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안공간 미래는 있나] 쌈지스페이스 등 폐관… 1세대 대안공간 한계 넘는 새 미술 행동 필요

올해는 대안공간 10주년의 해다. 하지만 선뜻 축하하기 어렵다. 지난 3월 쌈지스페이스가 문을 닫은 데 이어 5월1일에는 인사미술공간이 사실상 폐관되었다. 이들 ‘사건’의 맥락은 다르지만 두 공간 모두 ‘1세대 대안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는 점에서 대안공간의 위기로 해석할 수 있다. 대안공간은 10년 만에 다시, 그 존재 의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대안공간 10년, 변화해야 하나

어려울 때, 대안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내에 대안공간이 생긴 것은 IMF 직후였다. 1998년 쌈지스페이스, 1999년 대안공간 루프와 대안공간 풀, 사루비아 다방이 문을 열었다. 위축된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들이 발붙일 곳 없었던 것이 주된 동기였다. 이들 1세대 대안공간은 정체성은 각각 달랐지만 기존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젊은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역할을 공통적으로 해왔다.

하지만 미술계가 급속히 팽창한 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 역할의 의미가 굴절되기 시작했다. 부피가 커진 만큼 컨텐츠가 필요했던 시장이 재능 있는 젊은 작가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대안공간의 젊은 작가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운영의 어려움에 처한 몇몇 대안공간이 작품을 팔거나 대관료를 받은 것도 문제가 됐다. 궁여지책이었지만, 비영리라는 애초의 취지를 퇴색시킨 일이었다. 이런 비판을 반영하듯 쌈지스페이스는 폐관의 이유를 “미술관, 상업 화랑, 대안공간의 구분이 흐려진 현상 속에서 기존의 대안공간은 자기반복적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기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안공간 아직 유효한가

하지만 그렇다고 대안공간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 것일까.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심상용 교수는 “그 역할은 줄었을지 몰라도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미술시장의 품이 아무리 넓어졌다고 해도 그 본래 목적이 수익 창출인 이상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를 모두 키워낼 수는 없고, 그들을 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탓이다.

“젊은 작가에게는 재능을 인정하고 미래를 기다려 주는 ‘장’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해야 할 국공립미술관이 국내에는 부족하다. 대안공간은 상징적으로나마 그 역할을 대신해 왔다.”

세계 미술계에서 공공적 성격의 미술이 각광 받고 있는 시류도 대안공간의 새로운 존재 의의가 될 수 있다. 금융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초국적 자본의 영향력과 결탁했던 영국, 뉴욕의 상업적 미술의 영향력 역시 축소된 것이 그 배경이다.

1-미디어버스의 출판물
2-사루비아 다방
3-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고 있는 'Re:Membering-Next of Japan'전
4-쌈지 스페이스 컬렉션 중 강영민의 '내셔널 플러그'

대안공간 루프의 서진석 디렉터는 최근 “독일, 캐나다 등의 공공 미술이 떠오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공공적 성격을 담보하는 대안공간의 현재적 의미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사미술공간을 아르코 미술관과 ‘통합’한 정부 정책이 “감사 결과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문화예술위원회 이호신 홍보부장)이라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안공간의 미래는 어디로

대안공간이 상징적 정당성만큼이나 물리적 정당성을 인정 받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재정의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전문 월간지 ‘아트인컬쳐’의 호경윤 수석기자는 “대안공간이 10년 만에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에 대한 대안’을 표방할 것인지가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심상용 교수는 특히 “시장에 대한 대안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대안공간들도 스스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안의 초점이 언제까지나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진석 큐레이터는 “’총론적’ 대안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맥락과 국내 미술계의 상황, 80년대 이후의 시대성을 아우를 수 있는 대안성”이다.

‘공간’ 중심 대안미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대안적 미술 행동도 등장한다. 대안적 미술 출판사의 구정연 큐레이터는 작년 10월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린 세미나 ‘대안공간의 과거와 한국예술의 미래’에서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지원하고 비영리의 형태를 띠며 공공성에 기반한 예술 활동들을 사수해 온 기존 대안공간”과 달리 “딱히 과거의 룰을 따르지 않는 ‘대안공간적’ 활동”들을 소개했다.

구정연 큐레이터 자신이 편집자로 활동한 대안적 미술 출판사 ‘미디어버스’를 비롯해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작업실을 연계한 젊은 작가들의 공동 작업실 ‘스튜디오 유닛’,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 기획사 ‘갤러리 킹’, 인터넷 미술 방송국 ‘닷라인 TV’ 등이 그 예다.

구정연 큐레이터는 이런 “임의적 활동은 확로한 이데올로기나 룰이 없기 때문에 다소 가벼울 수 있지만, 동시에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