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인터뷰어] 사회와 삶에 질문하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의 앞머리에 이동진 기자는 “시간의 질보다는 양을 더 신뢰한다”고 적었다. 곧바로 괄호 치고 밝혔듯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중에 갓 나온 이 책의 인상이 어쩐지 고서(古書) 같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기원부터 오래되었다. 영화의 대사를 빌려 감독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구상한 것이 거의 10년 전이다. 조선일보 기자 시절에 실현하지 못한 것은 지면의 한계 때문이다. 3년 전 퇴사하고 ‘이동진닷컴’을 열면서야 비로소, 마침내 시작했다.

노고의 양은 벼르던 만큼, 이었다. 인터뷰이를 정하면 그의 영화를 모두 다시 보고, 대사를 낱낱이 훑어 질문의 구실이 될 만한 것을 추렸다. 족히 2~3주가 걸렸다. 인터뷰 자체만도 통상 10여 시간이 소요됐다. 말 그대로 ‘노동’이었다.

이명세 감독과 인터뷰할 때는 8시간이 지나자 말을 받아치고 있는 팔에 경련이 왔다. 나머지 1시간 동안은 한 손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고단한 순례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나의 형식으로 지난 2년간의, 이런 시간‘들’을 엮어낸 결과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이다. ‘엮었다’는 표현은 은유가 아니다. 툭 던져진 영화의 한 줄 대사, 그것이 환기하는 특정한 장면, 색과 이미지, 질감과 정서가 뭉뚱그려진 횡(橫)적 순간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마주해 써 내려가는 종(縱)적 서사와 엇갈리며 매어진다.

그 꼴이 내용 안에 역동적인 리듬을 만들어준다. 스스로 ‘형식주의자’라 칭하는 이동진 기자는 “유효한 형식에는 그 자체의 힘이 있다”고 말했다.

엮어내는 맛은 질문의 성격 때문에 더하다. 질문 자체가 영화에 대한 평이다. 분석하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주고받는 말의 농도가 짙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이동진 기자는 <플란다스의 개>, <괴물>, <마더>에 공통적으로 좁은 공간에의 매혹이 나타나는 것을 짚어내는데, 이런 통찰이 나아가 차기작(<설국열차>)에서의 공간성까지 예견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17년차 영화 기자로서의 인터뷰어의 역량이 발휘된 덕이다. 저자가 이 책이 “인터뷰인 동시에 감독론”이라고 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인터뷰어이기 전에 ‘영화글쟁이’인 이동진 기자의 면모도 곳곳에 나타난다. 틈틈이 삽입된 영화 리뷰는 '감독론'의 이해를 돕는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한 사람으로서의 감독을 서술하는 문장도 정교하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가족의 탄생> 개봉 직후 사적인 자리에서 김태용 감독을 처음 만나고 나서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영화를 만드는구나! 라고 느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영화에서 내가 받은 감동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추인받는 것 같아 기뻤다. 영화라는 것은 결국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였다.”

변용하자면, 이 두껍고 농밀한 인터뷰집은 결국 인터뷰를 한 사람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다.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유하, 임순례, 김태용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고, 뒤이어 두 권 혹은 세 권의 책이 더 나올 예정이다.

● "텍스트로서 영화감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동진닷컴’에 연재한 인터뷰들을 재작업해 책을 냈다. 원래 출간할 예정이었나.

책으로 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분량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원고 매수가 보통 200자 원고지로 80매 이상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에는 600매에 달한다.

-인터뷰할 때 대사는 몇 개 정도 추려가나.

어마어마하다.

-그게 다 기억나나.

그 순간에는 기말고사를 보는 학생 심정이랄까. 적어도 1~2주 동안 인터뷰 준비만 집중적으로 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에 쇼트가 몇 개인지까지 기억난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외웠던 것을 다 까먹는 것처럼, 인터뷰 후 일주일쯤 지나면 많이 잊긴 하지만(웃음).

-이런 형식에 장단이 있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을 대사에 끼워 맞추게 되는 경우는 없나.

약간의 견강부회가 없을 순 없는데, 이런 형식을 통해 얻는 게 훨씬 많은 것 같다. 일반적으론 형식 없이 자유로울 때 쉽게 창작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형식이 있을 때 형식 자체가 창작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두 줄짜리 하이쿠, 세 줄짜리 시조, 열네 줄짜리 소네트 같은 것들이 그 예다.

-대사들이 중간중간 영화를 환기하는 것이 인터뷰, 나아가 그것을 문자로 옮긴 글의 조밀함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긴 인터뷰 안에는 많은 소주제들이 얽혀 있지 않나. 그것들을 쌓아올릴 때 대사들이 그 사이에서 아교 역할을 함으로써 하나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형식은 어떻게 떠올렸나.

1993년에 조선일보에 입사하면서 기자가 되었는데, 그때부터 쭉 인터뷰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특히 영화 쪽 인터뷰이들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제한된 시간에 무척 많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르게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30분 인터뷰해서 어떻게 인터뷰이를 잘 읽어내나. 결국 문장 기교로 기사를 쓰게 되는데, 그게 싫었다.

이런 한계를 돌파하는 통로로 삼은 것이 형식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라는 시리즈를 통해 시도해 봤다. 이번 주 만난 문화계 인사가 다음 주 인터뷰이를 추천하도록 했고, 인터뷰이마다 다른 형식으로 기사를 썼다. 영화 제작자 인터뷰 기사는 시나리오처럼 쓰고, 동시통역사이자 방송인 등 여러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는 배유정 씨 인터뷰 기사는 그녀의 여러 분신이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썼다.

소프라노의 인터뷰 기사를 쓸 때는 음악적 형식을 빌리기 위해 화성악 책을 보는 식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인터뷰 형식도 10년 전부터 생각해 왔다.

-인터뷰 준비할 때 기존의 인터뷰도 참고하나.

굳이 떠올린 인터뷰가 있다면 <키노>의 인터뷰들이다. 나에게 인터뷰가 좋은 영화 리뷰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줬다. 인터뷰에 대한 태도의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인터뷰의 목적은 뭔가.

기본적으로 인터뷰이, 텍스트로서의 영화감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인터뷰다. 책 날개에도 썼듯이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는 것이 출발점이다.

-인터뷰이에게 답이 있다고 전제하고 접근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감독이 하는 이야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맞춰보려고 하는 인터뷰는 아니다. 감독 스스로도 자신의 영화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말해주는 것이 내가 감독론을 쓰는 데 상당히 도움을 준다. 내가 읽어낸 바와 인터뷰이의 대답이 경합하고 합쳐진 결과가 그 감독의 작품 세계인 것 같다.

-좋은 인터뷰어의 자질은 뭘까.

성실한 태도가 아닐까. 문화예술 분야의 인터뷰는 인터뷰이를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성패는 인터뷰어에 달렸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얼마나 성실하냐에 따라 인터뷰이의 답변이 달라진다.

-인터뷰어로서의 자신을 평가한다면.

사람을 능숙하게 다룬다거나, 엄청난 재치를 갖춘 것 같은 자질은 없지만 성실하긴 한 것 같다. 또 인터뷰할 때 내 의자 높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낮은 것 같다. 겸손한 쪽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