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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터부 깨고 소통의 창이 되다
[소통의 벽을 넘어] 주어진 틀과 경계 넘어 함께 잘 살아보자고 눈짓하는 일




김융희 서울예술대학 교수





1-한국의 김원과 중국의 진싱이 공동으로 안무한 '외침'
2-뱅크시 작품
3-뮌(Mioon)' 관객의 방백'
4-'미술관 습격사건' 전시의 스티키 몬스터랩 작품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렇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천재들이라면 그건 예술가가 아니라 독선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갤러리 안에 삼면으로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선 관객에게 화면 속 인물이 던지는 말이다. 지난 봄 열렸던 프로젝트 그룹 ‘뮌(Mioon)’의 전시 가운데 <관객의 방백(Aside of Audience)>(2008)이란 이름의 디지털 설치 작품의 한 장면이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앉아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실제로는 한 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는 108명의 인물을 따로따로 찍어 합성한 것이다. 예술이 뭔지, 예술가는 어떤 사람인지, 예술가의 고뇌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들의 대화는 실제 예술과는 관련 없는 보통사람들이 예술가인 척하면서 내놓은 답변들을 몽타쥬한 것이다.

관객은 이 이상한 가상 토론 현장에서 갑자기 비예술가의 생각들을 듣는 예술가의 입장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상도 하다. 예술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렇게 예술가가 하는 생각들과 별 차이가 없을까? 게다가 따로따로 찍은 108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참가자 몽타쥬는 어쩌면 그렇게 실제 한 자리에 모여앉아 있는 것처럼 그럴듯할까? 표정이나 눈빛, 태도에서 오는 진지한 반응은 가짜가 아니라 실상 같다.

이전에도 <관객의 독백>, <노래방프로젝트>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시대의 소통방식과 채널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던 이들이 말하는 것은 소통의 일방성, 수동성, 허구성이다. 대중매체시대, 문화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다양한 소통 채널을 향유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대부분이 쌍방향의 대화가 아니라 일방향의 모놀로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놀로그들이 합성된 장면은 마치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는 가짜소통이다. 그 광경 속에 들어간 관객 역시 단순한 구경꾼일 뿐 대화에 끼어들수도 대화의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소통의 형식은 있지만 정작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소통의 문제는 한 특정 예술가의 관심거리라기보다는 실제로 모든 예술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대전제이다. 더구나 예술이 과거의 엘리트주의적 고고함을 벗어던지고 대중 속으로 진입해가는 우리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20세기 현대예술은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으로 포문을 열었다.

시대를 앞서 간다는 의미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앞서기 때문에 시대의 대다수와는 통하지 않는 움직임들이었고, 그러한 불통의 예술을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열등과 무지의 소산쯤으로 여기며 그들을 우러러보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예술은 너무 오만했고 그 오만함은 고립과 자가당착의 아이러니를 낳았다.

소위 포스트모던 이후의 예술은 예술만의 고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다양한 대중매체의 방법과 성과들을 차용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이웃 예술장르들과 협업하여 좀 더 쉽게 관객과 소통하려 애쓴다.

얼마전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MODAFE,2009)에서 한국의 김원과 중국의 진싱(Jin Xing)의 공동안무로 제작된 ‘외침’은 황량한 폐허 같은 도시와 그 사이를 이방인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영사막에 비춰지고 춤꾼은 영상이미지와 실제 무대를 오가며 만남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이미 무용공연에 영상물이 함께 상연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영상 이미지는 단순히 무대배경이라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라 공연내용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영상물은 춤추는 무용수가 몸짓만으로 채 다 보여줄 수 없는 그의 내면의 기억들과 감정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 몸짓과 상호작용하여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 형식면에 있어서 ‘외침’은 관객과의 소통에 적극 다가가려 하지만 정작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소통의 어려움과 단절이다. 춤꾼은 도시의 이방인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지만 그 여러 관계를 통해서 맨 마지막에 보여주는 몸짓은 행복한 대화가 아니라 고독한 절망적 비명이다.

한편 장르 간의 협동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소극적 방법에 만족하지 않고 예술제도를 구축하고 있는 제도적 경계에 질문을 던지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사례들도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해마다 개최하고 있는 미술관 봄나들이전의 올해 주제는 ‘미술관습격사건’이다. 게임이나 만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마치 미술관을 습격하는 것처럼 설치된 전시이다. 피시방이나 오타쿠의 골방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소위 품격 없는 캐릭터들이 고품격을 자처하는 미술관을 습격한다는 설정이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이미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고급예술이라는 가상의 장벽이 예술제도 속에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소통은 서로 통하는 것이고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일이다. 공유를 위해서는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아래로 내려와야 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몸을 일으켜 세워 당당하게 위를 올려다보아야 한다.

예술이 소수의 천재적인 예술가들만의 것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예술은 예술가만을 위한 것도 소수의 선택받은 엘리트만을 위한 것도 아닌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술은 미술관이나 극장의 담장을 넘어 거리로 나오고 있다. ‘거리예술’은 이미 현대예술의 중요한 범주가 되어버렸고 거리예술의 천국인 프랑스에서는 2005년 ‘거리예술의 시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을 시도하고 있다.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계의 악동 벵크시(Banksy)는 런던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무도 모르게 담벼락에 낙서를 한다. 그런가 하면 박물관에 숨어들어가 소위 명화들 사이에 슬며시 자기 작품들을 걸어놓기도 한다. 그가 이런 짓거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내용은 우리 시대 사회적 현실을 구축하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들에 대한 풍자이다.

그는 미술계의 제도 바깥에서 마치 도둑처럼, 소매치기처럼 움직이지만 대중과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소통은 그런 게 아닐까? 주어진 틀과 경계를 넘어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함께 그 물음에 답해보자고 부추기는 일, 그래서 함께 잘 살아보자고 슬며시 눈짓하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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