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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는 것이 '나' 다
[먹을거리가 당신을 말한다]
내가 고른 한끼 식사 개인적 취향 뿐아니라 사회적 계층을 반영
학력과 소득 높을수록 친환경·유기농 먹을거리에 관심 더 가져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 서른 한 살 토요일 저녁, 왼 손에는 장미 한 송이를 든 채 햄버거를 사기 위해 패스트푸드점 카운터 앞에 줄을 서기에는 약간, 아주 약간 민망한 나이다. … 내가 감자프라이를 깨작거리며 뜨거운 블랙커피를 입술에 가져다대는 시늉만 하고 있을 때 빅맥을 뚝딱 해치운 그는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심지어 리필까지 받아왔다. 그가 손을 뻗어 내 뺨에 묻은 티끌을 다정히 떼어내 주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제 제법 그럴 듯한 연인이 된 것 같다.

# “참치, 드시죠?” 참치, 드시죠? 다섯 음절의 그 짧은 의문문 속에 내포되어 있는 복잡다단한 의미들이 머릿속에서 뒤얽혔다. 첫째, 그는 이미 메뉴를 정해두었다는 것. 둘째, 상대가 그 메뉴를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기본적인 자신감이 있다는 것. 셋째, 그 참치가 뜻하는 것은 참치‘캔’이 아니라 참치‘회’임에 분명하다는 것. 넷째, 상대에게 호감이 적어도 참치회를 사줄 수 있을 만큼은 된다는 것.

두 장면은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2006)의 일부분이다. 31살의 여주인공은 ‘연봉 500’의 연하남과의 데이트를 즐길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두 끼 식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맞선남인 34살 사업가와 만날 때는 참치회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이처럼 먹을거리는 먹는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고른 한 끼 식사는 단순히 나의 개인적 취향뿐만이 아니라 나의 사회적 계층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먹을거리는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세계적 학자 제인 구달은 저서 <희망의 밥상>에서 음식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소개한다. 영국의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점심시간 직후 설탕, 소금, 지방, 각종 첨가제로 범벅이 된 가공식품을 소화시키는 동안 행동상의 문제가 갑작스럽게 급증했다. 또 미국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정크푸드를 건강한 식단으로 바꾸자 재소자들의 물리적, 언어적 폭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음식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각오하는 것보다 크다. 그래서 포이에르바흐는 일찍이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나, 내가 먹는 것이 나(I am what I eat)라고.

# 극단의 먹을거리 시장

먹을거리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 아닌 사회 계급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밝힌 이는 피에르 부르디외다. 그는 저서 <구별짓기>(1979)에서 소득 차에 따라 음식 소비의 취향이 달라지며, 같은 소득 내에서도 교육수준과 직종, 즉 학력과 사회계층에 따라 고르는 음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사회적 위계의 상층부로 갈수록 가계의 지출 중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감소하거나, 식비 중 지방이 많아 소화되기 힘들고 살찌기 쉬운 음식이나 값이 싼 음식과 포도주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는 반면, 기름기 없고 가벼운 음식과 살찌지 않는 음식의 비율은 증가한다는 사실. … (이 사실만으로는) 동일한 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소비 유형을 보여주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직조공장은 사무노동자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지만, 민중적 취향을 고수한다.’ (<구별짓기> 상 권, 새물결 출판사, 323쪽)

이 사실을 30년이 지난 한국사회에 적용시켜 보았다. 한국형 패스트푸드인 ‘김밥천국’과 유기농음식점 ‘마켓오’의 서울시내 입지를 파악해 보았다. 2009년 현재 김밥천국(www.kimbabcheongug.co.kr)의 서울 시내 가맹점은 79곳. 이중 가맹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관악구와 성동구, 강남구가 7곳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서초구(6곳) 동작구(5곳) 순이다.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우 사무실 밀집 지역으로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강남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김밥천국의 이용고객일 가능성이 높다.

마켓오의 경우 압구정점, 인천국제공항점, 올림픽공원점, 코엑스점, 도곡점, 서울역점 등 6곳이 운영 중이다. 모두 강남권 중심의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 매장이 있다. 롸이온즈 측은 “가격 또는 양보다는 음식 성분에 더 가치를 두는 고객층이 밀집한 곳이다. 또한 압구정점과 같은 트렌디한 성격을 많이 띠는 곳으로 패션뿐만이 아닌 외식트렌드에도 민감한 곳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음식점의 입지에 관한 ‘데이터’ 정도로는 “먹을거리가 계층을 드러낸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음 자료에 주목해보자.

허미영 신라대 여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논문 ‘유기농산물 소비에 대한 접근’에서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준말로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거래하는 비영리조직)의 식품을 구매하는 소비층을 분석한 바 있다. 물론 대기업 중심의 유기농 레스토랑 ‘마켓오’의 소비자층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들이 먹을거리와 건강문제에 관해 일반인보다 훨씬 더 높은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패스트푸드의 헤비유저들과는 분명 차이를 보인다.

설문조사는 생협에서 식품을 구매하는 생협 회원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들의 학력, 소득 차이를 보면, 생협 회원의 82.1%가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의 학력인데 반해, 일반 소비자의 50%만이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소득 또한 생협 회원의 경우 401만2900원, 일반소비자는 371만3600원으로 나타났다.

농산물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생협 회원의 69%가 ‘안정성’을 꼽았지만, 일반 소비자의 29.52%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가격을 기준으로 농산물을 고른다는 대답은 일반 소비자(16.24%)가 생협 회원(4.31%)보다 4배 가량 많았다.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친환경, 유기농 먹을거리에 관심을 둔다는 말이다.

# 음식을 흡입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이런 식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다를까? 극단의 식문화에 있는 두 군을 나누어 인터뷰를 실시했다. 일주일에 5번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 사람과 생협활동, 슬로푸드 운동, 채식 등 다양한 먹을거리 관련 실천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취업 준비생인 박상덕(가명, 27) 씨는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 하루 한 끼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데, 그가 애용하는 것은 편의점의 1000원 김밥. 일주일에 3번 이상 이 김밥을 애용하고 김밥집도 일주일에 2~3회 이용한다. 박 씨는 “식사의 개념보다는 한 끼 때운다는 생각으로 먹으니 김밥 질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작 김밥집에서는 김밥보다 술 마신 다음날 해장용으로 육개장을 사먹는다. 이곳의 육개장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레토르트식품을 데워 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패스트푸드인 셈이다.

음식을 고를 때 기준은 가격과 시간이다. 박 씨는 “3000~4000원 사이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우선이다. 5000원이 넘는 햄버거 세트는 여기서 탈락한다. 편의점 김밥에 비하면 김밥집의 김밥은 그리 ‘패스트’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유기농 식품, 슬로푸드를 선택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서 “비싸고 접근성이 떨어진다. 밖에서 혼자 식사할 때 빨리 먹고 나와 주는 걸 식당 주인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총 생활비에서 식품구입비로 쓰는 비용은 한 달에 20만 원 선. 총 생활비의 40%가량이다. 그는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 수다로 푼다고 대답했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최경훈(가명, 31) 씨는 매일 1회 이상 김밥과 햄버거를 먹는다. 한 끼 식사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7분. 음식을 최 씨는 “먹는다기보다 ‘흡입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 1회 정도 운동을 하지만 잦은 음주 탓에 건강보조 식품과 간장약 등을 복용하며 건강을 챙긴다.

일주일에 2~3회는 새벽까지 회식 또는 회사 관계자와 술자리를 갖는다. 그가 음식을 고르는 기준은 맛과 편의성. 그는 “불규칙한 식생활과 음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스트레스 해소 방법 역시 음주가무와 취침”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지난 해 건강검진에서 ‘50대 생체나이’가 나왔다. 지방간이 간경화로 발전할 수 있어 검진 결과를 받고 한동안 음주를 자제했다.

# 먹을거리가 나를 바꾼다

이제 먹을거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따라가 보자. 어떤 사람들이 ‘좋은 먹을거리’에 관심을 보이고, 또 먹을거리가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신지연(42) 씨는 슬로푸드를 실천하고 있는 요리연구가다. 2002년 이탈리아 유학 시절 슬로푸드 운동을 알게 됐고, 한국에 돌아와서 슬로푸드아카데미에서 다시 교육을 받았다. 신 씨는 “이탈리아에서 슬로푸드는 실천운동이 아니라 생활이다. 한국에 와서 고추장이나 설탕, 화학조미료를 넣은 요리나 패스트푸드가 몸에 맞지 않아 몸이 불편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한국에서 슬로푸드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음식을 고를 때 기준은 신선하고 품질 좋은 재료. 가급적 양념을 적게 사용한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그가 고수하는 원칙 중 하나다. 총 생활비에서 식품구입에 쓰는 비용은 20% 정도. 신 씨는 요리뿐만 아니라 메뉴 개발과 감수, 상품 개발, 강의, 칼럼 연재 등의 일을 한다. 그는 “식사 시간은 교육과 교류의 장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일이 아니라 행복의 필요조건이다”고 말했다.

중학교 교사 김희림(31) 씨의 경우 지난 해 광우병 파동을 겪으며 채식을 실천하게 된 경우다. 그는 달걀과 우유,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다. 채식을 하기 전에도 생협 회원으로 유기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 왔다. 김 씨는 “광우병과 관련해 혼자 공부를 했다. 그때 공장식 축사에서 소모품처럼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 하나 안 먹는다고 금방 그 동물들이 동물로서 기본적인 권리가 있는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의 항의 표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음식을 고를 때는 항상 ‘육류 성분이 있느냐’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를 생각한다. 식품의 성분표를 꼼꼼하게 읽고 육류 성분이 없는 식품을 사고, 제철에 생산되는 제품이 아닌 이상 유기농산물도 사지 않는다.

“음식이란 단순히 먹고 소비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나누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패스트푸드 문화는 싸고 양 많고 기름진 음식으로 소비자에게 폭식과 탐식을 조장하지요.”

식사 시간은 보통 20분이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데 30분에서 1시간을 투자한다. 그는 일주일에 4~5번 운동을 한다.

푸드칼럼니스트이자 요리사 박찬일 씨는 ‘에코 푸드’와 일가견이 있다. 잡지사 기자를 하던 중 1998년 이탈리아로 요리 공부를 하러 떠난 그는 이후 프랑스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음식 관련 잡지사 편집장과 요리사로 활동했지만, 현재는 푸드 칼럼과 레스토랑 컨설팅 일에 집중하고 있다.

박 씨는 “내가 이탈리아에 있던 10년 전, 중부유럽에 유기농 시장이 전체 먹을거리 시장의 10%를 차지했다. 슬로푸드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는 정작 유기농산물이 전체 시장의 5% 내외다. 환경친화적 먹을거리는 이미 여유 있는 유럽에서 생활의 일부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4~5년 전부터 생협에서 식재료를 받아쓴다.

“식당을 컨설팅하다 보면 강남 유기농 레스토랑 소비자와 생협 이용자는 또 나뉜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협은 조합원으로 가입해 먹을거리 운동을 함께 병행하는 측면이 있어 최상위 부유층은 오히려 가입을 꺼려요. 생협 회원의 경우 중위권 대학 이상, 386세대들이 많죠. 경제자본보다 학력자본, 문화자본이 우세한 사람들이 많죠.”

정리하자면, 사회적으로 여유로운 자가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찾고, 또 유기농 식품 역시 경제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당신이 아침, 점심, 저녁에 먹은 삼각김밥과 구내식당의 육개장과 삼겹살을 곁들인 소주는 당신의 오늘 하루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 수많은 ‘팩트’에도 “내가 먹는 것이 나”라는 이 명제에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던진다면, 다음 페이지, 정은정 정책위원의 분석에 주목해 보라.

몸의 차이, 음식의 차이








음식의 차이는 몸의 차이를 낳았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칼럼 '광우병, 그리고 먹을거리 계급화'에서 "미국 사회에서 비만은 이미 건강상 문제를 넘어서서 계급적, 인종적 문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 덧붙인다.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기름기 많고 불건전한 음식을 먹고 수백 파운드에 이르는 체중과 심장관련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은 대개 저소득층이나 유색인종"이라고. 반면 유기농 슈퍼마켓에서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몸짱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상류 계층이다.

이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낸 '비만 유병률' 자료를 보면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의 비만 유병률은 27.6%인데 반해 중학교 졸업 출신은 40.6%가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별 비만 유병률도 월평균 400만원 이상 소득자는 31.9%, 50만원 이하 소득자는 34.8%였다.

지난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발표한 '직업별 청장년층 비만 유병률'을 살펴보면 농어업 종사자의 40.9%가 비만인데 반해 사무직과 전문행정관리직의 비만율은 각각 29.4%, 28.4%에 불과했다. 먹을거리의 계급화는 몸의 계급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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