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The Letter from Korea 전

‘부상으로 잘라낸 다리에는 아직도 피가!’

한 터키인 할아버지가 의족을 벗은 채 잘린 무릎을 드러내고 앉은 사진에 이병용 작가는 이런 제목을 붙였다. 어느 소설의 한 구절처럼 ‘삶은 형상기억합금 같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애써도 그전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가 없는 역사가 있다. 전쟁이 지나갔다고 그 상처가 다 아물었을까. 사진작가 이병용이 한국전에 참전한 UN연합국 병사들을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그런 생각에서였다.

작년에 터키를 찾았다. 1월부터 3월, 9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50개 도시에서 참전 용사와 그 가족 2천여 명을 만났다. 그 결과를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갤러리 와에서 ‘The Letter from Korea’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것도, 터키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닌 그의 순수한 뜻은 정작 참전 용사들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처음 만난 분들은 경계하면서 물어요. 누구냐, 어떻게 왔냐, 경비는 어떻게 했냐. 제 돈 들여왔다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죠.(웃음) ‘우리가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하시면 그때부터 마음을 여세요. 고맙다고 하시지만 미뤄두었던 고통을 다시 환기하려니 얼마나 만감이 교차하셨겠어요. 그렇게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이에요.”

'부상으로 잘린 다리에는 아직도 피가'
(사진 아래 우측)

그래서 사진마다 담긴 사연이 녹록하지 않다. 한번은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온 할머니를 찾아갔다. “곤경에 처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남편이 자랑스럽다”는 그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었다. 작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남편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드리는 것뿐. 그리고 액자를 든 할머니를 찍었다. ‘결혼 6개월 만에 전사한 남편, 60년 후, 온 가족이 만났다.’

이병용 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우리 자신의 세계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우리들이 인간과 그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끔 해준다. 인간에게 인간을 설명하며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그리고 이번 여정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람으로는 “마지막 가는 길에 하늘이 좋은 친구를 보내줘서 고맙다”며 작가의 손을 잡았던, 그 후 한 달 만에 돌아간 한 노병을 꼽았다. 이 기록이 귀중하고 절박한 이유다.

전시는 다음달 15일까지 열린다. 이병용 작가는 내년부터 3년간 유럽 11개국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