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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와 공생 꿈꾸는 에코페미니즘 문학
[환경을 위한 실천 매뉴얼]
자연과 여성의 가치 새롭게 부각시킨 담론, 생태시 통해 대안적 가치 찾아





이혜원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좌로부터) 조은 시인, 나희덕 시인, 정끝별 시인


동양이나 서양에서 자연과 여성의 동일시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서양에서 ‘가이아’는 만물을 길러내는 대지의 여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양의 도덕경에 나오는 ‘곡신(谷神)’은 모든 것을 끊임없이 생산해도 지치지 않는 자연과 여성의 이미지를 포괄한다.

인류의 보편적인 인식 속에서 자연과 여성은 생육의 근본적인 터전으로 인식되어 왔다. 에코페미니즘은 이처럼 유구한 전통을 지니면서도 오랫동안 도외시되었던 자연과 여성의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킨 담론이다.

에코페미니즘에서는 말 그대로 생태학과 페미니즘의 접점을 모색한다. 이 용어는 프랑수아 도본느의 저서 ‘페미니즘 또는 파멸’(1974)에서 처음 등장한다. 도본느는 여성과 자연에 대한 억압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에코페미니즘을 출발시킨다.

생산의 토대로 작용하면서도 문명의 중심에서 소외되어온 자연과 여성의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에코페미니즘은 생태학과 페미니즘의 논의를 통합적으로 진전시킨다.

생태담론으로서 에코페미니즘이 보여주는 특징은 심층생태학과의 비교에서 뚜렷하게 부각된다. 심층생태학과 에코페미니즘은 자연이 독자적인 생명체라는 사실을 존중하고 자연과 인간의 화합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런데 에코페미니즘은 현대의 생태적 위기를 인간 중심주의에서 찾는 심층생태학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자연과 여성 억압의 당사자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의식과 태도가 존속하는 한 억압과 착취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심층생태학에서 더 큰 전체로서의 자연과의 동일시를 중시하는 것에 비해 에코페미니즘에서는 특정한 개별 존재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더 큰 전체라는 추상적이고 환원주의적인 경향을 경계하며 다양하고 복잡한 개별 주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모든 지배적인 이념에 반대하는 에코페미니즘은 자연, 여성, 하층계급, 소수민족 등에 가해졌던 차별과 폭력에서 탈피하려는 탈근대적인 담론이다. 근대의 이분법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유기체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

에코페미니즘에서는 물질과 정신의 이원화에 반하는 유기체적인 사유로 인해 물질에 깃든 영성을 중시한다. 영성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감성은, 이성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던 근대사회에서 무시되었던 여성적 능력이다.

에코페미니즘에서 중시하는 돌봄, 상호성, 우정, 유대, 신뢰, 사랑 등의 가치도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근대의 인간관계에서 상실되었던 덕목이다.

이처럼 에코페미니즘은 근대의 이분법적 사유에 의해 행해지던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비판하고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우리의 문화담론에서 에코페미니즘과의 관련성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1990년대 이후 활성화된 ‘몸’ 담론은 여성적 관점의 대표적인 예이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통해 자연을 체화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성과 정신에 가려졌던 자연과 여성의 몸은 약동하는 생명으로 재인식된다. 1990년대 이후 부각되기 시작한 ‘일상성’에 대한 탐색도 에코페미니즘에서 중시하는 개별 주체의 가치와 상통한다.

에코페미니즘의 ‘생물지역주의’에 의하면 가정은 생태계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단위가 된다. 생물지역주의에 충실하게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과 가정을 이해하고 사랑함으로써 생태계의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



(좌로부터) 조은의 '따뜻한 흙', 나희덕의 '사라진 손바닥', 정끝별의 '와락'


생태학적 담론으로서의 에코페미니즘은 오늘날 생존과 결부되는 절실한 삶의 문제로서 다양한 사회 문화적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다.

생태문학은 199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의 주요 범주로 자리잡고 있는데, 에코페미니즘과 관련된 문학은 ‘생태’와 ‘여성’의 접점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보여준다. 특히 시의 경우는 에코페미니즘에서 중시하는 감성이나 영감의 작용을 긴밀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주목에 값한다.

여성시인들은 예리한 감각으로 자연과 자신을 관통하는 ‘몸’의 실체를 감지한다. “씨앗들이 내 몸으로 흐르는/물길을 알았는지 떨어지지 않는다/씨앗들이 물이 순환되는 곳에서 풍기는/흙내를 맡으며 발아되는지/잉태의 기억도 생산의 기억도 없는/내 몸이 낯설다”(‘따뜻한 흙’)는 조은의 시에서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씨앗은 몸 안의 물길을 연상시키고 나아가 잉태와 생산을 향한 자연의 근원적 움직임을 통찰하게 한다.

생명현상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감각적이고 본능적이다. “오늘 아침 방에 들어서는 순간/후욱 끼치던 마른 꽃냄새, 그 겹겹의 입술들이,/한번도 젖은 허벅지를 더듬어본 적이 없는 그 입술들이/일제히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풍장의 습관’)고 할 때 나희덕은 자연을 향한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촉수를 드러낸다. 이와 같은 교감의 능력은 자연 혹은 타자와의 소통과 공존을 위해 절실한 감성이다.

출산이나 육아와 관련된 여성적 체험은 만물을 생육하는 자연의 생리를 쉽게 체화한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수목이나 서방 삼아//크낙새 같은 새끼들이나/주르르 낳았어도 좋았을 것을//크낙새같이 귀한 자식들/퍼덕 퍼덕 길러 봐도 좋았을 것을”(‘수목 사이로’)이라는 문정희의 시에서 여성은 다산과 풍요의 원천인 자연의 습속을 내포하고 있다. 김선우의 시에서 여성과 자연은 종종 생명을 관장하는 영매적 존재로 나타난다.

“저승을 헤매어 구해온 영약은 기진한 그네의 희보얀 젖줄기가 아니었을까 바리, 피곤에 지쳐, 불어터진 젖을 아비에게 물리고 한잠 곤히 든 저 겨울나무의 쐐기풀 같은 육신이 아니었을까”(‘어미木의 자살 2’)에서는 자기희생으로 치유를 행하는 자연과 여성의 신성한 힘을 그리고 있다.

자기희생과 돌봄이라는 여성적 덕목들은 경쟁과 차별의 심화로 위기에 이른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인식하고 실천해야 할 가치들이다. 미국 학계에 획기적인 도덕적 담론을 제기한 길리건에 의하면 여성에게는 배려의 윤리가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남성이 규칙이나 공정성을 중시하는 것에 비해 여성은 책임감과 인간관계에 민감하다.

배려는 타율적인 윤리이며 친밀감과 접촉감에 기반을 둔다.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려의 윤리를 인간 삶의 근본적 가치와 생존 전략으로서 수용해야 한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새벽밥’)라는 김승희의 시나, “논에 물을 대주듯/상처에 눈물을 대주듯/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한생을 뿌리고 거두어/벌린 입에/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세상의 등뼈’)이라는 정끝별의 시에서는 돌봄과 사랑의 원천이 되어주는 ‘거룩한 밥’의 존재를 그리고 있다.

상생의 원리로서의 배려와 사랑은 나날의 실천 속에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메마른 일상에 생기를 부여하는 돌봄과 배려의 자세는 측은지심이나 자비심 같은 높은 도덕률과 상통한다.

그동안 여성적 덕목으로만 여겨졌던 이러한 가치들을 이제는 현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경쟁과 차별로 공멸해가는 현대사회를 공생의 길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 모색해야 한다.

에코페미니즘이 제안하는 조화와 공생의 길은 현대사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의식의 개혁을 이끌 수 있다. 평화적이고 이상적인 이 방법은 정치적 실천력을 갖기에는 다소 미약해보이나 의식의 획기적인 전환을 통해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인도하는 근본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

개별 주체의 자발적 실천과 함께 열리는 이 상생의 지혜는 경쟁과 차별로 황폐해진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긴요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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