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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상실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상실의 시대 애도의 문화] 노 전 대통령 서거
서민 대통령 향수·박해받은 지도자에 대한 연민, 한국적 애도문화와 결합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이 조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김해=박서강 기자 (우) 5월 25일 저녁 대한문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줄을 지어 참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상실의 시대. 이 말만큼 지난 한 주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드러낸 표현이 있을까? 주말에 날아든 비보는 일주일 내내 대한민국을 충격과 비탄에 잠기게 했다. 수백 만 명이 분향소를 찾은 국민적 애도의 분위기에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그들은 말했다. “살아계실 때는 몰랐습니다” 라고.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생전에는 지지자가 아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검찰 수사 당시 냉정하게 돌아섰던 민심이 일순간 애도의 국면으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의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 애통함은 무얼까? 이 상실감을 우리는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가? 우리는 제대로 애도하고 있는 건가?

상실을 넘어 애통합니다

“제가 공감을 느꼈던 대통령이었다고 할까요? 동시대에 같은 생각을 했던 정치가, 그 분에게 대리만족을 느꼈는데 이젠 그 대상이 없어진 거죠.”

25일 저녁,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강인숙(40)씨의 말이다. 노사모 회원이 아니라고 강조한 강씨는 “친정엄마 같은 분이 돌아가셔서 상실감을 넘어 절망입니다. 여기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줄 서서 참배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노사모 회원이 아닙니다. 모두 뉴스 보고 찾아 오신 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덕수궁 앞에서 정동길을 지나 경향신문사 앞까지 길게 늘어선 줄은 자정까지 줄어들지 않았다. 물과 냉커피, 김밥과 국화가 나누어졌고, 시민들은 두 줄로 차례를 지키며 두 사람 앞에 하나씩 김밥을 받아들었다.

“속상한 마음에 ‘야자’ 째고 나왔어요. 촛불집회 때는 무서워서 못 나왔고요. 오늘은 경찰이 안 때릴 것 같아서 나왔어요. 최진실 언니 죽었을 때는 ‘남은 사람들 참 불쌍하다, 자식들은 어떻게 해’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변 사람보다 본인이 너무 안됐어요.”(진민지, 18세, 고등학생)

물론 이런 애도의 물결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대학생 김경호(24)씨는 지난 해 촛불집회에 여러 번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어떤 추모 행사에도 나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전 국민적인 애도가 ‘영웅 만들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수백만 인파가 분향소를 찾는 이 열정이 잘못된 곳으로 표출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분향소 근처에 쓰인 ‘당신만이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이런 말도 전혀 동의하지 않고요. 그런데 지금 이런 말을 하면 ‘네가 인간이냐?’는 식으로 봐서 쉽게 말을 못하죠.”

이 감정의 고리는 뭔가?

사회지도자의 사망이 전 국민적 애도로 이어진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 별세 때 명동성당을 둘러싼 추모 행렬이다. 그러나 종교지도자와 정치인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치인은 이념 스펙트럼에 따라 지지자가 나뉘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적인 상실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윤평중 한신대 사회철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때 상당히 허물어졌던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다시 재구성됐고, 국민의 바람과는 엇갈리게 나아가는 현 정부에게 환멸, 분노, 실망을 느낀 상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평가를 끌어내는 시점에서 극적인 사태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를 훨씬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재임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노 전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도 서거 수에는 ‘서민적 행동’으로 탈바꿈했다.

“보통 정치인들이 품위 유지를 위해서 점잖은 말을 쓰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죠. 서민 대통령이었죠. 걸러지지 않은 말을 썼고, 그걸 언론이 맥락 없이 따서 쓰고 와전된 게 있다고 봐요.”(40. 강인숙씨)

“제가 뽑은 대통령은 아니지만, 재임했을 때 인간적인 면이 좋아서요.”(18. 고등학생. 김소영씨)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정치인의 자살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반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연예인과 같은 감성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계에서 비주류로 살다가 간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연예인처럼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내 옆의 누구’라고 느껴지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권위를 버린 일괄적인 정치행동 속에 ‘일반 서민’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다.





신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혹은 그 사람을 싫어했던 사람조차 노무현은 ‘우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크다. 때문에 이런 감정적인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박해받은 지도자에 대한 연민이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물론 반대자까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평중 교수는 “통치기간과 퇴임 후에는 냉소적이고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다가 비극적인 죽음 이후 국민 감정이 돌아선 이유는 약자에 대한 집단심리적 동정심에 있다. 박해받은 순교자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을 불러일으킨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의 업적이 야누스적으로 혼재하고 있다. 그러나 생전 공과에 대한 평가가 부족했고, 돌아가시자마자 한 방향으로 휩쓸리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강모(40. 회사원)씨는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건 인간적인 연민이 크죠. 이 자리에 나온 건 검찰 수사결과와는 상관없어요. 정치인 중에 뇌물수수, 선거자금 관련해서 잡으면 안 잡힐 사람 있을까요? 인간적인 연민, 좀 더 오래 살아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정치인의 죽음이 전 국민적 추모를 넘어 일종의 패닉 상태를 만들 때가 외국에도 있다. 왓슨 국제학 연구소(Watson Institution for International Studies) 연구원 바바라 스탈링스는 “대만의 장개석 총통과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의 사망 당시 전 국민적 추모 열기를 넘어 일종의 패닉 상태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정치인의 죽음에 대한 전 국민적인 패닉 상태는 ‘전체주의적인 신격화’라는 전제조건이 깔린다”고 분석했다.

즉, 대만은 중국, 베트남은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과 절대 목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의제가 있어야 하며 이 의제는 전체주의적 시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가 추구하는 절대선이 있을 때, 그 절대선을 실현하는 정치인은 신화가 됩니다.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 역사의 흐름에서 이 같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브라운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아슈토시 바르크시니는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을 미루어 볼 때, 현재 한국의 애도는 신화를 조장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여론을 조장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애도의 분위기나 노 전 대통령의 공적을 부각하는 면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이어 국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 2의 촛불? 오버 하지마!

그렇다면 학자들의 우려처럼 노 전 대통령은 영웅화되는 걸까? 아니면 일각의 추측처럼 국민적 상실감이 제 2의 촛불시위로 번지는 건 아닐까?

분향소와 추모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견에 반대를 표했다.

대한문 분향소에서 만난 교사 김유정(36)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큰 슬픔을 느꼈다. 밥도 안 넘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저녁도 굶은 채 3 시간 여를 줄 선 끝에 참배를 했다. 그러나 김씨는 “촛불 시위로 번지면 절대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 줄 선 사람들 대부분이 두세 시간 줄 서서 참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국부가 떠났다는 안타까움, 내가 좋아했던 정치인을 보내는 마지막 심정으로 온 거죠. 벽에 쓰인 ‘MB 정권타도’ 이런 말은 저도 동의하지 않아요.”

역시 분향소에 만난 직장인 이정화(34)씨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잘잘못을 떠나 어쨌든 영결식이 있는 금요일까지는 모두가 슬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상가에서는 예의를 차리는 게 맞잖아요. 여기 줄 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미로 왔다고 생각해요.”

윤평중 교수는 “일부 보수주의자들과 노사모 회원들의 과격한 행동은 비극적 상황에서 날 것의 감정이 노출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자제할 필요가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잦아드는 게 정상적인 사회이지요. 앞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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