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한국문화의 새로운 힘] '미국 속의 한국작가 11인' 전, '아리랑 꽃씨' 전 등디아스포라 미술 조명 잇따라

지난 1일부터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속의 한국작가 11인 For Excellence: The 11 KAFA Awarded Artists> 전은 1992년부터 작년까지 한미미술재단(Korean Arts Foundation, KAFA) 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한미미술재단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작가들을 후원하는 단체다.

전시는 17년간의 미국 내 한국미술의 흐름을 담아냈다. 이전 작가들은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경향이 있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김진아 큐레이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다문화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인 80년대까지의 미국 내 아시아 작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내세워야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남윤동, 조숙진이 그 예이다. 도자기 작업을 주로 해온 남윤동은 철학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조형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식물, 동물, 물, 지형 등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말마따나 “자연의 리듬으로의 재연결”을 추구했다.

한편 조숙진은 유행이 지나고, 버려진 수공 제작 시대의 의자들을 재료로 명상적인 작업을 했다. 다리가 절단된 채 앉은뱅이 신세가 된 의자들은 지나간 시대를 상징하는 동시에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한편 최근 작가들의 관심사는 보다 다양해졌다. 1990년대 후반 수상자인 서도호는 전지구화 시대의 불안을 이동하는 ‘집’의 형태로 드러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박정미는 자신이 병을 앓으면서 마주했던 ‘죽음’을 작업화했다. 죽어가는 환자들에게서 유언을 들어 만든 <유언>이 대표작. 임원주처럼 뉴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대에 편재한 도시 경험을 빚어낸 작가가 있는가 하면, 한국의 공중목욕탕에 그려진 백조와 북극곰, 나이아가라 폭포 등의 키치한 이미지들을 촬영함으로써 이 사회와 삶의 정체를 묻는 이재이 같은 작가도 있다.

김진아 큐레이터는 “태어난 터전을 떠나 이주하는 디아스포라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도 다문화가 형성된 지금, 이 작가들의 작품은 다양한 문화의 경계에서 ‘다른’ 문화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힌트를 준다”고 말했다.

오는 16일부터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아리랑 꽃씨> 전은 디아스포라 한국 미술을 총정리하는 장이다. 전시 제목부터 한민족을 뜻하는 ‘아리랑’과 디아스포라를 뜻하는 ‘꽃씨’를 조합했다.

1-‘아리랑 꽃씨’전의 중국내 한인 작가 전화황의‘총살’
2-‘미국 속 한국작가 11인’전의 조숙진‘의자들’
3-‘아리랑 꽃씨’전의 재일한국인 작가 조양규의‘폐쇄된 창고’
4-‘아리랑 꽃씨’전의 독립국가연합 내한인 작가 김 세르게이의 ‘선조’
5-‘미국 속 한국작가 11인’전의 임원주의 ‘전도된 윌밍턴’
6-‘미국 속 한국작가 11인’전의 박정미 ‘그리움의 향연’
1-'아리랑 꽃씨'전의 중국내 한인 작가 전화황의'총살'
2-'미국 속 한국작가 11인'전의 조숙진'의자들'
3-'아리랑 꽃씨'전의 재일한국인 작가 조양규의'폐쇄된 창고'
4-'아리랑 꽃씨'전의 독립국가연합 내한인 작가 김 세르게이의 '선조'
5-'미국 속 한국작가 11인'전의 임원주의 '전도된 윌밍턴'
6-'미국 속 한국작가 11인'전의 박정미 '그리움의 향연'

박수진 큐레이터는 이 전시가 “디아스포라를 역사를 개척한 자, 새로운 문화 속에서 적극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인간으로 재조명하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특히 “인종 및 민족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관념에 의문을 던지는 새로운 존재”로서 디아스포라를 주목한다. 이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성을 문화적 자산으로 보는 것이다.

이 전시의 특징은 지역별로 작품을 구분했다는 것. 지역마다 이산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재일한국인의 미술의 경우, 외국인으로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그들의 상황 때문에 그 맥락을 비교적 잘 살펴볼 수 있다. 1세대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저항적 문화를 공유했다면 2세대는 일본사회 내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모색했고, 3세대 이후부터는 국제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 내 한인의 미술은 중국의 혁명과 조선 민족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주제가 강하게 드러나고 인물화 중심인 것이 특징이다.(림무웅 <중국 조선민족 미술사>) 뚜렷한 한 줄기를 형성하지 못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향이 강해서 한국사회 내에서는 종합적으로 정리된 적이 없다.

독립국가연합 내 한인 미술 역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 하에 있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초반 이후 이 지역의 미술은 큰 변동을 겪었으며, 한인 미술 역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욱 많이 담아내게 되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가는 세르게이 김.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주로 초상화 작업을 하던 그는 소련 해체 후 공산주의 붕괴에서 받은 충격과 생활에 닥친 곤란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이런 지역별 구분은 국가라는 경계를 재확인하고 공고히 하기보다 오히려 그 경계를 해체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부각되는 것은 각각의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들이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미술작품화되었는가, 라는 부분이다. 박수진 큐레이터는 이들 “경계에 선 자의 감수성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를 향한 존재의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전통, 문화, 민족을 넘어선 동적이고 창조적인 문화관을 단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