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소년에게 말걸다] '88만원 세대'보다 강한 정치력으로 새 문화변동 추동할 것으로 예상

10대는 언제고 별종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어떤 시대의 10대는 특별한 주목을 받으며, 독특한 세대 정체화에 성공한다. 예컨대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그랬다. 존재하지 않던 ‘10대 소비문화’를 창출하며 사회의 문젯거리로 떠올랐던 그들은 대학에서 히피 문화와 신좌파 이념 등에 경도됐고, 1968년 학생혁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각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독차지한 것도 바로 이들이다.

1947년생인 미 국무장관 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인생을 보면 그 혜택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전전(戰前)의 기성체제를 부정하며 사회의 변혁을 부르짖던 이들은 1980년대에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 시작, 1990년대엔 사회의 중심 권력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보란 듯 호시절을 구가하더니 이제 떼로 은퇴하기 시작, 곧 미국 사회의 연금을 고갈시키고 사회보장제도 자체를 파괴할 참이다.

자,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10대가 그에 비견할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대는, 최소한 바로 앞의 소위 ‘88만원 세대’(197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 태생)보다는 강한 세대 정치력을 가질 것으로 뵌다. 왜일까? 차근차근 따져보자.

세대 문제에 대한 고찰

‘세대’가 학술적으로 연구된 시초는 칼 만하임(Karl Mannheim, 1893-1947)이 ‘세대들의 문제(Das Problemder Generationen)’라는 논문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전 유럽적인 세대갈등의 양상을 분석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고찰된 세대전쟁(Generationenkampf)의 양상은 유전을 거듭하며 세상을 변화시켰고, 이제 세대라는 사회학적 개념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두루뭉술한 단어가 됐다. 그럼에도 세대현상은 여전히 역사의 동학을 구현하는 주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고, 또한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문화의 담지자이기 때문에 세대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일은 꽤 유용하다.

세대는 가족/교육/사회의 차원에서 나눠 고찰할 수 있다. 세대 정체화에서 중요한 시기가 바로 10대 말과 20대 초반이고 그때 나눈 공통의 경험이 세대의식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가족, 특히 부모 세대를 이해하는 것이 한 세대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각종 교육환경의 변화와 보다 복합적인 사회적 변동이 다시 한 세대의 이해를 좌우한다.

한국사회를 이끄는 본격 베이비부머들(1950년대 후반~1960년대 태생)의 부모들이 대략 193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고, 한국의 소비문화를 주도한 2차 베이비부머들(1970년대 태생; 한때 한국의 X세대라 불린)의 부모들이 대략 194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부모들도 세대별로 꽤 상이하기 때문이다.

대졸자들만을 놓고 보자면 대충 이렇다. 1930년대 태생들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공황시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1950년대에 대학을 다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생존의 의지만큼은 충만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였을까, 식민기에 교육을 받은 엘리트 세대에게 ‘촌뜨기들’이라고 손가락질받던 그들은 4.19혁명의 주축세력이 됐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자식들이 ‘386세대’(고교 평준화 세대),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의 주축군이 됐다(지금 그들의 자식들이 조기 유학 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1940년대 태생들은 한국전쟁을 겪기는 했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대개 1920년대-1930년대 태생들처럼 큰 고생-뇌리에 트라우마가 남을 만한-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서 1960년대를 보내며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이 자식을 낳을 즈음엔 나라의 경제사정도 좋아져 처음으로 미국식 핵가족 문화가 형성됐다. 하지만 아직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지 않아 1970년대 태생들은 서구화된 어머니를 중심으로 구성된 안락한 4~5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그 세대들은 소비문화의 코드에는 밝되 기존의 사회질서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와 달리 1950년대 태생들은 완전히 미국화된 유사-히피문화가 휩쓴 대학에서 청춘을 보냈다. 마약이 유행했고, 전통은 무시됐다. 일부 77, 78학번들(고교평준화 1세대)이 민족문화운동을 일으킨 것은 그러한 서구추종에 대한 반발이었다.

다가올 세대 간의 갈등

그러나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나간 세대들의 갈등이 아니라 다가올 세대 간의 갈등이다. 이미 한국의 기성세대 모두는 식민세대와 4.19 세대의 갈등, 그리고 다시 기성세대가 된 4.19세대와 소위 ‘386세대’의 갈등과 그 역학관계를 경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의 갈등 속에 있는 듯 뵈지만, 사실 이는 이념의 탈을 쓴 세대갈등에 가깝다(이념이 세대를 선택했나? 세대가 이념을 선택했나?). 즉, 1945년~1950년대 중반 태생들이 오랫만에 권력을 잡아, 오늘의 한국사회를 규정하다시피하는 한국의 본격 베이비부머들의 세대상황(Generationslage)을 무효로 돌리고자 애쓰는 꼴이다. 하지만 좋든 싫든, 옳건 그르건,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1945년~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세간의 표현은 이렇다: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고 아이들을 독재자로 모시는 1세대... 고속성장의 막차에 올라탔다가 이름 없는 간이역에 부려지는 사람들...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고, 벌어놓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은퇴하기엔 너무 젊고, 도전하기엔 늙은 사람들. 선배들처럼 멋있게 살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리가 불안해졌다.” 한 마디로 세대 정체화에 실패한 세대란 이야기. 386세대의 사회진출과 함께 업무 환경에 컴퓨터가 도입될 때, 잘 적응하지 못해 ‘쉰세대’라고 놀림받았던 이들이다. 일본 식민기 근대적 교육의 혜택을 받은 전세대의 엘리트(일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와 경쟁할 수도 없고, 미국식 현대 교육의 세례를 받은 이후 세대(비교적 영어에 익숙한)와도 소통하지 못한 불우한 세대다.

현재 정치권력이 1945년~50년대 중반 태생들의 손에 있다고는 하나, 가는 세월 막을 자 그 누구랴. 오늘의 젊은이가 내일, 나라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의 주도권은 386세대, 아니 486세대에게 넘어가게 돼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대정치력을 지닌) 본격 베이비부머들의 세대상황에 이후 세대들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이목을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소위 ‘운동권’으로 대학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386세대의 특정한 상황가치가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잣대로까지 격상되는 오늘의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연, 이후 세대들의 약진과 그로 인한 세대 간 견제와 균형에 기대를 걸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온 사회가 팔푼이 같다고 타박하는 ‘88만원 세대’가 1945년~1950년대 중반 태생들의 자녀 세대라는 사실이다. 잠깐, ‘온 사회’라는 표현은 올바르지 않다. ‘88만원 세대’ 담론을 이끄는 이들이 누구인가? 모두 386세대의 정치론자들 아닌가?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가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짱돌을 들라”고 주문하자, 어느 머리 좋은 ‘88만원 세대’ 청년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더랬다. “지금 짱돌을 던지면 얻어맞는 것은 386세대에 치인 우리 부모 세대인데, 어떤 바보가 부모에게 돌을 던지랴.” 그러니까 현재의 상황은, 한국전쟁의 최대 피해자 세대인 1950년대 태생이 겪은 질곡이 자식 세대인 ‘88만원 세대’에게 고스란히 유전되고 있는 꼴이다.

세대 유전: 88만원 세대 vs 조기 유학 세대

386세대의 상황가치가 온 사회를 관통하는 현 상황에 제동을 걸 후속 세대가 마땅치 않다. 1970년대 태생들에게 소위 ‘서태지 신드롬’의 경험은 중요했겠지만, 그들은 상업적 이유에서 X세대라는 딱지를 달게 됐을 뿐, 독자적인 세대화에는 실패했다. 그들은 트렌드를 창출해내는 주요 소비자층이었을 뿐,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만한 세대정체화에는 이르지 못했고, 정치적 비전의 면에서는 386세대들의 리드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이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필자의 생각에 한국사회의 현 판도는 1988년 이후 태생들이 성인기에 돌입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할 것 같다. 4.19세대의 자식들이 다시 아버지 세대의 낡은 비전을 갈아엎고 대격변을 일으켰듯, 1988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새로운 문화변동을 추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의 청소년에 관해 기성세대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하나 있다. 1988년 이후의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사회였으므로, 그 이후 태어난 이들이 그전 세대와 같을 리 만무하다는 것. 그런데 그들 가운데 집에 돈 좀 있고, 공부도 좀 한다 싶은 이들은 죄다 조기 유학을 나갔다. 그것이 꽤 문제적이다. 조기 유학을 경험한 세대는 세상에 예상 외의 변화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 얼마 전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과 목동, 경기 분당 지역의 경우 초등학생과 중학생 4명 중 1명꼴로 (길고 짧은) 조기유학을 다녀왔다고 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볼 때 이는 문화적 변환을 일으킬 만한 잠재력을 지닌 숫자다.

조기 유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어떤 중요한 티핑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그 변화는 어떤 모양일까? 일단 조기유학을 경험한 이들은 역사 클래스에서 전혀 다른 역사를 배운다는 점, (미국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SAT의 (미)국사 과목에서 점수를 받아 대학에 진학한다는 점에서 상이한 역사관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 유학을 선택한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어떤 이유로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법. 과연 한국 사회는 이 문화적 에일리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바탕 시끄러운 재조정의 과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꽤 흥미로운 대치 국면을 형성할지 모른다. 현재 미국의 소위 ‘아이비리그’ 8개 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들은 결국 근미래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테다. 과연 그들은 소위 ‘국내파’ 엘리트들과 조화롭게 일할 수 있을까?

자 그럼, ‘88만원 세대’는 조기유학세대와의 세대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1988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서 기득권층인 조기 유학 경험자들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인 조기 유학 비경험자들 사이를 갈라 ‘피해자 의식의 연대’를 구축한다면, 유학 비자유화 세대가 (1988년 이후의) 유학 자유화 1세대를 ‘오렌지족’으로 몰아세우는 데 성공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도모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현재의 세대 간 대립구도를 단순화해보면, 1945년~1950년대 중반 태생들과 그들의 자녀가 되는 ‘88만원 세대’의 이익이 386세대와 1988년 이후 태생의 그것과 상충하는 형세다. 하지만 정작 386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것은 그들의 자녀 세대의 과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 베이비부머의 정치적 이상과 가치를 그들의 자녀인 Y세대(1980년~1988년생)가 보란 듯 거부하지 않았던가.

역시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한국사회는 반전으로 가득한 가족 드라마의 세계. 우리는 내일도, “다이나믹 코리아!”



임근준(이정우) 미술˙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