체나 불황 등의 이유로 펀 경영 관련 프로그램을 전면 축소하거나 없앴다. 펀 경영을 홍보의 수사로만 활용하거나 부가예산 지출정도로만 여기는 단순한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2002년 박노빈 사장 취임 이래 임직원을 대상으로 퍼네자이저(Fun+Energizer) 프로그램 교육을 해가며 펀 경영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CEO가 교체된 올 초 이후 이런 움직임은 금세 사라졌다.

삼성에버랜드 관계자는 “펀 경영은 박노빈 사장이 경영철학으로 강조해 활기를 띠었었다”며 “올 초 사장 교체이후에는 펀 경영으로 소개할 만한 이렇다 할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김신배 사장 재임 중이던 지난 2006년 10월부터 작년까지 펀 경영의 일환으로 ‘펀 앤 에너자이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 가족들을 휴양호텔로 초청해 초청해 웃음치료, 기공체조, 영상편지 등의 행사를 벌였다.

그러나 올해 최고경영자가 바뀌면서 펀 경영은 자취를 감췄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펀 앤 에너자이저 프로그램은 김신배 사장 시기였던 2006~2008년에 활발했었다”며 “1월 1일 이후에는 경비문제 등으로 없어졌다”고 말했다.

대구은행 역시 지난 2006년 이화언 행장이 180여 명의 일반직원을 팔공산 연수원으로 초청해 휴대폰 퀴즈를 풀고 춤 경연을 하는 등 펀 경영 활동을 해왔다. 이 행장은 화이트데이에 여직원에게 일일이 사탕을 건네고 생일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대구은행 관계자도 “펀 경영은 이 전 행장이 있을 때 활발하게 벌어졌었다”며 “행장 교체 이후에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속·연속성 있는 펀 경영으로 경쟁력 앞서는 외국기업


(좌) 야마다 아키오 미라이 공업사 사장이 집무실에서 속옷차림으로 선풍기 바람에 직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날려 간부사원을 선발하고 있다. 벽에는 아키오 사장이 매일 모으는 영화 포스터가 빼곡하다. (우) 허브 캘러허 전 사우스 웨스트 사장이 자사 항공기 꼬리날개에 올라가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우스 웨스트ㆍ미라이 공업을 비롯해 펀 경영을 통해 성공한 외국기업 사례는 즐거움이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곧 기업의 자산이자 경쟁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펀 경영의 가치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기업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사원들 간의 관계, 기업과 고객과의 관계에서 마찰을 줄여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때문에 불황, 호황에 관계없이 지속성ㆍ연속성을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 감성경영기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미라이 공업은 '펀 경영'에 올인하고도 어떤 기업보다도 가족적이며 효율성이 높은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오후 4시 45분이면 의무적으로 퇴근해야 하며 잔업을 금지한다. 연간 휴일은 143일로 일본 상장기업 중 가장 많으며 출산휴가는 3년에 이른다. 정년은 70세로 실질적으로 종신고용제다. 이 회사는 5년마다 전 사원이 회사 부담으로 해외여행을 간다.

창업주인 야마다 아키오는 자신의 집무실에 연극 팸플릿을 매일 새롭게 붙이며 속옷만 입고 있기도 하다. 그의 경영철학은 '인간 경영'이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면 인간은 열심히 일을 하며, 일이 하기 싫어도 옆에 있는 사람이 같은 돈 받고 열심히 일하면 미안해서라도 한다"는 게 아키오 사장의 생각이다.

이런 경영은 방만한 결과를 낳을 것 같지만 직원들은 다르게 움직였다. 미라이 공업 형광등은 사무실 하나하나에 직원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각자가 관리한다. 본사에 복사기가 한대뿐이며 직원들은 비용이 나가는 프린트 대신 포스트 잇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장이 선풍기 바람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날려 제비뽑기로 선출되는 부장, 과장은 사옥 근처에서 페인트 칠과 청소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회사는 구성원 제안만으로 1만 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미라이 공업의 2008년 3분기 매출액은 319억 7300만 엔이며 영업이익률이 12.6%에 이른다. 제조업체로서는 보기 드문 정도로 기업효율과 성과가 높다. 최근 미라이 공업이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자 1인당 2000엔씩의 안내비용을 받으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기도 하다. 방문수익만 연 1800만여 엔에 이른다.

미국 항공사인 사우스 웨스트는 허브 캘러허 전 회장이 토끼 분장을 하고 출근길 직원을 놀래키고, 팔씨름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등 펀 경영을 실천했다. 사우스 웨스트의 기장은 크리스마스 운항 중에 비행기를 일부러 흔들리게 한 뒤 기내방송으로 캐럴송을 직접 부르기도 한다. 사우스 웨스트 승무원은 기내방송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비행기 날개 위에 흡연석이 바련돼 있습니다"란 농담으로 승객을 웃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우스 웨스트는 30년 평균 주가 수익률 1위를 달성했고 46분기 연속 흑자 기업, 단 한 번의 노사분규나 인력감축 없이도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이 됐다.

불황이나 CEO에 따라 들쭉날쭉 하는 한국기업의 펀 경영 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불황기 증가하는 기업 내 인적 갈등, 고객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유머'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결국 기업효율에도 해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신상훈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는 "CEO 홍보 등에 이용하는 등의 일회적인 펀 경영은 오히려 거부감을 주는 부작용도 있다"며 "CEO가 펀 경영을 뚝심 있게 추진한다면 유머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물처럼 퍼져 기업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혁균 한국펀경영연구소 소장은 "한국 CEO들의 권위주의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요즘 기업의 목표에 맞지 않으며 직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CEO홍보용이 아닌 지속성과 연속성 있는 펀 경영은 수직구조에서 수평구조로 바뀌는 사회에 맞는 기업문화를 창출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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