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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다 스타일을 탄다
[자전거 탄 新 풍경] 패션상품으로 인식… 미니벨로 고급생활
자전거 등 시장 다변화





황수현 기자 sooh@hk.co.kr



풍경 1. 자신의 오토바이를 힐끗거리는 고등학생에게 “아가야, 가서 자전거나 타렴”이라고 자랑스럽게 으스대던 30대 중반의 정모씨.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학생의 눈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녀석이 지금 야간 아르바이트를 뛰면서까지 욕심을 내고 있는 건 오토바이가 아니라 최신형 픽시 바이크라는 사실은 모른 채.

녹이 잔뜩 슨 할아버지의 짐 자전거, 놀이터 옆에 세워진 꼬마들의 노란 자전거,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험한 산길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 선수들의 MTB. 이처럼 자전거는 우리 기억 속에서 여러 가지 풍경을 만들며 함께 자라 왔다. 그러나 이제는 자전거가 놓인 또 하나의 새로운 풍경에 익숙해져야 할 때다.

풍경 2.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한 자전거 매장. 헤이즐넛 향이 가득한 실내의 한 가운데에는 수제 자전거 프레임이 조명을 받아 광채를 내며 백화점 쇼윈도에 걸린 수트마냥 전시돼 있다. 한쪽 벽에는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방과 모자, 두건뿐 아니라 캐주얼한 옷가지들도 몇 개 걸려 있다. 공간이 비좁다는 듯 널찍널찍하게 전시된 풍경은 촘촘히 겹쳐져 팔리기를 기다리던 자전거 가게의 모습과 다르다. 왜 자전거 매장이 동네 문방구 옆이 아니고 패션과 유행의 메카인 압구정동까지 나와 있는 건지?

지난해 말부터 쏟아진 정부의 자전거 타기 지원 정책이 아니더라도 자전거 예찬론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자원 고갈과 환경의 역습에 당황한 지구인들이 스스로를 반성하며 바꾼 생활 패턴의 핵심에 이 자전거가 있다.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적어도 찬반의 여지가 없다. 어떤 의견이든 일단은 충돌하고 보는 이 복잡한 나라에서 만장일치를 유도하는 몇 안 되는 이슈 중 하나가 아마 자전거 타기일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선한 것과 대중적 파급력은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착한 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붐을 형성한다면 참 좋겠으나 때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은 엉뚱한 데서 온다. 계몽의 범주를 벗어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힘 말이다. 의도적인지 자연발생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그 힘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스타일을 타는 사람들

“아무래도 자전거의 스타일을 가장 중시하죠. 픽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거든요.”

압구정동 스키드 바이크 임대열 사장의 말이다. 스키드 바이크는 국내 최초의 픽시 전문 매장으로, 픽시는 픽스드 기어(fixed gear), 즉 기어가 없는 자전거를 말한다. 초창기 자전거와 흡사한 형태로 핸들, 프레임, 바퀴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미니멀한 외관이 특징이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다가 최근 찾는 사람들의 연령 폭이 다양해졌다. 완성된 차를 사기도 하고 (자전거는 교통 법규상 차량으로 분류된다) 프레임을 선택해 거기에 맞는 바퀴와 핸들, 그립 등을 마음대로 골라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다. 고유의 승차감도 매력이지만 전문가들이 꼽는 픽시의 매력은 그야말로 ‘스타일을 위한’ 자전거다. 어떤 이들은 오직 외관만을 위해 브레이크를 떼어 버리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해 우려를 살 정도다.

역시 압구정동에 위치한 르벨로는 디자인 회사 이노이즈 인터랙티브의 대표가 연 미니벨로 전문 매장이다. 개장 취지는 일상과 디자인의 접목이다. 매일 타고 다닐 자전거, 이왕이면 예쁘고 좋은 것으로 타자는 뜻으로 미니벨로(바퀴가 작은 자전거)나 크루저(유선형의 프레임을 가진 클래식한 형태의 자전거) 등 패션이 강조된 자전거들을 중점적으로 취급한다.

예쁜 자전거를 파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가죽 안장, 안장에 씌우는 커버, 안장 옆에 다는 백, 색색깔의 그립, 색색깔의 타이어 등 자전거를 꾸밀 수 있는 각종 용품과 액세서리도 함께 판다. 매장 한 켠에는 바이커들을 위한 전용 의류도 있다. 기존의 불꽃이 그려진 쫄쫄이가 아닌 일상복과 다름 없는 베이지 색 크롭트 팬츠와 줄무늬 셔츠지만 자세히 보면 몸을 앞으로 굽혔을 때 등이 보이지 않도록 뒷자락이 조금 더 길거나 무릎이 나오지 않도록 봉제가 되어 있는 등 곳곳에 기능이 숨어 있다. “자전거를 타다가 카페로 들어가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옷”을 지향한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1-압구정도 르벨로 매장
2-한국 최초의 픽스드 기어 바이크 샵 '스키드 바이크'
3-일렉트라 자전거 벨
4-일렉트라 폴카도트 안장


지금 가장 ‘잇’하고 ‘핫’한 액세서리는?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퍼진다. 퍼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럴 때는 저렴한 이동 수단이라는 장점도, 건강 지킴이라는 간판도, 환경 보호의 첨병이라는 명예도 그다지 쓸모가 없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핫(hot)’하다는 인식이다.

자전거가 트렌드 세터들의 액세서리로 이미지가 승격되면서 그 위치도 스포츠 잡지에서 패션 잡지의 모델 옆으로, 동네 모퉁이 매장에서 도심 한 가운데로 이동했다. 자전거 타는 일은 착한 일이 아닌 멋진 일이 되었고, 여기에 뉴비틀이나 할리 데이비 대신 아비치(이탈리아 수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새로운 트렌드의 전조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되어 널리 울려 퍼졌다.

자전거에 새로운 매력이 입혀지면서 시장은 한층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던 그들만의 문화가 대중에게 이해받기 시작한 것이다.

“MTB 일색이던 자전거 시장이 점점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미니벨로나 고급 생활 자전거, 싱글 기어 자전거(픽시)에 대한 수요가 많이 생겨난 데다가, 단순히 운동을 위해서만이 아닌 패션 상품으로 받아들이면서 액세서리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한번 매력을 느끼고 빠져 들기 시작하면 끝없이 욕심을 내게 되는 것이 자전거의 세계거든요.”

서울 논현동 이티 바이크 김갑중 부장의 말이다.

늘 건전한 것만 추종해오지는 않았던 패션의 이력으로 보아 (오히려 킬 힐이나 44 사이즈 등 파괴적인 것이 더 많았지만) 지구를 살리는 이 건전한 취미 생활이 트렌드의 한 가운데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일이다.

사방의 지원으로 바람직한 폭발을 앞두고 있는 자전거 신드롬이 한낱 신드롬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4대 강을 잇는 자전거 도로 같은 거창한 계획보다는 지금 당장 운전자들의 인식 변화와 도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

특히 한국 사람치고 자전거 도둑 한번쯤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도난 문제는 심각하다. 얼마 전 의정부시에 세워진 자전거 주차 타워와 같은 시설이 도심에도 필요하다. 자전거 붐을 타고 고가의 자전거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필요는 더 절박해졌다.

정부의 의욕적인 자세와 달리 도로와 인도에서 여전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자전거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시급하다. 자전거를 같은 차량이 아닌 ‘앞에서 거치적거리는, 차도에 나와서는 안 될 무엇’으로 보는 이상 누가 자전거를 가지고 도로로 나오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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