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스토리텔링] '에비앙'·일본의 '하와이안즈'·남이섬 등 대표적 성공사례

세계적인 생수 브랜드로 유명한 에비앙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유럽인에게 에비앙은 ‘약’ 같은 물이다. 에비앙이 세계 최초로 물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이 물을 마시고 병을 고친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팔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대, 스토리텔링이 문화의 영역에서 뛰쳐나온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스토리텔링은 이제 사회와 산업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다. 오히려 요즈음의 스토리텔링은 고향보다는 외지에서 더욱 꽃을 피우고 있다.

기능성보다 이야기의 매력

특히 상품을 파는 기업의 마케팅 기법에서 스토리텔링은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은 스토리텔링 마케팅에서 잘 드러난다. 요즈음의 광고를 보면 상품에 대한 기능적 특성만을 설명하는 콘셉트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소비자의 감성에 어필하려는 방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가령 아파트 TV광고에서는 ‘넓은 면적과 쾌적한 공간’, ‘친환경적 자재 사용’과 같은 내용이나 대사가 이제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가족이나 이웃, 사랑과 같은 소재로 이야기를 구성해 아파트 브랜드에서 감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상품에 담긴 의미나 개인적인 이야기가 상품 자체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노린 방법이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것은 이제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상품에 들어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이 적용된 광고에서는 상품 개발 과정과 관련된 실제 이야기가 등장하거나 소설이나 신화 등에 나오는 이야기를 활용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공간과 스토리텔링의 시너지

최근의 스토리텔링은 공간의 재탄생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온천 테마파크로 잘 알려진 일본의 ‘하와이안즈’는 폐광촌을 성공적으로 변신시킨 사례다.

석탄 수요의 감소로 탄광 사업이 중단되고 대신 풍부하던 온천수에 눈을 돌린 데서 변화는 시작됐다. 열대를 상기시키는 온천 공간과 야자수로 꾸며 테마파크로 변신한 탄광촌은 ‘하와이’라는 또 하나의 키워드를 끌어들여 대성공을 거둔다. 추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속 하와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역 주민들도 하와이의 훌라를 배워야 했다.

이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바로 <훌라걸스>(2007)다. 영화가 그해 일본 아카데미에서 우수작품상,우수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하와이안즈는 인기가 더욱 높아지기도 했다. 공간의 스토리텔링이 단 한 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예다.

오랫동안 마임축제를 열고 있는 춘천은 올해부터 신화적 요소를 도입해 본격적으로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물의 도시’인 만큼 신화의 모티프는 수호신인 수신(水神)의 이야기로 꾸몄다. 춘천을 넘보는 화신(火神)의 침입과 이를 저지하려는 수신과 도깨비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마임축제의 성격과 연결된다. 이 기간 동안 작가들이 신화 속 캐릭터들을 구현해놓은 종이 작품들이 거리 곳곳에 걸려, 춘천은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하게 됐다.

1-에비앙
2-영화 '훌라걸스'
3-춘천마임축제

내가 ‘그’가 되는 체험의 현장

관광상품에서의 스토리텔링은 한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진 남이섬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스토리텔링 관광지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는 관광객들에게 작품 속 주인공과 같은 환타지를 제공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편 역사적 공간과 스토리텔링의 결합은 관광상품으로서의 흥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전남 남해, 경남 통영, 여수를 잇는 남해안 일원은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영웅이 있었음에도 그간 관광상품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에 경남도는 지난해부터 관광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이순신 장군 관련 관광지에 대해 여행가이드와 관광해설사 등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남도를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이순신 신화에 관련한 역사적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전달하고, 이를 다시 하나의 체험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이 같은 일련의 변화들은 결국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를 파악한 데서 비롯된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마케팅의 핵심은 더 이상 상품의 우수한 품질이나 외양에 한정되지 않는다. 고객이 꿈꾸고 기대하는 이야기를 상품에 투영시켜 내놓는 것이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성공 비결이다. 사람들이 구매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제 ‘쓸모 있는 상품’이 아니다. 자신의 감성을 만족시키는 상품이고, 그 상품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매력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