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예술을 말하다] 시민편의 미디어아트 상영 공공예술 향유 기회 제공 의도로 설치비용에 비해 예술 효율성 낮고 사회적 소통기능 떨어진다는 의견도

1-서울 강남대로에 설치된 미디어 폴
2-울 강남대로에 설치된 미디어 폴. 시각적으로 어지러운 주변경관을 더 어지럽게 보이게 한다
3-서울 동숭동 대학로 중앙 분리대 석조물. 원구, 삼각기둥, 원뿔 등의 기초적 조형

#1. “사람들은 저게 있는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피곤한 강남역에 광고나 그래픽을 트는 걸 저렇게 높이 세우다니 어이 없다. 낮엔 보이지도 않는데 80억이나 들여 나무 뽑고 왜 세웠는지 모르겠다.” – 허완(25·대학생)

#2. “전엔 노점상이 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노점상이 있는 것보단 낫다. 전에 이쪽이 서초구 쪽 거리에 비해 한산했었는데 미디어 폴이 들어선 후 거리에 사람이 더 많아졌다. 외국인 안내 등에 활용하면 더 좋을 것 같다.” – 양수연(26·상인)

서울시의 ‘디자인서울 거리’ 조성의 일환으로 강남구가 강남대로 일대에 세운 미디어 폴이 80억여 원이라는 투자비용만큼 공공예술로서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와 함께 논란이 일고 있다. 들인 비용에 비해 예술성과 효율성이 낮으며 공공예술로서 사회적 소통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시범운영이 막 끝난 상태기 때문에 성급한 평가는 유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공예술 전문가들은 미디어 폴이 시민참여가 거의 배제된 채 세워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공공예술은 보기에 좋으면 그만인 갤러리 예술과 달리 사회적 소통의 매개로서의 기능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강남구는 가로등과 보행자 사인, 교통안전 표지, 분전함 등의 기능을 통합해 안전하고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이를 도입했다. 미디어 폴에 첨단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국내외 유명 미디어 아트 작가들의 거리작품 전시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가로등, 정보부스, 시설안내 표지판, 보행자 유도사인, 지역안내도, 대중교통 안내도 등의 기능을 더해 시민 편의를 제공하고 미디어아트를 상영, 공공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서울시의 의도다.

가로 1.4M, 폭0.65M, 높이 12M의 거대한 미디어 폴은 작년 9월부터 도로의 가로수들을 뽑아내고 50여 개의 노점상을 철거한 공사 끝에 지난 3월 서울 강남역에서 교보타워 사거리까지 약 760M구간에 22개가 설치돼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미디어 폴, 공공예술로 기능?

시범운영 기간이 끝난 현재, 공공예술의 기능을 시민에게 제공한다는 당초 의도에 비해 미디어 폴은 공공예술로서의 가치와 효용에 있어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다. 특히, 도로측의 전면부(사진)는 복잡한 거리와 간판 등으로 가뜩이나 복잡한 강남대로를 시각적으로 더 복잡하게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복잡한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아예 작품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는 못하는 시민이 많았다.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오후 3시까지 전면부와 후면부의 모니터는 가동되고 않고 있었다. 오후 3시께 물방울과 물고기가 보여지는 영상이 나왔으나 단순한 그래픽 장면으로 예술성을 평가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절반의 시간은 김연아가 등장하는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가 반복됐다.

강남구는 지난 4월 공고한 ‘강남대로 U-street 민간운영사업자 선정 제안내용’ 에서 미디어 폴의 영상 유형을 미디어 아트 50%, 상업광고 10%, 미디어아트 광고 20%, 공익정보 20% 수준으로 제시했다.

시와 구는 콘텐트를 제대로 확보하지도 못한 채 디자인 거리 조성이라는 하드웨어만 급하게 구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디어 폴 운영 대행사인 제일기획에 따르면 미디어 폴은 12편의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선정해 한 분기당 세 작품 세 편을 반복상영할 예정이지만 시범운영 기간이 끝난 현재까지 어떤 작품을 담을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미디어 폴은 약 34M 거리마다 1.4M의 폭으로 설치돼 있는데, 이런 종류의 캔버스를 상상하고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작품을 확보하는 게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이경돈 서울시 디자인서울 기획관은 “미디어 폴은 10대 디자인 서울 거리라는 아이템을 각 지역에 맞게 특화하는 과정에서 설치된 것이고 현재는 시범운영 인수인계 중”이라며 “IT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서 신도시인 강남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현재는 강남구와 세부 실행계획을 세우는 단계라 자체 디자인팀이 만든 6개의 영상과 자체 광고로 채우고 있다”며 “실행계획이 확정되면 오전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작품을 틀 것이며 미디어 아트(50%), 공익정보(30%), 광고(10~20%)로 편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비에 비해 효율성은?

80억여 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공공미술 작품으로서의 효율성 역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일 오전 미디어 폴은 작동되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이 후면부 키오스크에서 스티커 사진을 찍어 자신의 메일로 전송하는 게 거의 유일한 용도다. 그나마 건널목에 가까이 있지 않은 미디어 폴 주변에는 접근하는 시민조차 드물었다.

강남구가 거리의 가로수를 뽑고 노점상 50여 개를 철거하며 세운 의도가 아직 시민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 장준영(32)씨는 “지난 겨울에 이거 한다고 보도블록 다 뜯어내서 걸어 다니기 힘들었다”며 “완공되고 보니 낮엔 대부분 꺼져있고, 틀어도 워낙 복잡한 주변 경관상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55개 노점상을 전부 이전시키고 가로시설물을 55% 축소시켰다”며 “강남대로를 상권 있는 거리로 만들고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에 따르면 미디어 폴을 포함한 강남대로 유 스트리트 조성사업에는 총 85억 400만여 원(시 29억 4200만여 원/ 구 55억 6200만여 원)의 예산이 들었다. 총 22개의 미디어 폴에 들어간 비용은 40억 4400만여 원이다. 한 대당 2억 가까운 셈이다.

미디어 폴은 8개의 46인치 옥외용 LCD(키 오스크 포함), 1개의 옥외용 LED(1M*12M), CCTV, 가로등, 철제몸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삼성전자 46인치 LCD가격은 200만여 원, LED 가격은 300만여 원 선이다. 미디어 폴의 핵심부품인 LCD와 LED모니터 값은 3700만 원에 그치는 것이다. 철제외형과 부품, 전선 및 CCTV·가로등과 소프트웨어에 1억 4000만여 원이 들어간 셈이다.

미디어폴 제작을 주도한 삼성SDS 관계자는 “미디어 폴에는 모니터 외에도 전체 통합관제 시스템, 키오스크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개발비용이 많이 들어가 돈으로만 따지면 적자인 셈”이라며 “기술적 상징성뿐 아니라 첨단기술의 제품으로 국위선양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대학로 공공미술의 경우는?

서울시의 공공미술 설치에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2003년 서울 종로구청이 8억여 원을 들여 설치한 동숭동 대학로 중앙분리대(사진) 석조물은 원뿔, 삼각기둥의 원초적 형태로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한 미술계 인사는 “외주 브로커가 만든 것으로 너무 원시적 형태”라며 “그 정도 작품을 만드는 데 비용은 너무 들었다”고 말했다.

혜화역에서 동성고 방향의 거리에는 또 이 중앙분리대 석조물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비석이 거리를 막고 설치돼 있다. 이에 대해 박찬국 공공미술 작가는 “대학로 중앙분리대는 문화의 거리 과시욕이나 월드컵 등의 집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큰 필요성 없이 정치적 의도로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공공예술은 공공의 장소에서 미적 문제도 있지만, 그게 왜 들어갔느냐는 맥락이 있어야 하며,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8억여 원을 들여 지은 지 6여년밖에 안된 이 조형물을 허물 예정이다. 이 역시 시의 ‘디자인 거리’ 사업의 일환이다. 최근 몇 년간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대학로 일대 거리 한가운데 놓여진 미술 작품 일부는 시의 새로운 ‘디자인 거리’ 조성 사업에 따라 이전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철거됐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중앙분리대를 철거하고 물길을 조성하고 있다”며 “지하철에서 나오는 하천의 물로 혜화동 로터리 부근에서 길을 따서 종로까지 연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공예술, 설치가 다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공공예술은 사회적 통로로서의 기능 때문에 거기 놓아서 좋아 보이면 그만인 갤러리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기획단계에서부터 관리까지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시민 참여를 지속시켜 사회적 의사소통을 돕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官)이 외부 전문가에 의뢰해 일방적으로 세워놓고 시민은 즐기라고 하는 방식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임정희 연세대 인문예술대학 겸임교수는 “에펠탑이 나올 당시만 해도 월등한 기술이 공공미술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선진국일수록 아날로그 방식을 공공미술에 도입한다”라며 “전국 미술관에 있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대부분 꺼져 있는 것은 기술에 대한 막연한 신뢰가 예술을 통한 소통의 단절을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지비의 문제 등으로 켜놓는 시간보다 꺼놓는 시간이 많은 ‘무용지물’형 미디어아트 조형물이 많다는 뜻이다.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 스트리트 관련 강남구청의 주민 의견 수렴절차는 간판 개선과 관련한 두 번의 공식 모임이다. 강남구는 작년 4월 인근 상인들이 주로 참여한 간판개선 주민자율 협정체를 만들었고 6월 간판개선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외부 전문가(미대 교수)를 ‘마스터 플래너’로 지정해 7월 미디어폴 구축 사업자 선정을 한 이후 7개월여 만에 미디어폴 구축을 완료했다.

강남구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 폴과 관련해서는 따로 공청회를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미디어 거리로 만들어 달라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김세진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교수는 “공공예술은 전문가 대상뿐만이 아닌 시민참여와 주변환경 고려가 중요하다”며 “선진국의 공공예술은 특정 경향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주민 동의의 과정이 지난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월성과 공공성을 획득한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