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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디아스포라인가
[디아스포라, 한국문화의 새로운 힘] 강상중과 서경식 등 시대를 이해하고 미래를 보는 방법 제시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아래 좌) 재일 한국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 (우) 재일조선인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라는 ‘외부’의 위치에서 발화된 서경식의 산문들은 우리 사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현황과 모순과 미덕과 편향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권성우 문학평론가가 2008년 출간한 비평집 <낭만적 망명>에서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저작들을 본격적인 ‘한국 문학’으로 조명하며 밝힌 의의다.

최근 한국사회 문화예술의 전 영역에서 디아스포라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재일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저작 <고민하는 힘>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미국 속의 한국작가 11인> 전, <아리랑 꽃씨> 전 등 디아스포라 미술 관련 전시가 잇따라 열린다. 문학과 영화 속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한국사회의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들로 등장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사회의 세계화와 다문화화의 산물이자 실상이면서, 해법의 가능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권성우 평론가는 서경식 교수 저작의 중심에 놓인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에 주목하면서, 이런 능력 없이 현대에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모색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또 “서경식 교수가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그 자신 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차별받고 억압받는 타자의 입장이었다는 사실과 연관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디아스포라 문화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곧 시대를 이해하고 앞날을 보는 한 방법인 까닭이다.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재일교포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의 저력에 대해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말 그대로 고민하는 힘의 가치를 알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고민 없이 사는 새로운 세대에 충격을 받고 있다. 경제적 가치만이 유일한 것인양 여기는 행태를 목격할 정도다. 이 책은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 새삼 일깨워주는데다,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자아가 무엇인지, 돈의 가치는 무엇인지, 일과 사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등등 삶에서의 근본적인 화두들을 막스 베버의 사회학과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을 통해 질문하는 이 에세이를 읽으며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자기계발서의 흐름이 뒤바뀔 것”을 예견했다.

“미국의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의 영향하에 놓여온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개개인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서 그 힘을 발휘할 것을 강요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 인간의 한계가 드러난 시점이다. 자아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자아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고자 하는 <고민하는 힘>의 메시지가 유효한 것이다.”

이처럼 <고민하는 힘>의 힘은 치열한 고민과, 관계 맺음의 가치를 일깨우는 지향성이다. 이는 저자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강상중 교수는 책 속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재일한국인은 일본인의 역사에서 가장자리로 쫓겨났고(중략) 동시에 한반도 역사의 일부이면서도 탯줄에서 잘려나간 '디아스포라'적 '반(半)일본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나의 고민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귀속되는가? 나는 어디에 근거해서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와 만나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이 세상에 믿을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강상중 교수에게 세계의 위험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감각을 길러주었다. 그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맷돌에 잘리고 으깨지듯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찢어지는 사태”와 “사람들이 얼이 빠진 듯 삶의 의미조차 잃고 불안 속에서 고민하며 고통받는(중략) ‘근대’의 붕괴”를 읽어내며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고민하는 힘>이 시대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보편적 지혜와 능력으로 받아들여진 데에는 이처럼, 불안한 바탕을 인식하고 지향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삶의 조건이었던 디아스포라 개인의 내력이 있다.

한국을 전방위적으로 긴장시켜온 디아스포라, 서경식

“고정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도 그것을 보는 편이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는 달리 보인다. 다수자들이 고정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물이나 관념이 실제로는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소수자의 눈에는 보인다.”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지식인인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는 2006년 출간된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디아스포라의 존재 의미를 소수자로서의 위치에서 찾는다. 그 스스로 역사적 비극의 담지자로서, 인간을 소외시킨 근대의 한계를 비판하고 그 너머를 적극적으로 탐구할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1992)를 시작으로 <청춘의 사신>(2002), <소년의 눈물>(2004), <난민과 국민 사이>(2006),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2006),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2007), <시대를 건너는 법>(2007), <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이하 <만남>)(2007), 최근 출간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와 <고뇌의 원근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양의 저작과 강연 활동, 국내 대학에서의 연구 교수 생활을 통해 한국사회에 디아스포라의 삶과 시선을 환기해 왔다.

서경식 교수가 한국의 사회문화에 미친 영향은 저작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넓다. 그가 경계인이자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영역은 ‘정치’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부터 자신이 몸 담고 교류하는 학계의 양상,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서의 미의식까지 다양하다. 가속화되는 신자유주의적 상황과 그에 순응적, 혹은 냉소적으로 대응하는 사회의 교양 수준을 비판할 뿐 아니라, 여기에 앞장서서 대항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촉구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그리고 독일 표현주의 회화를 다룬 최근작 <고뇌의 원근법> 등 미술 감상문과 여행기를 결합한 형태의 에세이들은 더 나아가, 이권우 도서 평론가의 말마따나 “예술을 통해 시대적 고민을 공유하려는 세련된 의도”를 담고 있다. 흔히 탈정치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예술과 미의식 역시 정치, 사회문화와 결부되어 만들어진 것이며 또 그 사실을 관통하고 직시할 때 비로소 가치 있음을 일깨운다.

<고뇌의 원근법>에서 서경식은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는 이유로 ‘예쁜’ 한국근대미술에 딴죽을 건다. 그가 되짚는 ‘미의식’의 의미는 단지 예쁨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이 곧 자기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고통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디아스포라의 감각은 이렇게 한국을 긴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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