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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과 소통, 운동을 넘나드는 전방위 인터뷰어, 서형
[시대의 인터뷰어] 사회와 삶에 질문하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작가 서형에게 인터뷰는 "바닥 작업"이다.

"한국전쟁 당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도 어느날 갑자기 공론화된 것이 아니에요. 당시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는 '바닥 작업'이 전제가 되었죠."

2007년 일어난 '석궁 사건'의 재판 과정을 기록한 책 <부러진 화살>을 쓰게 된 계기도 이런 작업의 와중에 생겼다. 청와대, 국회, 대법원 앞 1인 시위자들을 인터뷰하다가 그들 사이 '스타'인 김명호 교수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건을 '이슈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모든 1인 시위자의 염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로 서울고법의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선 '석궁 사건'의 7차 공판을 지켜본 작가는 정작 사건의 진실보다 이 이상한 재판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피고인 김명호 교수의 태도는 불량스러웠고, 재판장은 변호인이 증인인 박홍우 부장판사를 신문하는 것을 번번히 가로막았다. 재판 도중에 박차고 나가는 사람, 소리를 지르는 사람 등 방청객도 가지가지였다. "큰 충격을 받은" 작가는 거의 2년 동안 그 연유를 추적했다.

이 책에서 특기할 것은 작가가 사건에 접근하는 각도다. 김명호 교수는 물론 그의 주변인에서부터 이 재판과 관련한 법조인, 석궁 사건을 보도한 언론인까지 많은 사람들을 관통해 온 작가의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법은 누굴 위해 있는 것일까. 판사들은 법의 공정한 집행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재판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가장 궁금한 질문을 지니고 세상을 이해하러 나섰다"는 점에서 <부러진 화살>도 작가가 블로그(www.mediamob.co.kr/2bsicokr)를 중심으로 해 온 인터뷰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작가의 블로그에는 <부러진 화살>의 기초가 된 '김명호 교수 재판자료' 외에도 '대선', '빈민', '역사', '시장', '문화' 등 2006년부터 다양한 키워드로 진행해 온 인터뷰의 기록이 빼곡하다. "좋은 질문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는 작가의 철칙이 엿보인다. 어떤 항목을 클릭해도 작가의 쉽고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불려나온 세상의 소탈한 단면들이 펼쳐진다.

작가의 첫 질문은 "당신을 열받게 하는 손님이 누구냐"였다. 스스로 사는 동네의 가게 주인들이 인터뷰이였다. 편의점, 슈퍼마켓, 옷가게, 세탁소, '중국집', 꽃집, 택시 기사 등 열 다섯 개의 업종에 종사하는 개인사업자들이 대답했다. 작가가 이들로부터 알게 된 것은 일차적인 답변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업들이 사양의 길에 접어들었는지 같은 한국 사회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문화'를 주제로 인사동에 갔을 때는 갤러리마다 "무슨 말을 해야 차 한 잔을 그냥 주냐"고 물었다. "인사동에 가서 말만 잘하면 차 한 잔쯤은 얻어 먹을 수 있다"는 한 네티즌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렇게 질문을 찾아내는 순간 작가는 "월척을 낚는 기분이다."

어떤 질문은 인터뷰이를 저절로 끌어오기도 한다. 서형 작가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법의 재해석 시리즈'. 사법피해자들에게서 오히려 사법피해를 피할 수 있는 방도를 구하는 것이다. 석궁 사건을 취재하면서 접한 사법피해자들이 단초가 됐다. 다들 조금씩이라도 약자의 입장에서 법을 다루는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그것들을 모아 '지혜'로 만들고 싶었다. 위증 잡아내는 비법, 증인 신문 만드는 비법, 재수사 명령서 받는 비법 등으로 구체적인 매뉴얼을 구성하고 있다. 이에 도움을 받은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러 찾아온다.

그러니 '인터뷰 전문 작가'라는 정체성만으로 서형 작가의 작업을 아우르기는 어렵다. 그를 '르포 작가'로 보는 시선도 있고, 작가 자신은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해외 사회학자의 대중적 연구서나 전문적으로 탐사 보도를 하는 기자들에게서 자극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안 하는, 민중 안에서의 작업"이자 "소통을 통해 자신을 확장시키는 작업"으로서의 서형 작가 인터뷰의 특징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 "'부러진 화살' 원작 영화·드라마 만들어졌으면"

-<부러진 화살>이 단순한 인터뷰 작업이 아닌 기록의 의미가 크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이 재판에 참여한 것 같은 인상까지 받는다.

김 교수 항소심을 내가 녹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녹음기를 처음 사서 테스트 겸 블로그에 올릴 겸 재판을 녹음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식으로 녹음한 기록이 없더라. 내가 몰래 녹음한 것을 바탕으로 김명호 교수가 항소를 하기도 했다.

-몰래 녹음했다고? 녹음하면 안 되나?

금지되어 있다. 이해가 안 되지 않나. 한국사회의 옛 모습을 보러 민속촌, 청학동까지 갈 필요 없다. 법정에만 가면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들 판사 앞에서, 마치 왕 앞에서 하듯 꼼짝 못하고 쉬쉬한다. 말들도 이해가 안 된다. 녹음을 요청하면 일부 판사는 날 못 믿냐, 그럼 재판 못한다는 식으로 나온다. 이런 데 김 교수가 충격을 준 거다. 권위에 도전하고, 제 할 말 다 하고.

-김 교수가 이 책 출간을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그 때문에 책 발간이 좀 늦어졌다. 처음에는 사실 왜곡만 하지 않으면 출간해도 좋다더니, 나중에는 석궁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며 반대했다.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사람이지만, 책의 방향이 자기 생각 같지 않으니까 문제 삼더라.

-어떻게 취재를 시작했는지 자세히 설명해달라.

김 교수 재판을 보고 먼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김 교수가 자신이 판사에게 '당한' 수백수천만 사법 피해자 중 한 명이라기에, 다른 사법 피해자들을 만나보기 시작했다. 고소장이 뭔지, 사건 기록이 뭔지, 민법 형법 차이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

다 공부해가며 인터뷰했다. 이런 사연들을 왜 지금까지 언론이 안 다뤘냐고 물었더니 다들 사법 권력과 검찰 권력은 언론이 못 다룬다고 하더라. 그럼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어떻게 읽혔으면 하나.

탐사 보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취재한 사건을 잊히지 않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만으로는 힘들고, 이것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나 TV드라마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블로그에서 '법의 재해석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만난 사법 피해자들 중에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공권력에 당한 충격이 크다는 거다. 시중에 나와 있는 법은 강자의 논리인 경우가 많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법원에 가서 뭘 조심해야 하는지, 경찰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등을 알려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돕는 매뉴얼은 없더라. 그래서 사법 피해자들의 경험과 지혜를 모아보기로 했다. 요즘은 스스로도 탄원서, 진정서 많이 써 준다(웃음).

-개인이 그런 작업 하려면 힘들지 않나.

피해자들이 도움 받는다고 하니까 한다. 법 영역이 성역이라고 이런 작업을 아무도 하지 않으면 안 되잖나. 사명감 때문이라기보다 재미있어서 한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사안에 접근할 때든 어떤 질문으로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많이 한다. 식상한 것도 신선하게 만드는 것이 질문의 힘인 것 같다. 심지어 질문이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가르쳐주러 온다. 그러다보니 내 작업도 공동 작업이 되어 간다. 나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인터뷰이도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런 게 소통이구나 생각한다. 누군가와 같이 길을 찾게 되니, 내 글에 운동의 성격이 가미된다.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업이 있나.

2년 전 '역사'를 주제로 한 인터뷰 작업을 종묘공원에서 두 달쯤 진행했었는데,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 당시에는 노래방 기기도 있고 윷놀이판도 있어서 사람들 많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정치판도 있고 종교판, 놀이판, 심지어 성매매하는 영역까지 있었다.

노인들에게 "빨갱이가 뭐냐", "통일 되면 민족의 한이 풀린다는데, 도대체 민족의 한이 뭐냐", "일제 시대 일본에 기분 나쁜 것은 뭐였냐" 같은 질문을 물어보고 다녔다. 지금은 '디자인 서울' 정책 때문에 싹 바뀌었지만, 노인들이 다 돌아가기 전에 다시 가보려고 한다.

-섭외할 때 '인터뷰 전문 작가'라고 칭하니 놀라더라.

언론이 만들어낸 거지(웃음). 이기적으로 시작했다. 내가 세상 알고 싶고, 그걸로 책 쓰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서. 그런데 지난 2~3년간 좀 달라진 것 같다. 사람들 만나면서 영향을 받아 변했다. 지금은 가장 가치 있는 글이 탄원서라고 생각한다(웃음).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써주려고 늘 편지지와 봉투를 가지고 다닌다.

이제까지 몇 명에게 밥을 얻어 먹고, 사랑받고, 감동받았겠나. 또 그들의 이야기 때문에 얼마나 놀라고 통찰력을 얻었겠나. 인터뷰는 이렇게 나를 확장시키는 작업이었다.

-질문을 찾아내는 데 지적으로 도움을 주는 주변 사람이 있나.

기자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한국전쟁 대 민간인학살 사건을 취재했던 탐사 보도 기자들의 경우, 만나보면 정말 집요해서 자극을 받는다. 예를 들면 부산일보의 김기진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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