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소년에게 말걸다] '완득이' 성공 후 양적·질적 성장정체성 가능성도 심화 발전

소설 ‘완득이’의 성공은 징후적이었다. 침체된 출판 시장이 ‘청소년 문학’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두 가지 의미에서였다. 청소년 세대가 새로운 독자층으로 부상했고, 한편으론 청소년 문학의 주요 내러티브인 '성장담'의 시장적 가능성이 입증되었다. 후자는 성인 역시 청소년 문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문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완득이’ 이후 청소년 문학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팽창한 지형 속에서 청소년 문학의 여러 정체성과 가능성도 분화, 심화되고 있다.(다른 서체로 해주세요)

“청소년 문학의 스펙트럼은 태생적으로 넓을 수밖에 없어요. 타깃이 중고등학생이라지만 중학교 1학년생은 ‘아이’에 가까운 반면, 고등학교 3학년생은 거의 ‘어른’이거든요.”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의 이지영 편집팀장의 말처럼, ‘청소년 문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열린 상태”가 청소년 문학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청소년 문학은 출판계에서도 다양한 범주로 접근되고 있다.

우선, 아동 문학의 연장선에서 규정되는 청소년 문학이 있다. 아동 문학 전문 출판사들이 영역을 확장한 결과물들이 청소년 문학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새로운 부모 세대가 영향을 미쳤다. 이지영 팀장은 “‘몽실언니’ 등의 아동 문학이 붐을 일으켰던 시대가 있었다. 그때 성장기를 겪은 세대가 학부모가 된 것이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판사 생각의나무 김도원 편집팀장의 지적처럼 지금 학부모가 “386세대”라는 것은 청소년 문학이 단순히 ‘업그레이드된 아동 문학’에 그치지 않게 한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80년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모 세대의 관심이 투영된 탓이다. 따라서 청소년이나 청소년이 처한 현실이 낭만화되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일단 캐릭터가 ‘세졌다’. 현실을 강하게 헤쳐나가는 ‘완득이’에 이어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의 주인공도 더이상 청순가련하지 않다. 의붓여동생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가출한 소년은 마법의 빵집에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연인이나 자신보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저주의 빵을 사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배경이나 갈등의 양상이 구체화되는 것도 특징이다. 올 여름 문학과지성사 ‘문지푸른문학’의 일환으로 출간되는 김종광의 새 소설이 한 예다. 학업과 생활, 이성교제 등 청소년의 관심사를 테마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그 내용은 실업계 고등학교, 흡연에서 혼전 임신 후 낙태, 촛불집회 참가까지 실질적인 이슈들을 아우른다.

이런 문학들은 동화보다는 확실히 소설에 가깝다. 창작과비평사는 ‘완득이’와 ‘위저드 베이커리’를 문고본과 양장본, 두 가지 판본으로 출간했다. 양장본은 성인 독자를 겨냥한 것이었다. 문학과지성사의 원종국 편집팀장은 ‘문지푸른문학’의 출발점이 “아동 문학이 아닌 정통 문학”이라고 말했다. 김종광을 비롯해 김도언, 김숨, 손홍규 등 기성작가의 성장 소설 시리즈를 기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청소년의 감수성을 잘 짚되, 재미보다는 문학성을 추구하는 것”이 그 의도다.

한편 청소년 문학이 성인 독자에게 ‘쉽고 재미있는 문학’으로 호소하는 데에는 여러 사회심리적 원인이 있다고 분석되었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를 “키덜트 문화”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시대의 심리”가 가시화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소비하는 심리도 지적되었다. ‘속도전’에 지친 사람들이 추상적, 낭만적인 ‘성장기’로 퇴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현재의 상황에서 끝없이 성장하려는 욕구”(김헌식 문화평론가)와 맞물리기도 한다.

청소년 문학의 외피를 입고 출간되는 중진 이상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 이런 맥락에서 읽히는 경우가 많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이 대표적인 예다.

성인 독자층이 향유하는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의 성장담을 시대사회적 바탕과 아울러내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출간된 김용희의 ‘란제리 소녀시대’에서 조짐을 발견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대구를 배경으로 한 이 여고생 성장담은 소녀를 여성으로 훈육하는 당대의 남성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를 그리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역사적 접근을 통해 성인이 향유하는 ‘퇴행의 서사’로서의 청소년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