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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언어'를 보면 세대가 보여요
[문학의 언어] 문어체 많은 원로작가서 파격적 실험 젊은 작가까지 다양한 언어의 향연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1-현기영
2-박완서
3-이청준
4-오정희
5-신경숙
6-공지영
7-은희경
8-김별아
9-박민규
10-염승숙
11-김태용
12-정이현


“젊은 시절에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최초의 인간으로 돌아가 인간 심리를 탐구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지요.”

‘모더니즘’을 이렇게 에둘러 말한 이는 소설가 현기영(68)이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청소년판 ‘똥깅이’를 출간했던 지난 겨울, 현 작가는 3시간 여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때 그가 썼던 외래어는 단 두 개.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외래어가 자주 등장한다. 바뀐 사회상과 문학 작품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하다”는 질문 끝에 나온 대답이다.

“그렇지요. 스타벅스가 번역이 안 되겠어요? 맥도널드가 번역이 안 되겠어요?”

이와 대조적인 한 젊은 작가의 대화에 귀 기울여 보자.

“이 작품은 화자를 중성으로 염두하고 쓴 거에요. 남성적인 스타일은 아니죠. 제가 글 쓰는 톤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진지한 스타일, 다른 하나는 발랄하고 경쾌하게 쓰는 스타일입니다.”

이 젊은 작가는 소설가 윤고은(29)이다.

2000년대 한국문단은 이렇게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 자리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동상이언’이 나타나는 것. 언어예술인 문학이 모국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작가가 모국어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세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는 현상은 불가피하다.

2000년 이후 발표된 비교적 최신작에서도 이런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세대별로 달라지는 소설의 언어를 살펴보자.

원로작가, 문어적 표현과 응시의 시선

원로작가들의 말에는 고유어가 많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문어체의 전통이 원로 작가들의 작품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원로작가들이 발표한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엄마는 뭐는 안하고 싶고, 뭐는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장차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한심할 정도로 요령부득이었다. 우리 사정을 잘 아는 반장네가 이런 엄마를 딱하게 여겼던지 이것저것 아는 척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문제점을 꿰뚫어본 듯했다. (중략) 겉으로는 흔연대접해도 속으로는 응어리를 다 못 삭인 반장네의 말이지만 그 말만은 엄마를 솔깃하게 했다. (중략) 생일 치성이 끝나자 점심상이 들어왔다. 상을 들여온 박수 여편네가 상머리에 앉아서 나를 할금할금 야주거리기 시작했다.>(박완서, 장편 ‘그 남자네 집’ 중에서)

물론 이들이 문단에 나왔던 1960~70년대 작품과 비교해 최근작에서는 상대적으로 구어체적 문장이 많아졌고 문장의 길이도 짧아졌다. 그러나 묘사나 서사의 방식에서는 젊은 작가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여전히 응시의 시선, 차분한 관찰이 엿보인다. 촘촘한 묘사는 작품에서 적막감을 이룬다. 직설적 화법과 단정적 어투가 많은 최근의 젊은 작가 소설과 대비를 이룬다.

<어릴 적 윤호나 그의 집 일이 염두에 있었을 리 없었다. 그땐 모처럼 맘에 담고 온 내 유년의 골목길조차 얼핏 들어설 수 없어 뒷담벼락 너머로 미적미적 눈길을 망설이다 그 퇴락하고 남루한 집안 몰골에 제물에 큰 죄를 짓고 내쫓기는 심정이었으니까. 그렇듯 민망하고 쫓기는 심사는 집안 손위 성조씨네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일찍 다시 마을을 떠날 때까지도 끝내 떨쳐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십 년이라면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실은 윤호네와 반대로 그 어릴 적 옛집을 고쳐 세우는 일이었다. 그 윤호와 윤호네 일이 새삼 머리를 쳐드는 건 이래저래 마음이 그만큼 허약하고 감상적인 탓인지도 모른다.> (이청준, 단편 ‘지하실’ 중에서)

<소녀는 오늘 흰 타이즈에 연둣빛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마치 봄이 오는 것을 미처 기다지 못하겠다는 듯 때 이른 옷차림과 밝은 빛깔이었다. 저녁장을 보러 나온 시장통 여자들 틈을 잰걸음으로 헤쳐 나가면서도 그 투명하고 화사한 빛깔은 뒤섞여들지 않고 눈을 찌르며 빛살처럼 부시게 인걸에게 다가들었다. 소녀가 가는 방향, 거리, 목적지까지 환히 알면서도 인걸은 자칫 소녀를 놓쳐버릴지도, 아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연한 조바심에 허둥대며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오정희, 단편 ‘한낮의 산책’ 중에서)

중견작가, 내면의 글쓰기

40~50대 중견작가들이 등장한 무렵은 1980~90년대다.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며 문단에서는 여성적 글쓰기, 내면의 글쓰기가 하나의 대세를 이루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여성작가가 많아진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김별아 등 이 시기 등단한 여성작가들의 2000년대 소설에서 여전히 이런 방식의 서사가 주를 이룬다.

<엄마는 네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고나. 니 형제들 중에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애가 너여서 뭐든 자유롭게 두자고 했을 뿐인데 그 자유로 내게 자주 딴세상을 엿보게 한 너여서 나는 네가 더 맘껏 자유로워지기를 바랬고나. 더 양껏 자유로워져서 누구보다도 많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를 바랬네.>(신경숙, 장편 ‘엄마를 부탁해’ 221쪽)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죽음을 앞둔 엄마랑, 언제 암세포가 다시 온몸에 퍼져서 병원에서 임종을 맞을지 모르는 엄마랑 엄마 생일에, 오랜만에 옛집에 돌아온 딸과 엄마가 따스한 햇살 쬐는 정원을 내려다보면서 하는, 진짜 모녀가 하는 그런 진짜 대화 같은 거. 엄마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별로 행복했던 기억이 없어…… 남들 못가진거 다 가졌고 남들 못 먹는 거 먹고 남들 못 입는 거 입고 살았는데, 엄마 난 근데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없어……하고 말하고 싶었다.>(공지영,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23쪽)

원로작가들에 비해 구어적 표현이 많아진 것, 외래어의 사용이 흔해진 것도 이들 중견 작가들의 작품부터 발견된다. ‘~되어 졌다’, ‘~적인’처럼 번역 투의 문장도 흔해졌다. 그러나 최근 젊은 작가들이 시도하는 ‘파격’은 흔치 않다.

<어쩌면 그냥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녀 자신이 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노웨어맨’ 말이다. (중략) 어느 사이 구두 위의 물은 다 말라 없어져 버렸다. 증발되어버린 물처럼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은희경, 장편 ‘그것은 꿈이었을까’ 개정판(2008) 92쪽)

신인작가, 새로운 언어의 출현

이와 비교해 신인작가들의 작품은 파격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박민규. 그는 ‘하나의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특한 언어구사로 이목을 끌었다. 데뷔 때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놀이, 장난치듯 내뱉는 작품 속 화자의 대화로 그의 작품은 줄곧 문학계 화제가 됐다. 나아가 장편 ‘핑퐁’에서는 문자의 기호화를 시도한다.

<가만히 있다가, 애써 밤하늘을 쳐다보다가, 우두둑해서,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나는 가만히 영작(英作)같은 걸 해보다가, 그만 가만히

저기요, 아저씨

라고 말해버렸다.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기사가 왜?라며 반응을 보였다>(박민규, 장편 ‘핑퐁’, 92쪽)

작품 속 화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을 실제 작은 글자로 적는 방식이다. 일종의 ‘언어의 시각화’를 보여준 셈이다. ‘핑퐁’에서는 이런 말하기 방식이 자주 등장한다.

염승숙 작가는 ‘생게망게한’, ‘실쌈스러웠던’, ‘어빡자빡’ 등 구어적 표현에서 사용되는 순우리말 관형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에 나아가 사전에 없는 ‘개인어’가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작달막과 새는 엄마의 엉머구리를 고스란히 받아내면서도 매니큐어를 칠하거나 발톱을 깎는 등 무심히 시간을 죽였다. (중략) 밤의 파도가 밀려와 거품을 내고, 어둠 속에서 유채꽃이 호랑호랑 흔들렸을 것이다. (중략) 하루 종일 엄마의 행방을 찾아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다 싸릿싸릿한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나날이 이어졌다.>(염승숙, 단편‘춤추는 핀업걸’ 중에서)

‘악다구니’에서 변형된 ‘엉머구리’, ‘호락호락’에서 변형된 ‘호랑호랑’, ‘짜릿짜릿’의 음성이미지를 활용한 ‘싸릿싸릿’ 등 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개인 방언이 두루 쓰인다.

이밖에 소설에서 각주를 다는 방식으로 한편의 논문을 쓰듯 이야기를 재구성한 정이현(‘낭만적 사랑과 사회’), 의성어, 의태어를 의도적으로 10줄 이상 반복 나열하는 김태용(‘풀밭위의 돼지’) 등 20~30대 젊은 작가를 주축으로 다양한 언어적 시도가 진행 중이다.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그렇다면 세대를 초월해 2000년대 한국 소설이 갖고 있는 특징은 무엇일까?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한국 소설이 문자적 전통에서 구어적 전통으로 넘어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는 비교적 문어체에 익숙한 원로작가 세대부터 젊은 작가 세대까지 두루 포함되는 사실이다.

오정희, 박완서, 황석영 등도 문어체를 주로 사용하지만, 이들이 ‘젊은 작가’로 활동했던 1960~70년대 작품과 비교해 문장이 훨씬 짧아졌고, 구어적 표현이 많다. 오늘날 주목 받는 젊은 작가들은 대화체의 짧은 문장, 단정적인 시선이 주를 이룬다.

“언어사 관점에서 살펴보면 문어적 전통이 사라지면서 언어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즉, 일상 언어가 문학세계로 영향을 미치면서 구어체 소설이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구어체 소설의 특징은 일상적인 언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언어적 밀도가 문어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오창은 평론가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오늘날의 창작 시스템, 쉽게 읽히는 짧은 문장을 선호하는 독자들의 취향이 구어체 소설을 낳게 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로 ‘단문의 문장’이 꼽히는 점도 앞으로 구어체 소설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2000년대 한국 문단에는 다양한 언어가 ‘소설’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고유어와 한자어, 문어체가 많은 원로 작가와 파격적인 언어 실험을 시도하는 젊은 작가들. 다양한 세대가 엮어내는 언어의 향연을 눈여겨보자.

외래어 빈번한 오늘의 시


(좌) 정지용 시인 (우) 황병승 시인


한국 소설이 문어적 전통에서 구어적 전통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이라면, 오늘의 한국 시는 어떤 모양새일까? 시인 겸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인 최두석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문예지 '실천문학' 봄 호에 실린 칼럼 '문체 변화의 흐름 속에서'를 통해 한국 시단의 변화를 짚었다.

최두석 교수는 "우리의 현대시는 일제강점기의 한글운동 혹은 언문일치운동과 호흡을 함께 하며 출발하였다"며 시대별로 한국 시의 특징을 정리했다.

1930년대 눈에 띄는 특징은 우리말 어휘의 감각적인 구사와 함께 한자어 어휘를 직접 한자로 쓴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지용의 시 '홍역'이다.

'石炭 속에서 피여 나오는/太古然히 아름다운 불을 둘러/十二月밤이 고요히 물러 앉다.//

琉璃도 빛나지 않고/窓帳도 깊이 나리운 대로-/門에 열쇠가 끼인 대로-//

눈보라는 꿀벌떼 처럼/닝닝거리고 설레는데,/어느 마을에는 紅疫이 躑躅처럼 爛熳하다.'(시 '홍역'(1935) 전문)

여기서 쓰인 태고연(太古然), 창장(窓帳) 등은 지금도 한자로 쓰지 않으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 단어다. 이후 한자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한국 시의 문체는 변한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한글이 공용문자로 자리 잡은 후 한자 사용의 빈도가 감소한 것이다. 이 흐름 속에 한글 전용체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최두석 교수는 "대세가 완연히 바뀐 시기는 1980년대"라고 밝혔다.

이후 한글 전용체로 쓰인 한국 시는 여러 양상으로 변했다.

2000년대 이후 최근작을 살펴보면 강하게 자극성을 띤 언어 구사가 많다. 괴기적인 환상과 결부된 자극적인 언술이 요즘 시의 특징이다. 밋밋하거나 단순해지기 쉬운 한국 전용체에서 돌파구를 자극성에서 찾은 것이다.

'식탁 위로 더러운 개천이 흐르고 있다. 한쪽 귀를 잘라버린 냄비가 무릎을 떨고 있다. 젖꼭지를 휘면, 냄비 뚜껑처럼 열리는 복부. 개천가에서 나는 썩은 정어리와 교미를 한다.'(김언희, 시 '식탁 위로 더러운' 부분)

또 하나는 국영문혼용체의 등장이다. 젊은 시인들의 시에는 영어 발음을 한글로 받아적은 표현들이 시어로 등장한다.

'새들이 날아오르는데, 하늘 가득/아이는 노 벌즈! 라고 외쳤네/새를 사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해 지는 텅 빈 놀이터를 꽝 꽝 울려대는 소리/노 벌즈, 노 벌즈!'(황병승, 시 'no birds' 중에서)

최두석 교수는 "한국 현대시와 문체는 국한문혼용체에서 한글전용체로 변화하다가 다시 현재는 국영문혼용체로 변화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한국 시의 변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사유 방식과 정서적 경향이 문화적, 역사적 체험과 긴밀하게 결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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