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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 기부, 문화가 되다
[기부문화,어디까지 경험해봤니?] 소액기부 기부채널의 다양화 기부액 증가로 이어져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위) 주거환경이 열악한 아동 가정에 새 보금자리를 지어주는 LIG손해보험의 '희망의 집' 행사. 10번째 집의 완공식이다. (아래) 2008년 12월, GS홈쇼핑과 아름다운 재단이 소액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청계천에서 연 '동전 나눔밭' 행사


직장인 정 씨(31)는 산간지역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는데 얼마 간의 비용을 부담했다. 또 한번은 정 씨 덕분에 결식 아동의 점심식사 한 끼가 해결됐다. 기부라고는 크리스마스 시즌, 구세군에 몇 천원씩 넣는 것이 전부인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기부. 구세군과 ARS 전화, 기아체험 등 이벤트식의 기부가 대부분인 풍토. 여기에 개인후원과 기업후원(이 역시 기업 대표의 개인적인 후원인 경우가 많았다)이 전부였던 기부문화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쇼핑몰에서 탠디 샌들을 구입하면 아이들의 공부방을 후원할 수 있고, 메리케이에서 립스틱을 구매하면 도서관 건립에 돈을 보탤 수 있다. LIG손해보험에서 꼬꼬마 어린이보험에 가입했다면, 그 일부는 집 없는 이웃을 위한 ‘희망의 집’건립에 쓰여진다. 마음만 먹으면 단 돈 100원이라도 기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기부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벤트가 아닌,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 진화하는 기부문화

과거의 기부는 그야말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천사표들의 몫, 또는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나 귀족에게 요구되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시기 당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존방식이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기부에는 젊음, 깨어있음, 변화, 주도(앞서감), 선망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기부지수와 해외의 기부동향을 해마다 결산하는 기빙코리아에서 2008년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국민 1인당 순수기부액은 10만 9천원으로 나타났다. 기부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향후 1년 이내 기부 의향이 ‘없다’는 대답이 2005년을 기점으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2003년까지 59%에 이르렀던 의견은 2005년 19%를 기록했다. 행동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분명한 의식의 변화는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맥을 같이 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기부 채널은 다양해지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부금액의 증가로 이어진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는 네티즌이 직접 모금 주제를 제안할 수 있는 희망모금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야후와 네이버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사이트를 열었다. 생일이나 결혼, 아기의 돌과 같은 기념일에 다른 사람이 기념일을 맞은 사람의 이름으로 기부를 할 수도 있다. 굿네이버스 기부 사이트(www.givestart.org) 의 ‘내 생애 최고의 날’ 캠페인으로 이는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또한 ‘굿샵’이라는 쇼핑몰에서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고자 하는 기업의 제품을 한 곳에 모아 판매하기도 한다.

LIG손해보험의 꼬꼬마 어린이보험에서 조성된 기금은 올해 5월에 10번째 보금자리의 완성을 도왔고 메리케이코리아는 립스틱 판매수익금으로 올해 5곳의 도서관 건립을 진행 중이다. 대규모 유통 체인을 가진 바이더웨이와 훼미리마트 역시 일부 물품에 대한 판매수익금을, 유니레버코리아는 립톤아이스티 판매수익금의 1%를 기부해오고 있다.

어린이재단의 여인미 팀장은 “과거 기업 기부의 주 목적이 수익 증가와 이미지 개선 그리고 홍보였다면 요즘은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주기를 부탁하는 곳이 많아요. 경기가 안 좋을 때 가장 먼저 삭감되는 분야가 사회공헌이라고 하던데, 올해는 감사하게도 그런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라며 기부에 대한 기업의 의식변화를 설명했다.

# 만원의 숨겨진 가치

양적 증가가 기부의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양적 증가와 더불어 기부의 가치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1퍼센트나눔운동을 해온 아름다운 재단은 최근 1만원을 사회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당신의 만원’이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기부가 자선적이고, 일회적이며, 소모적이라는 상식을 바꾸는 계기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다. 의료, 교육, 주거 등 세 가지의 경우로 측정한 가치는 작게는 9만 7천원에서 크게는 577만원의 효과를 낸다.

“밥을 굶는 아이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인 문제부터 보육의 문제, 부모 방임의 문제, 실업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있거든요. 단지 기부는 밥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얽힌 많은 문제들을 예방해주고 해소해줍니다. 한부모 여성가장의 건강검진 지원과 질병치료 지원사업에서 1만원의 기부가 이루어졌을 경우를 봅시다. 의료비 경감효과 1만 3천원, 소득보전 효과 9만 5천원, 실직으로 인한 부채증가 예방효과 1만 2천원, 어머니의 입원이나 사망으로 방치되는 자녀 교육비 보전효과 3만 2천원, 정부 사회보장 비용 경감효과 1만 7천원. 총 17만 9천원이지요. 1만원의 기부가 18만원 정도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겁니다.”

아름다운 재단 서경원 팀장의 말이다. 회의주의자들이 줄곧 하는 고민들, ‘적은 금액의 기부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기도 하다.

소액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해피빈이다. 2005년 아름다운 재단과 공동으로 오픈한 온라인 기부 포털사이트다. 첫 해 모금액이 8억여 원이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32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55만 명의 참여 네티즌도 4년 만에 세 배 이상 늘었다. 사회공익단체가 직접 네티즌과 지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블로그인 해피로그는 2만여 개에 이른다.

해피빈은 올해 7월부터 재단법인으로 독립해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홍보를 맡고 있는 안효석 씨는 “네티즌과 사회공익단체에게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열어주었다는 점이 성과이자 의의”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피빈이 남긴 가장 큰 미덕은 자체적으로 기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단체들까지 아우른다는 점이다.

# 내 삶까지도 변화시키는 미래지향적 기부문화

과거 많은 이들이 ‘어디에 기부하면 좋을지’를 물었다면 지금은 자신이 직접 기부할 곳을 고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만큼 기부가 익숙해졌다는 반증이다. 신애라-차인표 커플, 한비야 씨 등 유명인사들의 영향으로 해외의 1:1 아동결연 혹은 환경개선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우리가 사는 지역과 사람들에 관심을 갖는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령, 구마다 하나씩 있는 보건소에 방문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동마다 보건지소를 설치한다던가, 아이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조성한다던가, 방과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설치한다던가 하는 일들은 정부의 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 이웃과 내 삶의 터전의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풀뿌리 단체가 2만 5천여 개에 이른다. 예산 감시, 인권활동, 보건복지, 주거환경개선, 도서관 설립 등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다.

최근 광주시에서 최다 기부자로 선정된 문근영 씨는 지난 6년간 총 8억5000만원을 고향인 광주에 기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피네골의 ‘청암 어린이 도서관’은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모은 동전으로 건립되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폐광촌인 철암동의 유일한 도서관이 문을 닫을 위기에 맞자 어린이들이 직접 도서관 건립 모금 활동을 한 것으로, 훈훈한 스토리이기에 앞서 변화를 위한 힘을 보여주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기부문화가 변해가고 있다. 그와 더불어 불우이웃돕기, 혹은 자선과 동정이라는 틀에 갇혀있었던 기부에 대한 프레임 역시 아주 조금씩 해체되어가고 있다. 사회학자인 조 형 교수는 “현실의 빈곤은 물질의 빈곤이 아니라 관계의 빈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부는 어쩌면 사회의 풍요를 위함보다는 물질로 인해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기부문화에서 '착한 소비'란?






초콜릿과 코코아의 원료인 카카오. 달콤한 맛 뒤에는 아이들의 쓴 눈물이 담겨 있다. 한 해에도 서아프리카 어린이들 20만 명이 카카오 공장에서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는데, 카카오 생산량의 40%가 이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착한 초콜릿'의 시작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아동인권 유린이 없으며 생산자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또한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상품을 소비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공정무역. 커피에서부터 초콜릿, 화장품, 옷, 여행으로까지 우리 실생활 모든 것에 확산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공정여행의 개념을 도입해 <책 날개를 단 아시아 시즌 3>을 열었다. <책 날개를 단 아시아>는 국내 거주 아시아 이주민들에게 모국어 책을 보내주기 위해, 책을 기증하거나 책값을 기부해 이주민들의 문화 인권과 우리사회 다문화 감수성을 높이려는 캠페인이다.

원서라고는 영어와 일본어가 대부분인 한국에 살고 있는 100만 명의 이주 노동자. 네팔이나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사실상 거의 없다는 말이다. 현재 민간이 운영하는 600여 개의 이주민 도서관에는 책이 꽂힌 공간보다 빈 공간이 더 많다.

캠페인 3년째인 올해는 서구 자본이 아닌, 지역경제를 돕는 책임여행과 엮었다. 다국적 체인 호텔보다는 민박집을, 패밀리레스토랑보다는 지역음식점을 이용하는 책임 있는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발간된 책을 구입해 국내 아시아 이주 노동자에게 기증하자는 것. '착한 여행'과 '착한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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